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란과 어여쁜 후배
지난 해 5월 스물 세 송이 피어나서 온집안을 환하게 밝혀 주던 녀석의 흔적은 겨우내 빨간 열매로 잎들을 지켜주었습니다. 오늘 보니 꽃대가 올라오고 있네요. 군자란 꽃대가 올라오면 봄이 머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1989년 2월 말, 대학 3년 후배 김숙희 선생님이 다 죽어가는 군자란을 나에게 주고 전근을 갔습니다. , 겨울 방학 동안 빈 교실에서 볼품없이 자랐던 군자란, 쥐 파먹은 듯한 잎만 달랑 두 장 붙어 있는 군자란 화분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깁니다.
같이 근무할 동안 가끔씩 장미꽃 한 송이를 교실로 배달시켜 주던 후배, 가끔씩 쪽지를 배달시켜 안부를 묻던 후배, 얼굴도 마음도 고운 후배, 그 후배를 생각하며 군자란에게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 해는 당연히 꽃을 볼 수 없었지요. 때 맞춰 물만 주는데도 녀석은 얼마나 잘 자라는지... 싱싱하게 자라는 초록잎 군자란을 보면 고운 미소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즐거운 이야기를 해 주는 후배가 생각납니다.
후배는 여름방학, 겨울방학, 일년에 두 차례, 해마다 잊지도 않고 전화를 합니다.
"선배님, 지금 전화 편하게 받을 수 있어요?"
"어머? 후배. 올해는 내가 먼저 하려고 했더니... 얼마든지..."
반년간 학교 생활한 이야기를 해 줍니다. 시간이 좀 되었다 싶으면 제가 그러지요.
"후배, 전화 요금 많이 나와요."
"선배님, 일년에 두 번 전화 하는데, 그런 걱정 말고 이야기 해요. 만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렇게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해요."
전화로 소근소근 , 나긋나긋 전해 주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이를 먹는 줄도, 세월 가는 줄도 모릅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성실한 교사 노릇을 하는 후배와 일년에 두 번 전화한 세월이 어느덧 이십년, 후배를 보듯 군자란을 키운 지도 이십년입니다.
군자란을 키운 지 5년이 지나면서 일 겁니다. 뿌리로 새끼를 치는지, 해마다 새촉들이 두 세 개씩 올라왔습니다. 분갈이 할 적마다 떼어서 이웃들에게 많이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군자란은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맺혀 있습니다. 그것을 떼버려야 군자란이 잘 자란다기에 해마다 빨간 색이 되기 전에 제거를 했습니다.
식물도감을 읽어보니, 열매를 심으면 3-5년 정도 되면 꽃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지난 해 처음으로 열매가 붉은 색이 되도록 겨우내내 놓아 두었습니다.
열매를 따서 해부해 보았습니다.
따서 화분 위에 올려 놓은 지 열흘 된 군자란 열매- 흙이 닿인 부분이 썩어서 속 알맹이가 보입니다.
손톱 가위로 껍질을 제거하니 속에는 수많은 씨앗이 들어 있었습니다. 12개이네요.
굵기 비교
작은 열매
작은 열매를 해부하니 달랑 한 개만 들어 있었는데, 크기는 위의 열매와 거의 비슷하네요.
키운 지 이십년 된 군자란 - 잎 새 사이로 꽃대가 보입니다.
잎을 젖히고 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주황색 군자란 꽃이 화려하게 피는 그날, 후배에게 전화해야겠습니다.
씨앗을 잘 발아시켜 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분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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