싱겁게 끝난 노봉방과의 한판 싸움
2006년 11월 25일 토요일 맑음
다시 잡은 D-day.
두 주일 내내 노봉방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장비를 보충하면서 놀토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의 집념을 도저히 꺾을 수 없었다. 아침을 느긋하니 먹고 9시가 조금 안되어 집을 나서다. 10시 30분에 목적지에 도착, 장*리 쉼터에 차를 세웠다. 그는 장비를 가지고, 나는 도시락을 챙겨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드디어 노봉방이 달린 나무 아래에 도착, 말벌에 쏘일까보아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열심히 장비를 정비하고 있는 그를 보니 마음속으로 좀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에라, 우선 나라도 용기를 내어보자.'
성큼성큼 노봉방이 달린 나무 아래로 갔다. 톱을 들고 주변의 잡목들을 잘랐다. 난생 처음 톱질을 해 보는 것인데, 새 톱이라서 그런가? 생각보다 잡목들이 너무나 쉽게 잘렸다. 아니 칡넝쿨이 그렇게 무른 재질인 줄 손바닥으로 처음 느껴 보았다.
그때 그가 와서 "옷을 입고하지."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내 옷차림을 보았다. 아차, 성질 급한 내가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장비도 갖추지 않고 겁도 없이 잡목들을 제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모기장옷을 가져다주었다. 푸른색인데 머리를 완전히 보호하는 모자가 달린 옷이다. 입고 서로의 모습을 보니 암스트롱과 일행이 금방 달나라에 착륙한 것 같은 참으로 희한한 복장이었다. 딸기 넝쿨에 옷이 걸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주변 잡목을 제거했다. 내가 언제 잡목을 베어라도 본 적이 있었나? 이건 순 본능적으로 손목이 움직인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핸드폰이 "12시" 외쳤다. 그날만큼 핸드폰이 가르쳐 주는 시각이 고마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잡목과 칡덩굴을 살금살금 자르면서 벌집을 올려다보니 벌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낮인데 날아다니는 벌도 없었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느티나무 아래 차를 주차할 적부터 머리 위를 윙윙 날아다니던 말벌들을 보았는데….
'우리들이 지난번에 따겠다고 부산을 떨다 간 것에 위험을 감지했나? 그래서 눈치 채고 집을 버려두고 다 도망갔나?'
그렇게 생각하니 용기가 더 나서 주변 잡목 - 주로 복분자 딸기 덩굴과 칡덩굴들을 톱으로 잘라내었다. 그가 자르려고 했지만 톱질하는 것이 너무 재미가 나서 그냥 내가 다 한다고 톱을 주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 주변을 살펴보면 완전 밀림 같은 곳이었기에, 노봉방이 달린 참나무와 옆에 바씩 붙어서 자라고 있는 참나무 한 개를 자르는 것은 오히려 다른 나무들이 더 잘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므로, 결코 산림을 훼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칡덩굴들을 제거해 주었으니, 앞으로 주변 나무들은 더 왕성히 자랄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음 ^^;; - 이렇게 사람들은 이기적이라우 ㅠㅠ)
드디어 벌집이 달린 참나무만 남았다. 그가 벌집이 달린 나무와 1M 정도 떨어져 자라고 있는 나무에 구명용 밧줄로 서로 묶은 다음 줄을 팽팽하게 당겨 다시 묶었다. 톱을 東에게 건네주었다. 벌집이 달린 나무를 천천히 자르기 시작했다. 십여 분 만에 나무가 쓰러지고 땅 아래로 벌집이 툭 떨어졌다.
운 좋게도 벌집은 하나도 부서지지 않고 내가 잘라놓은 잡목 위로 그냥 살짝 올려진 것이다. 그가 벌집 밖으로 튀어 나온 나뭇가지랑 칡넝쿨들을 전지가위로 잘랐다. 벌 출입구는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컸다. 벌집 꼭지에서부터 5Cm 정도 되는 곳에 나 있었다. 그 중요한 벌 출입문을 막는 휴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내가 끼고 있던 목장갑을 벗어 구멍을 살짝 막았다. 벌통을 들고 귀를 기울여 봐도 벌들의 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목장갑을 다시 빼어서 손에 끼었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 위로 바라 본 것과 따서 가까이서 보니 크기가 엄청났다. 준비해 간 마대(80kg 쌀 포대)에 넣을 수가 없었다. 벌집을 검은 비닐봉지에 밑에서부터 겨우 집어넣었다. 그가 장비를 챙길 동안 나는 벌집이 담긴 검은 봉지를 조심조심 들고 산속 오솔길을 헤쳐 나왔다.
거꾸로 들면 애벌레들이 환경의 영향을 받을까보아 벌집이 매달린 나뭇가지는 봉지 밖으로 꺼내어 들었다. 십 여 발짝 걷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벌집을 땅바닥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리고 벌집 입구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때였다. '아니?' 말벌 한 마리가 입구로 머리를 조금씩 내밀고 있었다. 비상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만 방향을 바꾸어가며 주변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가?
‘저게 바로 보초병이라는 말벌이구나.’
벌과 눈이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아 얼른 자세를 낮추어 그에게 비닐봉지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그가 깜짝 놀라 쏜살같이 달려왔다. 천만다행히 검은 비닐봉지가 한 장 더 있었기에 망정이지.
상처 하나 나지 않고 잡목 위에 살짝 얹혀진 노봉방 모습
그가 비닐봉지로 재빠르게 말벌집을 씌웠다. 놀란 벌들이 웽웽거리며 봉지 밖으로 다 튀어 나올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벌들은 기척이 없었다. 장비랑 도시락이 든 배낭은 내가 들고 내려가기로 했다. 말벌집이 담긴 검은 봉지를 괭이자루에 걸어 앞장서서 산길을 내려가는 그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벌집을 발견한 것은 나인데, 그 날부터 벌집 딸 궁리를 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참 소설을 많이도 썼다. 말벌이 그렇게 무섭다는데, 만약 벌집을 따다가 그가 잘못되면 남은 우리 식구는 어떻하라고? 벌집 따다 잘못되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소심했던 나의 마음은 이제 저 사람은 저 벌집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할까? 저렇게 둘러메고 내려가는 기분은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간 가슴 조이며 찝찝했던 나의 마음이 일순간 상쾌하게 바뀌게 되었으니,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무사히 하산. 노획물을 차에 실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2시. 쉼터 맞은편 산에 올라 두 시간 정도 산세를 구경하다가 그곳을 떠났다. 차 속에서 어떻게 하면 벌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벌집을 해체해 볼까 궁리하다가 문득 냉동고가 떠올랐다.
집 앞 단골 식육점 냉동고에 벌집을 보관하고, 홈플러스에 가서 30% 소주 5L 네 병, 12L 들이 유리 병 두 개, 50cm짜리 장식유리병 두 개 사서 집으로 왔다. 벌집 내부는 어떨까 궁금히 여기면서 잠자리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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