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꽃 보셨어요?
수수를 언젠가는 꼭 한번 심어보리라. 생각했던 그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몇 년만이냐고 물으신다면 가르쳐 드리겠어요.^^
지금으로부터 반백년이 다 되어갑니다. (제발 맘 속으로 숫자에 불과한 나이는 계산하지 마세요.) 또래보다 일년 먼저 입학해서 전 항상 꼬맹이였습니다. 초등 6학년 동안 첫째 자리에 앉았습니다. 첫째 자리에 앉은 덕분,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나 봅니다.
제가 직접 심고, 자라는 모습을 이렇게 사진으로 찍으며 생생히 만난 수수꽃,
수수꽃과 함께 그 옛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공간 이동해보려 합니다. 함께 가보시지 않을래요?
양지 텃밭에 뿌린 수수 모종들 - 제가 뿌려 놓고도 강아지풀인 줄 알았습니다.
학교 화단에 옮겨 심은 수수 한 그루. 어느새 짠! 하고 우뚝 솟아올랐습니다.
이 수수꽃대가 바로 마당 빗자루가 된다는 사실, 몰랐지요?
벌써 탱글탱글 여물어가는 수수알갱이, 수수를 갈아서 만든 수수부꾸미 맛, 기가 막히잖아요?
수수 수꽃이랑 암꽃, 구별해 보세요.
이렇게 감회무량한 수수꽃을 보며 그 옛날 초등학교 1학년때를 회상해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은 키가 전봇대같은 남자 선생님이었습니다.(제가 워낙 작았으니 그렇게 느낄 수 밖에요)
선생님은 매일 넷째 시간에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셨어요. '콩쥐팥쥐,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흥부 놀부, 어리석은 호랑이와 꾀 많은 토끼, 청개구리, 염소와 여우' 등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장면 등을 상상했습니다. 요즘은 텔레비전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다 잡아먹어서 걱정입니다.
그때 일학년 선생님이 들려 주시던 옛날 이야기들은 먼훗날 제가 동화작가 되게 한 밑거름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또한 교직에 발을 디딘 첫날부터 지금까지 저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그 많은 이야기 중, 제 머리 속에 가장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입니다. 선생님이
"떡 하나 주면 안잡아 묵지!"
하실 때의 얼굴 표정, 이제는 너무 오래 되어서 선생님 얼굴을 다 잊어버렸지만, 아무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집에 가기 싫을 정도였어요. 선생님이 들려준 그 이야기를 몇 십년이 지난 지금 회상해 봅니다.
즉석에서 동화를 재구성해서 글을 써봅니다. 우리 모두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에 빠져봅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누가 와도 절대 문 열어 주지 마."
엄마는 신신당부하고 오누이를 집에 남겨 둔 채, 고개 너머 마을에 떡을 팔러 갑니다.
엄마는 그날 따라 떡을 하나도 못 팔고 첫째 산고개를 오릅니다.
첫째 산고개에 이르렀을 때 불쑥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어머니가 이고 있는 떡보따리에서 떡을 하나 던져 줍니다.
"옛다, 이 것 먹고 가!"
호랑이는 떡을 얼른 받아 먹습니다.
둘째 고개에 호랑이가 또 나타났습니다.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엄마는 떡 보퉁이를 내려서 또 떡 하나를 줍니다.
엄마가 고개 하나 넘을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떡을 달래서 받아 먹습니다.
셋째 고개, 넷째 고개, 다섯째 고개, 여섯째 고개, 일곱 째 고개, 여덟째 고개, 고개마다 나타난 호랑이에게 떡을 던져 주고 나니 아홉째 고개에서 마지막 떡을 호랑이에게 던져 줍니다.
열번째 고개에 다시 나타난 호랑이가 또 떡을 달라고 합니다.
"호랑이님, 이제 떡이 없어요."
"그럼 팔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엄마는
'팔 하나 없으면 남은 팔로 일하면 되지.' 생각하며 한쪽 팔을 내어 줍니다.
열한 번째 고개에 또 나타난 호랑이는 남은 팔을 달라고 합니다.
"팔이 없으면 입으로 일하면 되지" 하며 남은 팔을 내어 줍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이야기 하실 때 저는 팔이 없는 엄마를 생각하며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졌습니다.)
열 두 고개째 또 나타난 호랑이는 이제 다리를 달라고 합니다.
다리를 떼어 준 엄마는 걸을 수가 없습니다. 고개를 굴러갑니다. 호랑이는 언덕 아래로 굴러가는 엄마를 그냥 다 잡아 먹습니다. 그리고 엄마 치마와 저고리를 차려입고 오누이가 살고 있는 오두막으로 갑니다.
(호랑이가 엄마를 잡아 먹었다고 말할 때 저는 그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진짜 우리 엄마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것 같아서 너무 슬펐습니다.)
"엄마다. 대문 열어 줘!"
"우리 엄마 목소리는 쉰 목소리가 아닌데요?"
"엄마가 오늘 떡 파느라 피곤해서 그래."
"그럼, 대문 아래로 손을 넣어 보세요."
오누이는 대문 아래로 들어온 손을 만져 봅니다.
"우리 엄마 손에는 털이 없어요."
"엄마가 추워서 장갑을 꼈단다."
오누이는 대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 온 호랑이는 남매에게 저녁을 해 준다며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오빠가 치마 사이로 빠져 나온 호랑이 꼬리를 봅니다. 오빠는 여동생 손을 잡고 뒤안 우물가로 갑니다. 우물 옆에서 자라는 나무를 타고 나무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부엌에서 나온 호랑이가 오누이를 찾습니다.
"얘들아, 어디에 있니? 저녁 먹어야지."
그 때, 여동생이 말합니다.
"우리 엄마 아니잖아? 우리 엄마 옷을 입은 호랑이잖아?"
호랑이는 소리 나는 곳을 찾아 우물가로 왔습니다. 우물 속에 오누이가 보입니다. 호랑이가 우물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여동생이 호호 웃으며 말합니다.
"우물에 비친 것은 우리 그림자이지. 우리는 나무 위에 올라와 있지."
호랑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오누이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호랑이는 오누이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너희들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니?"
오빠가 말합니다.
"부엌에 있는 참기름을 바르고 올라왔지."
호랑이는 얼른 부엌으로 가서 참기름 병을 가지고 옵니다. 손에 참기름을 부어서 나무에 바르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발도 올라가지 못하고 자꾸 미끄러집니다. 그 모습을 본 여동생이 깔깔거리며 웃다가 말합니다.
"부엌에 가서 도끼를 가져와 나무를 찍으며 올라오면 되지."
호랑이는 재빨리 도끼를 가져와서 나무를 조금씩 찍으며 오릅니다. 이제 호랑이가 손을 뻗어서 오누이를 잡으면 됩니다.
오누이는 나무를 오르는 호랑이가 너무 무서워 하느님에게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 하느님, 저희들을 살려 주시려면 튼튼한 동아줄을 내려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 주세요.
하늘에서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왔습니다. 오누이는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호랑이도 나무 위에 올라서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 오누이 잡아 먹게 튼튼한 동아줄 내려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 주세요.
하늘에서 썩은 동아줄이 내려왔습니다. 호랑이는 하늘에서 내려 온 동아줄을 잡았습니다. 호랑이가 잡은 동아줄이 하늘로 올라가다가 그만 중간에서 툭 끊어졌습니다.
호랑이는 끊어진 썩은 동아줄과 함께 수수밭에 떨어졌습니다. 수수밭에는 그때 하늘에서 떨어져 죽은 호랑이 피가 지금도 있답니다. 그때 흘린 피가 수수밭으로 스며 들어 지금도 수수뿌리는 붉다고 해요. 참, 하늘로 올라간 오빠는 해님이 되고, 동생은 달님이 되었다고 해요. 끝.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들은 집으로 갔어요. 골목길을 걸어가며 지금도 볼 수 있다는 수수밭의 호랑이 피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또한 수수뿌리색깔이 붉은가 아닌가 꼭 확인해 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래고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서야 이렇게 확인했습니다.
수수밭에 떨어진 호랑이, 엉덩이가 깨지며 남긴 핏자국, 보이나요?
수수가 다 익으면 수수 뿌리도 캐어서 관찰해 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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