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잡았습니다. 메뚜기를 열심히 잡다보니 들판 구석구석에 한 줄로 나란히 서있는 벼이삭들이 보였습니다. 마침 논둑길을 지나는 논주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 벼는 왜 베지 않고 그냥 두십니까?"
"콤바인이 못 베어내어서 그렇지요."
"그럼, 제가 논에 남아 있는 벼이삭 뜯으면 될까요?"
"얼마든지 가져 가십시오."
이렇게 해서 메뚜기 잡다말고 벼이삭을 채취했습니다. 넓디넓은 논에 남겨진 벼이삭들, 뜯어보니 그 양이 얼마나 많던지요. 우리 동네 논들은 전부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메뚜기도 버글버글합니다. 당연히 농약 치지 않은 벼는 최상급 쌀입니다. 이 귀한 벼들을 하나하나씩 뜯어 모아놓긴 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보관해 둔 벼이삭들입니다.
문득 인터넷 검색으로 도정기를 구입해?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가정용 도정기'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세상에나'
전 신제품을 사려고 했는데 미사용 신제품을 저가에 판매한다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전화하니 당장 택배로 부쳐주어 그 다음날 받았습니다.
기계에 벼를 집어넣으니 순식간에 껍질이 벗겨져 나왔습니다. 정미소에서 보았던 도정을 집에서 이렇게 하다니 이 얼마나 신기한지...
왼쪽 서랍에는 벼 껍질이
오른쪽 서랍에는 도정된 현미쌀이 주루룩 쏟아져나왔습니다.
미강과 현미쌀
친정 어머니에게 여쭈어서 찐쌀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벼를 하루 이상 푹 불려서 찜기에 찐 다음 다시 햇살 좋은 곳에 펼쳐 말립니다. 겉껍질이 잘 말랐으면 절구에 넣고 절구공이를 활용하여 껍질을 벗깁니다.
이 찐쌀 한 식기를 만들기 위해 몇 시간 절구공이와 씨름하고 껍질 불어 날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눈깜짝 할 동안 순식간에 찐쌀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왼쪽은 도정기가 만들어놓은 찐쌀, 오른쪽은 100% 수제 찐쌀, 물론 수제가 100% 현미 찐쌀이고 맛도 영양도 월등합니다만, 기계힘을 빌어서 순식간에 만든 찐쌀도 맛이 좋더군요.
벼 겉껍질은 화단에 버리고
속껍질? 미강이라고 하는군요.
지금 주목되는 미강은?
미강의 효용이 참으로 대단한 것이네요? 현미도 먹고 미강도 활용하고.... 미니 도정기, 정말 잘 구입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쌀부스러기와 미강을 후라이펜에 볶아서 현미차를 끓여 보았습니다.
누룽지 맛이 나는 구수한 현미차 한 잔에 몸도 마음도 다 녹아내렸습니다.
현미차 한 잔 마시며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시골에 살고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무공해 먹거리도 놓친다는 사실입니다. 가을걷이 끝나고 난 들판에서 벼이삭 뜯고 줍는 것이 부끄러운 행위가 아닐진데, 문명의 이기 앞에 사람들은 자꾸만 게을러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일이?
도정기 사흘 사용하고 나니 작동을 멈추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맘에 쏙 드는 전자제품을 단 세 번 도정하고나니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과부화가 되었나 싶어 모터를 식혀서 돌려보아도 감감무소식, 한번 스톱한 기계는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설명서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하니 없는 번호라고 합니다.
그제서야 인터넷으로 도정기를 만든 회사를 검색해보니 발명된지도 십 여년전, 회사는 벌써 망하고 없더군요. 그러니 A/S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고장난 도정기를 뜯으며 말하대요.
"안그래도 속이 궁금해 죽을 뻔했는데 어떻게 생긴 것인지 보기나 하자."
이렇게 해서 무려 세 번이나 뜯었다 조립했다 하더군요.
손재주 좋은 남편이 고장난 부분 찾아내었습니다. 다행히 모터가 아닌 전기 안전판인지 뭔지가 접속 불량으로 전기가 흐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대요. 볼 일 갔다오니 완벽히 고쳐 놓았더라구요.
신제품이 나왔을 땐 주부들 사이에선 선풍적 인기를 끌었겠지만 이런 저런 고장이 잦았을 것 같습니다. 수시로 A/S해달라는 전화에 아마 만든 회사가 몸살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 때문에 망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모터가 고장나지 않는 이상 남편에게 A/S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역시 구닥다리 현미기이지만 잘 구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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