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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탐사 rural exploration/고운 마음

고객님 집까지 택배차 못들어갑니다?

by Asparagus 201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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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8일 화 함박눈이 세상을 덮은 날

오후에 책을 읽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택배 기사인데요. 고객님 집에 택배 물건이 있어 배달해주려고 하니 도로에 쌓인 눈 때문에 갖다드릴 수 없어요. 고객님 집에 남자분 없어요? 여기 한길까지 좀 걸어나오시라고..."

"네? 좀전에 우리 차로 바깥에 나갔다 왔는데요? 길에 차가 다닐만하던데요?"

"저희 택배차는 탑차라서 고객님 집까지 들어가기 힘들어요."

"그런가요?  그럼, 택배 물건을 양지 사거리 호박꽃 음식점에 맡겨 놓으세요."

"아, 그 음식점? 저도 단골이어서 잘 압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래주셔서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고나니 기분이 참 찜찜했다.

'아니? 택배차가 집까지 못들어올 정도로 좁은 길도 아니고, 만약을 위해서 눈길에 미끌어지지 않도록 차바퀴에 체인을 감지 않은 모양이지?'

그 이야기를 東에게 말했다.

"어? 혹 ㅎㅈ택배 아닌가? 지난 번 책 주문했더니 대문 안으로 책을 휙 집어던져놓아서 책 다 버리게 만든? 집에까지 갖다주는 게 택배이지."

하더니 차를 끌고 택배 물건을 찾으러 간다고 집을 나갔다.

 

책장을 몇 십장이나 넘겨도 찾으러 간 東은 오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덜컹 겁이 났다.

'아, 큰일난 모양이다. 거기까지 갔다오는데 넉넉잡아도 7,8분이면 족한데... 차가 눈에 미끌어져서 논두렁을 박았을까? 아님 논으로 들어갔나? 내일 읍내 볼 일 보러 갈 때 찾아도 된다고 말릴 걸.'

 

책장을 덮고 벌떡 일어났다. 안절부절하며 흰눈 쌓인 마당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불안증세가 극도로 달했다.

'아후, 택배기사가 차를 몰고 집까지 올 자신이 없으면 자기가 차에서 내려 우리 집까지 걸어와서 전해주고 가면 되지. 우리보고 걸어나와서 받아라고 했지? 또 나는 왜 한 수 더 떠서 남의 집에 맡겨 놓아라고 했을까나?'

 

뭐가 잘못되었다는 전화가 올까봐 휴대폰을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렇게 몇 십분이나 오만상상을 다하다가 내 편에서 먼저 전화 하기로 했다. 전화벨이 다섯 번 울리고나서야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어디에요?"

"응? 어디긴? 호박꽃이지."

"그럼 아직도 음식점? 왜 그리 늦어요? 길이 많이 미끄러워요? 거기 차 두고 걸어오세요."

"그래, 차 두고 걸어가지, 뭐."

 

콩닥콩닥 뛰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부엌에 가서 물 한 잔 마시려고 하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아니? 호박꽃에 차 두고 온다더만, 날아왔쑤?"

"응, 날아왔다. 자, 받아라."

임시 택배기사 된 東이 나에게 전해준 택배박스.

글 속에 ㅎㅈ 택배라고 밝히지 않았는데, 사진기는 너무 솔직하고 정직하다.

그럼, 이 참에 한진 택배 기사님에게 한 마디 하고 지나가야겠다.

 

우리 마을 담당하는 한진택배 기사님!

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지난 번 책도 그냥 집안으로 던져 놓고 가는 바람에 책이 비 맞아 다버려놓아 새로 주문했어요. 관리실에 맡겨 놓아도 되는데 사전에 전화도 하지 않아서 그리 되었잖아요?

 

그리고 오늘, 눈이 많이 쌓여서 차 운전할 용기가 없으면 차를 도로에 세워 놓고 기사님이 직접 우리 집까지 갖다주었어야지요.

 

기사님과 통화할 당시엔 기사님 편에 서서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제가 놀랐던 몇 십분을 생각하니 뒤늦게 기사님이 많이, 아주 많이 원망되더라구요. 우리 신랑도 운전해서 갔다오는 도로를 택배차가 못들어온다는 게 말이 되느냐구요.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전해 받은 택배 상자를 앞에 놓고 풀었습니다.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보내준 농원은 바로 <꽃들의 향연>입니다. 이 추운 날씨에 꽃들이 여행하며 추울까봐 핫팩까지 넣어 놓은 세심한 배려가 고맙습니다.

포장지를 풀어헤치니 주인공들이 나타났습니다.

핌브리아타와 경매로 구입하였다는 비올라센스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귀한 것을 저에게 보내주신 분은 누구일까요?

자수하이소.

ㅋ 자수하여 광명 찾은 분은 바로 였군요.

보라님! 고맙습니다.

이 한 겨울에 장미꽃처럼 어여쁜 다육이들을 잘 돌보며 감상하겠습니다.

 

아참, 울 신랑이 택배 찾아오기까지 왜 그리 시간이 걸렸느냐구요?

현관을 내려가다보니 그새 함박눈이 또 와서 빗자루로 현관과 계단과 대문 밖의 눈을 쓸어놓고 갔다는...

여기서 교훈 하나^^

신랑이 외출할 땐 항상 문 밖까지 배웅해주고 마중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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