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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처럼 향기롭게, 나무처럼 튼튼히!
전원 탐사 rural exploration/고운 마음

나에게 온 백년 된 보물 - 화로

by Asparagus 2009.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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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화로, 나에게 오다

우리 집 이웃이 될 2호집은 언제 신축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나대지로 남아 여름이면 칡덩굴이 휘감고, 가을이면 단지내 사람들이 낙엽을 버리는 터가 되고 있었다. 우리도 지난 해 1월, 이사 오자마자 옆집 공터에 전지한 나무둥치와 가지들을 많이도 갖다 버렸다.

봄이 되자 넓은 터가 아까워서 농사를 짓기로 했다. 집 뒤안의 작은 텃밭은 꽃밭으로 가꾸고, 옆 공터에 이것 저것 많은 종류를 심어보았다.

 

배추, 무, 상치, 고구마, 호박, 박, 옥수수, 고추, 파프리카, 피망, 가지, 콩, 팥, 갓끈동부콩, 작두콩, 치커리, 당근, 들깨, 피마자, 수박, 참외 등등을 조금씩 심어 보았다.

 

화초 키우듯 조금씩 키운 그 채소들에게 흔한 화학 비료 한 번 주지 않았고, 농약 한 번 뿌리지 않았다. 그래도 식물들은 자랐다. 전문적인 밭작물 축에는 못들어갈 볼품 없는 모양새였지만, 고추는 여름, 가을 내내 따먹을 수 있었고, 애호박은 질리도록 따먹고도 늙은 호박  30Kg으로 액기스를 만들었다. 늙은 호박 20개 정도는 친인척,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박은 추석 무렵 박나물을 해먹고, 바가지 4개 만들었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딴 박들을 잘 갈무리해 놓지 못해 다 얼려 버렸다. 갖다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얼려서 버린 것이 가장 아까웠다. 박을 심었을 땐 그렇게 많이 달릴 줄 상상도 못했다가, 주렁주렁 달리는 박들을 보고 박바가지를 만들어서 여기저기 나눠주려고 했는데 허공으로 날아갔다.

 

실내 장식으로 키우던 고구마 순을 잘라서 심었더니, 가을에 두 박스나 캤다. 제멋대로 자란 고구마의 크기는 나를 압도시킬 정도인 대형 무우 만한 것부터 새끼 손가락 만한 것까지, 아무튼 크기가 들쑥날쑥한 그 고구마를 겨울방학 내내 숯불에 구워 먹었다.

 

숯불!

지금부터 이야기 시작이다.

공터에 버려 놓은 나뭇가지들이 겨울이 되니 앙상하게 드러나서 너무 보기 싫었다. 그래서 태워 없애기로 했던 것이다. 시간이 날 적마다 공터에서 조금씩 태웠는데, 글쎄 나무를 태우다보니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었다.

 

'아후, 옛날 할아버지들이 쓰시던 화로가 있었으면 화로에 숯불을 담아 차를 끓였으면 좋겠다.'

마음 속으로 뜬금없이 화로가 생각났다. 나 자신은 물론 내 기억 속의 우리 부모님이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화로가 왜 생각났을까? 화로만 있다면 공터에서 이글이글 타고 남은 숯불을 담아 차를 끓여 먹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왜 떠올랐을까? (내가 네 살 되던 해 대구로 이사 오신 우리 부모님이 영천에 사실 때는 당연히 화로를 쓰셨을 것이다)

 

지난 겨울 용인 장날, 구경 갔다가 옛날 사람들이 쓰던 물건을 파는 난전을 지나치게 되었다. 청동 화로가 있어서 구입하려고 하니, 바깥 사람이 "그것 사서 어디에 쓰게? 장식용으로?" 이러면서 시큰둥한 표정을 짓기에 그만 둔 적 있다.

 

그런데, 어쩜, 화로가 오늘 나에게 온 것이다. 그것도 멀리 전라도 곡성에서 말이다. 우연히 내 블로그에 심연식님이 글을 남기셔서 블로그 구경 갔다가 <100년된 내 보물 팔기>라는 카테고리가 눈에 띄었다. 클릭하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화로였다. 

 심연식님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던 모습 -<100년 된 내 보물팔기>의 할아버지 시대의 서민들이 사용한 화로-

 

구입 의사를 밝혔더니, 허브 몇 종류와 교환하자고 하셨다. 생활이 바빠서 허브를 몇 종류 챙겨보내 드리지도 못했는데 직장으로 보내주셨다. 박스를 연 순간, 위의 사진과 실물이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하얗게 집을 지은 거미줄까지 포함해서...

 

붉은 녹이 덕지덕지 쓴 쇠화로를 난생 처음 만난 것이다. 동료 선생님들이 구경하더니 한 마디씩 했다.

"그렇게 녹슨 것 어디에 쓰려고? 그저 줘도 안하겠다."

 

난 그냥 웃기만 했다.

퇴근 후 화로를 들고 양지 집에 오자마자 심연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녹을 깨끗이 씻어 내고 콩기름을 듬뿍 발라서 헝겊으로 닦았다. 

 녹은 간 곳 없고 멋진 화로로 변신했다.

 식탁에 접시를 깔고 그 위에 화로를 올려 보았다. 옆 모습이 너무 어여쁘다.

 쇠고리가 있는 손잡이 모습

 화로!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지다.

 장식장에 쏙 들어갔다. 크기도 내가 머리 속에 생각했던 것과 같아서 기뻤다.

 화로가 있으면 화로 주걱(?)이 있어야겠지? 있다. 저 여닫이 속에... 처녀때부터 골동품을 하나씩, 둘씩 사모았을 때 화로 주걱도 사 놓았던 것이다. 화로 주걱을 살 땐 언젠가는 반드시 화로도 사야지 하는 맘이 있었다.

 

겨울이 오면 공터에 아직도 태산같이 쌓여있는 나뭇가지들을 또 태울 것이고, 그땐 화로에 숯불을 담아서, 삼발이를 걸고 따끈한 백초차를 마실 수 있으리. 내일 우선 연습으로 화로에 숯불을 한번 담아보아야겠다. 화로에 숯불 담는 법을 다른 사람 글을 읽고 배웠다.

 

숯불 담는 법 : 먼저 화로 밑에 재를 깔고 숯을 넣은 다음 다시 재로 숯불을 덮어준다. 왜? 숯이 공기와 닿이면 빨리 타기 때문에 재로 다둑여 주면 숯불이 오래간다고... 

 

심연식 선생님,

보내주신 화로, 소중히 잘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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