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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탐사 culinary exploration/담금 약주

노봉방의 효능은 어떠하기에 그는 목숨까지 걸었을까?

by Asparagus 2008.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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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봉방의 효능은 어떠하기에 그는 목숨까지 걸었을까?

2006년 11월 11일 토요일


퇴근하고 집에 와서 간단히 점심을 먹다. 東은 밥숟가락 놓자마자 완전 무장할 준비를 했다고 노봉방 따러 가자고 한다. 일주일 내내 노봉방 따는 방법 연구하고, 말벌에게 쏘이지 않으려고 자작 헬멧을 만들었다고 했으니, 말릴 수도 없다. 아니 말려도 포기할 마음은 단 1%도 없다고 했다. 나는 차속에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오후 3시에 집을 나서다. 쉼터에 도착하니 4시 50분. 저녁을 택한 이유는 벌이 밤이 되면 자기네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아 덜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때 세워 놓은 차 위로 말벌 몇 마리가 비행하고 있었다. 장비를 주섬주섬 챙긴 그가 만약의 사태(말벌에 쏘이면 졸도 내지 ??)에 대비하려는 듯, 차 열쇠를 나에게 맡겼다. 그러더니, 옷 입는 것은 도와주어야 된다며 근처까지 가지고 했다. 나에게는 산 초입부터 미리 벌에 쏘이지 않게 준비를 하라고 했다. 양파망으로 얼굴에 쓰라고 했다. 그가 권해 주는 대로 난생 처음으로 바지를 네 개나 끼어 입고 산을 올라가는데, 몸이 둔해져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데다가 몸의 열기로 속옷은 이내 땀에 젖어들었다. 뒤집어 쓴 양파망으로 인해 시야가 잘 보아지 않아 도중에 벗어버렸다. 얼굴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말벌집 5미터 근처에서 장비를 내려놓았다. 벌에 쏘이지 않게 비옷을 입으라고 했다. 멀리서 보아도 벌들이 그때까지 벌집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아참, 웃긴(?)그의 모습 - 뭐 인터넷 산야초 동호회원들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나 어쩌나…- 을 서술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겹이나 껴입은 복장-내복, 티셔츠, 등산복 두 개, 바람막이 옷 위에 비닐 비옷, 마지막으로 소쿠리 두 개로 만든 모자를 쓰고 상체는 투명 비닐로 한 겹 더 둘렀다. 손에는 목장갑, 가죽장갑, 빨래용 고무장갑을 꼈다. ‘아니? 손이 자유로워야지. 저렇게 해서 어떻게 잡목을 제거하고 말벌집을 따지?’ 게다가 벌이 한 마리라도 몸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팔목, 발목, 허리 등등 옷이 겹쳐진 부분에는 테이프로 온몸을 도배하다시피 붙여 달라고 했다. 그렇게 둔한 복장으로 무슨 재주로 벌집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해 달라는 대로 시중을 들어 줄 수밖에…. 통풍이 안 되어 땀과 자기 몸에서 발산하는 열로 인해 단 10분도 작업을 제대로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우려는 뒤로 하고 씩씩하게 말벌집 있는 산비탈을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가치가 있기에 저렇게 목숨 걸고 꼭 따고 싶을까?'

시간은 어느덧 6시가 넘어 주위가 어두워 분간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가 가고 난 뒤에야 그이뿐만 아니라 내 목숨도 걱정되었다. 말벌집을 딸 적에 감싸려고 가져간 모기장을 꺼내어 뒤집어쓰고 앉아 東이 작업을 끝낼 때까지 가슴조이며 기다렸다.


산비탈의 주변 잡목과 칡덩굴을 제거하러 간 그가 예상보다도 휠씬 빨리 나에게 왔다.

“그만 포기하고 가지? 이 깊은 산속에서 이러고 있는 우리 모습 내가 봐도 너무 웃긴다. 솔직히 멧돼지 나올까 무서워 죽을 뻔했네요.”

했더니 의외로 두 말 않고 그러자고 했다. 테이프를 떼어 주는데 붙일 때보다 더 힘이 들었다.  말벌에 쏘여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열기로 사람 잡을 뻔했다. 땀에 흠뻑 젖어 숨을 헐떡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난 왜 그렇게 웃음보가 터졌을까?


건너편 왼쪽 산 위로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올라왔다. 노봉방 포획할 준비물들을 철수해서 내려오며 그가 입은 복장을 생각하면 또 웃음이 절로 나와서 산속에서 큰소리로 얼마나 웃었는지...


후래쉬를 비춰가며 어두운 산 계곡을 내려오는데 혹 뱀이 밟힐까보아 막대기로 땅을 쿵쿵 치며 길을 만들어 내려갔다. 뒤에서 금방이라도 멧돼지가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무서움을 억지로 참고 내가 길을 내어 앞장서고 그는 뒤따라 내려왔다. 주차한 곳까지 가며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고 한편으로는 이왕 갔는데, 성공을 하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차에까지 와서 차문을 여는 순간 어쨌거나 안도의 한숨.

추풍령 휴게소에서 저녁을 사먹고 집에 도착하니 9시 25분.

봉침 하는 언니에게 전화했더니 밤에는 벌들이 집에서 잘 나오지 않고 또 연기를 쏘이면 벌들이 힘을 못 쓴다고 했다. 처음부터 언니를 데리고 갈 생각을 왜 못했지?

 

(아, 아깝다, 디카를 가져가지 않아서 그의 화려한 변신 모습을 찍지 못했다. 대신 내 머릿속에 꼭꼭 박아 두었는데, 먼 후일 위의 글을 읽으면 그 모습이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잘 스크랩 될 거야. 그러니 귀찮지만 일기를 써 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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