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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처럼 향기롭게, 나무처럼 튼튼히!
식물 탐사 Plant Exploration/제라 예찬

징그러운 지렁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by Asparagus 201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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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동장군이 몸도 마음도 움츠려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베란다에는 깔깔 웃음소리 나는 듯합니다.

한 두 송이씩 활짝 피어나서 유혹하는 빨강 제라늄

꽃볼이 너무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어요.

 

 

지난 봄에 두 줄기 삽목하여 꽂아놓았더니 뿌리가 제대로 내려서 줄기차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지렁이 넣어놓고 사육하는 화분 위에 올려놓았더니 조그마한 화분 밑으로 뿌리 하나가 내려서 거름을 다 빨아들이고 있었겠지요?

화분을 쑥 뽑아올리니, 이것 보세요. 뿌리 하나가 얼마나 길게 뻗어있었는지....

영양과잉으로 잎도 제 손바닥보다 더 크고, 꽃송이도 제 주먹보다 더 크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안방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화장대 사이드에 올려놓고 비교해보았습니다.  분재형으로 자라는 엄마 제라늄이 말을 할 줄 안다면 영양과잉인 제라늄 모습보고 뭐라고 말했겠어요?

"너 지렁이가 만들어놓은 영양가 다 빼앗아먹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었구나. 고마워."

이렇게?

 

사람인 저는 제라늄 화분을 집어들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에구구, 내가 다른 화분들에게 고루 나누어주기도 전에 너 혼자 영양가 있는 것을 다 빨아먹었구나.'

불타는 벤쿠버 단풍 제라늄입니다.

동장군도 불타는 제라늄 앞에선 주눅들어 꼬리를 내렸나 봅니다.

 

 

 

 

흰무늬 제라늄도 집어와서 화장대 사이드에 올렸습니다.

한밤에 제라늄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키가 너무 커서 초대받지 못한 애플 제라늄은 그냥 베란다 한구석에서 저희들끼리 잔치를 벌렸더라구요.

 

 애플 제라늄

 사과향이 멋진 아이

 깔끔한 색깔로 피어난 잔잔한 애플제라늄 꽃들의 향연

 

일년 열 두 달 피고 지는 제라늄인데도

그때마다

붉은 꽃은 붉어서 어여쁘고

분홍꽃은 분홍이어서 귀엽고

하얀 꽃은 하얘서 깔끔하다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봅니다.

 

지렁이가 사는 화분에 쌀 씻으며 받아놓은 쌀뜨물도 부어주고, 사과껍질이랑 귤껍질, 계란껍질, 반찬 남은 찌꺼기를 넣어주고 그 위에 흙을 덮어서 음식물 찌꺼기가 보이지 않게 하면, 훌륭한 거름이 된다는 걸, 우리 집 제라늄이 증명해 주고 있잖아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징그러워하는 것이 바로 지렁이이지만, 지렁이 먹이 때 맞춰 잘 주고 있는지 벌써 십년이 넘었습니다. 흙 속에 파묻혀 있으니 제가 그 녀석을 잘 만날 일은 없어요. 그런데 일 년에 한 두 번은 만나기도 해요. 여름날 화분에 물 주고나서 돌아서다보면 한 두 마리 꿈틀거리며 베란다를 기어다녀요.

'으~~ 어쩐다냐? 난 아직도 네 모습은 징그러워.'

그리고 냅다 고함을 지릅니다.

"東아. 지렁이 나왔다, 빨리 잡으시우."

남편은 변함없이 그럽니다.

"지렁이 나와서 우야라꼬?"

그리곤 싱긋 웃으며 베란다에 와서 지렁이를 손으로 잡아 화분 속으로 슬쩍 밀어넣습니다.

 

언제쯤이면 지렁이 본 모습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런지요?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모순스런 사람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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