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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처럼 향기롭게, 나무처럼 튼튼히!
식물 탐사 Plant Exploration/씨앗 발아

난생 처음 만난 체리 발아 모습

by Asparagus 2017.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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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 하던 이모님 집에 아름드리 체리 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이모집에 가면 커다란 바스켓에 가득 담긴, 갓 딴 체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여름방학을 누구보다도 손꼽아 기다리곤 했던 초등학교 시절. 체리 나무를 키우는 이모님 과수원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어느 해 이모부께서 과수원을 정리하는 바람에 체리는 더 이상 맛볼 수 없었다.

항상 쌍둥이로 붙어 다니는 체리,

새빨간 핏빛 같은 체리,

달콤 새콤한 체리.

 

초등학교 때 맘껏 먹었던 그 체리 맛을 잊을 수 없어 시장에서건 마트에서건 체리를 만나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꼭 구입해야 섭섭하지 않다.

그리고 체리를 먹고 난 뒤, 씨앗은 화분 속에 심어 보는 버릇이 있다.

 

수십 년째 체리 씨앗을 심었지만 단 한 번도 발아된 적이 없다. 

사과, 배, 감, 포도, 복숭아 등등은 다 발아시켜 본 적은 있지만 체리만큼은 늘 실패이다.

 

그런데 수십 년 만에 기적처럼 체리 씨앗이 발아되었다.

잘 자라고 있는 체리를 핀셋으로 뽑아서 관찰했다.^^

발아시킨다고 껍질을 깨뜨릴 때 실수로 떡잎 한쪽이 떨어져 나갔지만 이렇게 어여쁘게 뿌리가 내리고 본잎이 자라고 있다.

 

돋아나는 실뿌리가 너무도 신비스럽다.

두터운 체리 씨앗 껍질, 물컵에 한 달 이상 불렸다.

가위로 한 쪽면을 잘랐다. 두꺼운 껍질 속에 떡잎들이 생생히 살아 있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이렇게 발아되고 있는 모습

상토에 심어 주었다.

한 장 남은 떡잎이 두꺼운 껍질을 뚫고 나오는 중이다.

 

수십 년이나 지나서야 껍질을 깨뜨려 줄 생각을 하다니...

진작 알았더라면 지금쯤은 체리 씨앗을 키워 체리를 따 먹을 수 있었을까나?

 

체리 씨앗이 자라서 몇 년 만에 체리가 달릴까?

단감 먹고 심은 씨앗은 무려 이십 년이 지났어도 잎만 무성하고 꽃이 피지 않는다.

홍시 먹고 심은 씨앗은 십년만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는데 꿩알만 한 감이 달렸다.

복숭아 먹고 심은 씨앗은 사년 만에 꽃이 피었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

금귤 먹고 심은 씨앗은 이십년이 넘어도 꽃이 피지 않는다.

 

오렌지, 자몽, 사과, 포도도 역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체리도?

아마도 체리 역시도 열매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도 체리 씨앗이 발아된 것이 참으로 좋다.

체리 새싹이 나무가 될 때까지 지켜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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