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아스파라거스
폴딱폴딱
고무줄놀이
해지도록 하다가
어머니 심부름 놓쳐 버렸다.
두근두근
쿵덕쿵덕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고개 숙여 집으로 가는 길
길 가 민들레 배시시 웃고
담장 위 참새
짹짹 째재잭
나를 놀린다.
수록 잡지 2004년 1학년 교육자료 5월호
어제 퇴근길에 친정 어머니에게 다녀왔습니다.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막내딸이 오기를 기다리다 못해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어디까지 왔노?"
"지금 다와가요."
현관에 들어가니 어머니는 벌써 소박한 밥상을 차려 놓으시고 '하마나 올까? 하마나 올까?' 목을 빼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밥상에 앉자마자, 몇번이나 데운 국을 퍼놓으시고 검은 햇콩을 넣은 밥을 떠 주었습니다.
밀가루를 묻혀서 찐 고추찜과 화단에서 가꾼 배추를 삶아서 된장을 넣고 무친 나물, 조기 두 마리, 들깻잎 장아찌, 등등으로 저녁을 먹으며 생각했습니다. 고마우신 어머니. 어렸을 때부터 먹었던 그 식단을 이 나이 되도록 먹을 수 있는 행운은 바로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문득 지난 날 써 놓은 동시가 생각났습니다. 60년대, 그땐 어머니는 나에게 왜 그리 많은 심부름을 시켰을까요? 골목에서 한창 놀고 있는 나를 불러서
"이거 고모집에 좀 갖다 드려라."
어머니가 한번씩 콩죽이랑, 찹쌀 새알심으로 만든 수제비 등 등 별식을 만들었을 때는 꼭 이웃에 살고 계시는 고모네 집에 갖다 주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큰소리로 대답해놓고선 친구들과 노느라 깜박 잊어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손수 고모네 집에 가셨습니다. 한 두 번 까먹으면 괜찮을텐데, 어릴 적 나는 번번히 어머니 심부름을 놓쳐버린 말괄량이였습니다.
그때의 젊은 어머니는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되셨고, 고모는 하늘 나라로 가신지 이십년도 넘었네요. 유수 같은 세월 앞엔 우리 인간들은 한갓 점일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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