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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탐사 rural exploration/녹색 장원

만원짜리 휴대폰

by Asparagus 200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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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원 주고 바꾼 휴대폰

1996년, 주변 사람들이 유선 전화기 같은 휴대폰을 들고 다닐 때, 손에 쏙 들어 온다고 좋아라하며 구입했던 첫휴대폰, 6년째 되던 해, 고장났다. 이유는 너무 오래 써서 밧데리 수명이 다 되었고, 부분부분 기능도 정지되었다. 고쳐서 쓰려고 하니 그동안 새기능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고쳐도 쓸모가 없다고 새기종으로 구입하라고 했다.

 

2001년 두 번째 폰을 구입하기 전에 우선 회사에서 대여해 주는 휴대폰을 쓰라고 했다. 몇 주일 후, 다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첫번째 폰보다 더 멋진 휴대폰을 거금주고 구입하였다.

 

그런 휴대폰이 삼 년 쓰고 나니, 밧데리 수명이 짧아져 가고, 액정이 깨어져서 문자가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뜨려뜨린 덕분이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2004년, 세 번째 폰은 東이 구입해 주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은색폰을 사왔다. (은 그릇 종류는 정말 좋아하는데, 은색은 왜 그리 싫을까?) 거기다가 모양도 맘에 들지 않았다. 이왕 사준 것 그냥 쓰자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사용하고 나니 번호 한 번 누르려고 하면 손톱이 다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애 먹이는 애물단지로 변해갔다. 그런 휴대폰이어서 문자를 거의 보내지 않았다. 내 폰을 볼 적마다, 東이 새것을 구입하라고 노래노래 하였지만, 바꾸지 않았다. 말다툼까지 하면서도...

 

이유는 간단하다. 난 무슨 물건이든 쉽게 바꾸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그런 내 성격을 고치려고 해도 고치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지난 해부터 내 폰을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난 굳건히 이겨내고 6년째 사용하고 있다.

 

어제 우연히 엘지 텔레콤 대리점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고물 같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헌 폰을 이젠 떠나보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며, 용기를 내어 새폰을 사려고 들어갔다.

 

새폰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직원이 번호를 바꾸면 공짜폰을 준다고 한다. 공짜폰? 금덩이로 만든 공짜폰을 준대도 싫다. 또한 지금껏 이용한 내 번호에 대한 애착을 어찌 공짜폰과 바꾼단 말인가? 직원이 우선 114에 전화하여 폰 바꾸는 것 문의하라고 한다.

 

이런? 폰에서 들리는 상냥한 안내원이 내 폰을 반납하면 10.000원에 새폰을 준다나? 몇 십만원짜리 새폰을 회사에서 얼마 보상해 주고, 우수 고객이라서 얼마 보상해 주고, 빼고 나니 단 돈 만원에 새 폰으로 교체해 준다고...

 

묻는 말에 대답하고 즉시 신청을 했다.  만 하루만에 택배가 도착했다, 새폰이 내 손에 들어왔다. 포장지를 뜯어서 보니 일단 겉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쥔듯 만듯 가벼운 폰을 열어 보는 순간, 너무 슬펐다.

 

폰 숫자판들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엄지손톱만한 왕글씨였다.

'아니? 안내원은 나를 벌써 노안이 온 나이로 계산을 했는가? 난 아직 돋보기를 안쓰고도 깨알 같은 글씨가 잘도 보이는데...'

 

이왕 사려고 마음 먹은 것, 반납하고 내돈 다 주고 최신식 휴대폰으로 다시 바꾸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며 퇴근시간에 되어 집에 왔다.

 

東에게 새폰을 보여 주면서

"모양이 어때요? 글씨가 너무 커요."

하니

"글씨가 커서 좋네, 뭐."

이 한 마디에 그냥 쓰기로 했다.

 

낯설기만 하던 큼직한 숫자판, 시험 통화 몇 번 하지 않고도 그만 정이 들 것 같다.

아후, 내 마음이 이렇게 간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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