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6일 일요일 날씨 맑음
東과 아들 둘을 앞세워 봄꽃맞이 구경을 갔습니다. 장소는 큰아들이 근무하는 연세대학교 교정 속으로...
창천동 골목 공원을 빠져나오니 신촌 대로변엔 대형버스들이 줄지어 지나고 있습니다.
담장가 개나리들이 흐드러졌습니다.
연세대학교 축구장에선 축구하는 사람들, 트랙을 걷거나 달리기 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진달래꽃이 화사하게 피어 유혹합니다. 예년보다 열흘 일찍 피어난 진달래, 서울에서 3월에 진달래가 만개하다니... 지구 온난화를 실감합니다. 벚꽃도 질세라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서울 하늘이 청명합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없는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의과대학과 세브란스 병원 건물 쪽으로 가는 길 양옆의 벚나무는 일주일 후 쯤이면 개화하겠어요.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앞 목련나무에서 목련꽃들이 봄꽃 향연을 열고 있습니다. 향기가 기분 좋게 합니다.
대형 화분에 심어놓은 팬지도 봄을 노래합니다.
흰나비들이 떼로 몰려온 듯한 목련꽃 봄의 향연
치과 대학을 지나 위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저 멀리 연세전파천문대가 보입니다. 가보아야겠지요?
삼부자三父子가 나린히 걸어가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뒤따라가며 속으로 궁금해집니다.
연세전파천문대 가는 길
우리가 구경하는 동안 저 큰 연세전파천문대가 두 번이나 45도씩 이동했습니다. 거대한 기구가 돌아갈 적마다 몸이 흠칫하며 놀랐습니다. 저 속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회 되면 구경해보고 싶습니다.
연세대학교가 자랑하는 청송대 소나무 숲 속길을 걸었습니다.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삼부자를 불러세웠습니다.
"아, 뒤 좀 돌아보세요. 여왕님이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도 않고서..."
"엄마, 갑자기 왜?"
"잘 따라오다가 갑자기 왜?"
"아, 청송대 속에 핀 진달래꽃 좀 보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활짝 피었거나 말거나 삼부자는 가던 길을 걸어갑니다.
'흐, 무드 없는 삼부자 같으니라고... 사진 한 장 찍어주지도 않고...'
혼자 쭝얼쭝얼하며 뒤따라 갔습니다.
연세대학교 청송대(聽松臺)는 들을 청聽 소나무 송松 돈대 대臺입니다. 보통 쓰는 푸를 청靑인 줄 알았는데 들을 청聽이라니... 청송대는 즉 소나무 소리를 듣는 장소라는 곳입니다. 새순이 돋아나는 깊어가는 봄에 다시 와 보아야겠습니다. 풋풋한 소나무 향기를 맡는 곳이 아닌 듣는 곳,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장소이군요. 팻말을 읽어 보니 학창 시절 참 좋아했던 신록예찬 수필의 모티브가 된 숲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글 말미에 신록예찬 수필을 써 놓았습니다.
청송대를 지나 고색 찬란한 연세대학교 상암관 정경입니다. 담쟁이덩굴이 초록이 되는 여름이면 더더욱 멋진 건물입니다.
아들과 함께 연세대학교 교정을 걸으면서 아스라이 멀어져 간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 속의 저를 발견합니다.
벚꽃과 목련과 산수유가 함께 어울려 봄의 향연을 열고 있는 아름다운 연세대학교에서 아들이 근무한다니 뿌듯합니다.
수천수만 송이 목련 앞에 선 나, 어느새 세월이 이만큼 흘렀나요? 큰아들이 한 컷 찰칵해 주었습니다.
삼부자와 함께 한 연세대학교 교정에서의 봄꽃 향연 구경을 잘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늘 식구들과 함께 걸으며 건진 것은 바로 연세대학교에 청송대가 있다는 것과 이양하 님의 신록예찬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이양하(李敭河, 1904년~1963년)가 쓴 수필 '신록예찬'을 함께 읽어봅시다.
신록예찬(新綠禮讚)
이양하
봄 · 여름 · 가을 ·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중에도 그 혜택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滿山)에 녹엽(綠葉)이 우거진 이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驚異)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綠陰)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ㅡ우리가 비록 빈한(貧寒)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우리 연전(延專) 일대(一帶)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文法)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 놓듯이 옷을 훨훨 털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올라간다. 나의 자리래야 솔밭 사이에 있는 겨우 걸터앉을만한 조그마한 그루터기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오고 가는 여러 동료가 나의 자리라고 명명(命名)하여 주고, 또 나 자신 이 소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솔잎 사이로 흐느끼는 하늘을 우러러볼 때 하루 동안에도 가장 기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므로 시간이 여유 있는 때마다 나는 한 큰 특권이나 차지하는 듯이 이 자리를 찾아 올라와 하염없이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물론, 나에게 멀리 군속(群俗)을 떠나 고고(孤高)한가운데 처(處)하기를 원하는 선골(仙骨)이 있다거나, 또는 나의 성미가 남달리 괴팍하여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역시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즐거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갑남을녀(甲男乙女)의 하나요,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缺點)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ㅡ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은 이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授受)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롯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아니할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사람이란ㅡ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칠정(五欲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데 마음의 영일(寧日)을 갖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卑小)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汚點) 또 한 잡음(雜音)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될 수 있으면 이러한 때를 타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한 가지로 숨 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사실 이즈음 신록에는, 우리 사람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앉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볕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주객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 황홀하다 할까 현요(眩耀)하다 할까,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장무애(無障無礙) 이러한 때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스럽고, 또 이러한 때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의 혼란도 없고 심정의 고갈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와 유열(愉悅)과 평화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이러한 때에 비로소 나는 모든 오욕과 모든 읍울(悒鬱)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나의 마음과 모든 상극과 갈등을 극복하고 고양(高揚)하여 조화 있고 질서 있는 세계에까지 높인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에, 초록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淸濁)이 없다. 가장 연한 초록에서 가장 짙은 초록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그러나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잎이 돋아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幼年)이라 하면, 삼복(三伏) 염천(炎天)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壯年)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즈음 같은 그의 청춘시대,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혹 2, 3주일을 셀 수 있으나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불과 3, 4일이 되지 못하여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素朴)하고 겸허(謙虛)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 또는 낙엽송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즈음의 섶, 밤, 버들 또는 임간(林間)에 있는 이름 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한 자색(姿色),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한 향훈(香薰),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극치(極致)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讚美)하고 감사할 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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