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초 또는 세 잎 꿩의 비름
2010년 11월 7일 일 종일 안개
한 밤에 만난 세 잎 꿩의 비름꽃입니다.
두 주일 전 첫추위가 온다기에 서둘러 집안에 들여놓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저 혼자 피어나서 이쁜 짓한 지 오래 인 것 같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꽃 잎 하나하나가 별빛처럼 고운 모습입니다.
나도 한번쯤은 생애 가장 어여뻤던 시절이 있었겠지요?
東에게 말하고 싶어요.
"東아, 젊은 날의 내 청춘 돌리도~"
중학교 3학년 때 난생 처음 받아 본 분홍 편지에 씌여진 연애 편지질의 범인은 바로 東이었습니다.
입시에 정신 없는 중3 여학생에게 왜 편지질은 해 가지고?
'내 인생, 그때부터 거미줄에 꽁꽁 묶여 버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집 앞 골목길에 東과 鉉, 머시마와 기집애가 어둑하도록 퍼질러 앉아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땅에 커다란 네모칸을 그어놓고, 각자 귀퉁이에 손으로 한 뼘 집을 만든 후, 작은 돌맹이를 세 번 튕겨서 집안으로 들어가면 땅이 넓어지는 놀이. 나는 간이 커서(?) 한 번 할 적마다 크게 튕겨서 큰 집을 만들기도 하지만 욕심이 과해서 번번히 선수를 빼앗기는 반면, 東은 성격이 꼼꼼해서 작게 세 번 튕겨 집을 넓혀 나갑니다. 언제 죽을까?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이 너머 머시마'는 죽을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차근차근 집을 넓혀 나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그때부터 성질이 나기 시작합니다. 벌떡 일어나서 애써 따 모은 내 땅을 발로 벅벅 지워버리고 말합니다.
"울 엄마가 저녁 먹어라고 부르기 전에 난 간데이? 니 혼자 그 땅 다 해라."
하곤 부리나케 우리 집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참으로 고시적 그때 그 시절 이야기, 불로초 꽃을 보며 문득 떠올려봅니다.
친정 언니네 집에서 한 줄기 꺾어온 불로초.
이상하게 친정 식구들은 내 말은 귀 기울여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고, 東의 말이라면 메주로 콩을 쑨대도 믿어줍니다. 그리고 東 편을 들어줍니다.
아주 어쩌다 한번씩
"東이 이러이러해서 미워 죽겠다."고 하소연하면
친정 엄마도, 친정 언니도
"니 성질이 급해서 그렇지, 김서방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니가 잘못했제? 니가 참아라."
이렇게 말해주니....
나참참, 나는 억울한 것 어디에 가서 하소연하나요?
곱게 물이 든 불로초 감상은 뒷전이고,오랜만에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며 혼자 웃습니다.
2010년 10월 6일 모습입니다. 역시 자연속에서 곱게 물든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배경 되는 피막이풀도 시간이 지나니 겁나게 무성해집니다.
여자의 생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파상이 쓴 소설 『여자의 일생』1같은, 그런 삶일까요?
주인공도 좋지만, 배경이 되는 삶도 아름다운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의지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늙으면 자식을 의지하는 삶.
중학교 때 『여자의 일생』을 읽고나서 '난 절대 저런 여자의 삶은 살지 않아야지' 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
니 훌쩍 커버린 아들을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애틋함 때문인지, 남편보다 더 챙겨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의 삶도 소설 속의 그 주인공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도 옛말 그른 것은 하나 없다지요?
품안의 자식이라고.... 자식에게 의지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악처가 효자 자식보다 낫다는 말이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곁에 없는 효자 자식보다 가려운 등 긁어주는 남편이 백 배 낫다는...
그 예전 땅따먹기 하면서 함께 소꿉놀이하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티격태격하면서 보낸 세월, 앞으로 얼마나 더 東과 티격태격할 지 모르지만 반세기 지난 이제서야 소꿉놀이 같은 삶에서 벗어나 조금씩, 아주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남편과 아내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원 생활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東아, 이제 우리도 다른 부부처럼 '여보, 당신' 소리 하면 안될까나? 그 소리 하는 게 와 부끄러운데? 나한테 제발 이제부터 '니'라는 말 그만 하면 안될까나? 그럼 나도 이제부터 東아라고 안할게.)
- 문학]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이 지은 장편 소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지방 귀족의 딸 잔의 기구한 일생을 사실적으로 그린,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다. 1883년에 발표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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