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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탐사 rural exploration/녹색 장원

정월 열나흗날의 수채화

by Asparagus 2009.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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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8일 일요일 오전 내내 안개, 오후 약한 햇살

 

아침 먹고 오랜만에 방에서 뒹굴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아차.'하며 부엌으로 갔다. 

'내일이 정월 대보름인데... 아들에게 오곡밥을 해 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내가 뭐하지?' 

깜빡 잊고 정월 대보름날을 대비해서 오곡 재료들을 사 두지 못했다. 냉장고에서 찾아낸 각종 곡물들로 오곡밥이 아닌 잡곡밥을 하기로 했다. 찹쌀 세 컵, 율무 반 컵, 팥 반 컵, 흰콩 반 컵, 녹두 반 컵, 땅콩 반 컵, 홍삼 일곱 조각, 곶감 두 개, 대추 열 개, 호두 반 컵으로 점심을 했다. 팥과 홍삼, 흰콩만 따로 압력 밥솥에 취사를 해서 익힌 후, 다시 위의 모든 재료를 넣어서 취사를 했다. 조와 수수는 사놓지 않아서 넣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밥이 될 동안 피마자 잎과 고사리를 삶아 기름에 볶아서 나물을 만들었다. 피마자잎은 텃밭에 몇 포기 심어 놓고 주일마다 양지에 오면 따서 말려 놓은 것이다. 고사리는 해마다 황학산 어느 양지바른 산골짜기에 봐 놓은 고사리밭에서 꺾은 올고사리이다. 東에게 나물 볶는 방법을 전수시킨 덕분, 맛있게 잘 볶아주었다. 나는 그사이 동태, 오징어, 표고버섯, 무를 넣어서 찌개를 끓였다. 다시마 넣는 것을 잊어버렸다. 

 

커다란 솥에 무를 덤성덤성 썰어넣고 두부, 명태, 오징어를 넣어서 푹 끓인 찌개. 결혼 전까지 친정 어머니는 보름이 되면 찰밥과 함께 꼭 이 찌개를 끓여 주셨다. 

 

먹으면서 배운 것인가? 어머니는 어떻게 반찬을 만들어라고 한번도 가르쳐 주시지 않았고, 반찬 만들 줄도 모르고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이 오래될수록 언젠가부터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재료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똘지가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밥이 왜 이렇게 달아요?" 한다.

"대추와 곶감을 넣어서 그럴 거야. 맛은 어때?"

"맛있어요."

"고맙구나. 많이 먹으렴. 너 군대 갔다 와서 처음 맞는 정월 대보름이잖아."

  

똘지가 서울로 갈 때 동생과 저녁으로 먹으라고 밥과 반찬들을 싸 주었다. 저녁 먹고 화분에 물을 주고 샤워하고 나니 밤 열 한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일요일에도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둘째 녀석이 안쓰럽고, 보고싶다.

 

 "똘지야, 뒤 돌아 봐!"  "찰칵!" 네 모습 찍으려고...

 "엄마, 빠이빠이"

 "안녕! 다음 주에는 동생이랑 같이 와!"

 "아빠가 차 대기 시켜 놓았네, 얼른 잘 가!"

 아들은 기숙사로 가기 위해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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