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3일 일요일 비
누구에서 들은 말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남자들은 결혼 후 20년쯤부터 철이 든다고 한다. 그런가? 지난 해 겨울 결혼 30주년을 맞았다. 결혼 삼십 주년이라고 해도 특별한 이벤트 하나 없었다. 아니 석혼식, 동혼식, 도혼식, 은혼식도 못해 봤으니 진주혼식인 30주년도 당연히 그냥 그렇게 보낸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내 잘못도 크다. 옆구리 찔러서라도 절을 받으면 될 텐데, 결혼기념일은커녕 내 생일도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해도 섭섭함을 표현하지 않았으니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결혼 7주년 때가 제일 기억난다. 東이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결혼 7주년 축하한다. 자! 선물!”
하면서 내민 것은 바로 껌 한 통이었다. 당시 껌이라면 후레쉬민트, 스피어민트 껌이었는데, 처음 보는 분홍색 포장인 신제품 에뜨랑제 껌이었다. 손바닥 길이만큼 되는 길고 날씬한 껌 한 통 받아들고 기뻐했던 당시 내 나이는 서른한 살.
그리고 몇 해 뒤였던가?
결혼기념일 날 장미꽃 일곱송이를 사온 적이 있다. 그 때는 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장미꽃 일곱 송이 받고 싶어요. 결혼 햇수만큼 사면 돈이 많이 드니 딱 일곱 송이만 사주세요.”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결혼기념일을 챙겨주었니, 못 챙겨주었니 하며 다투는 것보다 체념하며 사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난 가끔씩 위트를 발휘하곤 했다. 살아가며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을 샀을 때 나는 생일을 미리 당기거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이다.
난생 처음 자가용을 샀을 적에는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며 1989년 2월 아내 드림”
내가 탈 자가용을 샀을 때는 내가 남편이 되어 직접 이렇게 써서 나라는 아내에게 주었다.
“당신의 생일을 미리 당겨서 축하 자가용을 사드립니다. 무사 운전하세요. 남편 드림 1991년 6월”
아파트를 구입하고
“다가오는 東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 멋진 집을 선물해 드립니다. 아내 드림 1995년 9월”
아무튼 몇 년 전부터 東이 철(?)이 조금씩 드는 것 같더니, 전원주택을 마련하고부터는 나날이 철이 들고있는가? 남편에게 철이 든다고 하니 오히려 내가 철이 없는 것 같다. 모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 중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생각난다. 차라리 이 비유법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
장족의 발전이다. 인고의 세월이 흐르니, 이제 나를 이해해 주고,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는가?
달라진 것은 나와 대화가 조금씩 되는 것이다. 슈퍼우먼으로 살아온 내 생활을 이해하고 내가 바빠서 정신없을 때 집안일을 기꺼이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화를 내는 빈도가 줄어들고 집안일 하는 것에 생색을 내지 않는 것이다. (일인 몇 역을 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의 고충을 東은 진정 몰랐을까? 아니면 모른척 했을까?)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열손가락 마디가 다 아프다. 때로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마디마다 쿡쿡 쑤신다. 병원에 가니 염증 수치가 일반인은 평균 15까지가 정상이라는데, 나는 17로 나왔다. 의사에게 말했다.
“관절염 약을 먹으니 자꾸 살이 찌던데요. 이 정도 수치이면 약을 먹지 않고 견뎌 내면 안 될까요?”
“아파도 참을 수 있는 인내력이 있으면 그렇게 하세요.”
해서 약은 먹지 않고 견디는 중이다.
손가락이 아프기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東의 말씨, 표정에서 느끼는 것이다. 네 일 내 일 따지지 않고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아껴 주는 부부가 아름다운 것이리라.
작은 일,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 것, 결혼 생활은 서로 양보하며 인내심을 가질 것, 부부가 서로 이해하려면 일 년, 이년, 십년, 이십년도 짧은 세월이다, 적어도 25년은 같이 살아보자. 그래도 안 되면 삼십년, 그래도 안 되면 사십년, 오십년,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같이 살다보면 언젠가는 서로 서로의 일에 대해 이해할 날 있을 것이다.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러니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고, 후회하느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아침 먹고 어제 하다 말은 마당 정리를 했다. 뒷마당에 잘못 자리 잡아 자라는 단풍나무를 삽으로 떠서 다른 나무와 줄이 맞게 옮겨 심었다. 뿌리가 깊이 박혔는데, 나에게 괴력이 나왔나? 한 십 분 동안 씨름을 하니 쑥 뽑혀졌다.
아참, 가장 중요한 것 심기. 작은 오빠가 산야초 동호회원으로부터 얻은 씨앗을 나에게 일부 나누어 준 것. 그것은 바로 산삼씨 개갑한 것이다. 약 서른 개 정도를 왼편 담장 따라 줄지어 자라는 주목 아래에 심었다. 싹이 잘 트고 잘 자라길 마음속으로 씨앗에게 말을 했다.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땅이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다음번에 올 적엔 여러 가지 채소 씨앗을 심어야겠다.
비설거지를 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 4시에 양지마을을 떠나왔다. 내 일에 바빠서 결국 아들 얼굴 보러 서울 가는 것은 포기하고서 말이다.
바깥 날씨가 앞으로는 더 이상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것 같아 보일러를 완전히 꺼놓았다. 실내 최저 온도 14도, 최고 온도 19도.
참고
錫婚式(석혼식, 결혼10주년), 銅婚式(동혼식, 결혼15주년), 陶婚式(도혼식, 결혼20주년), 銀婚式(은혼식, 결혼25주년), 眞珠婚式(진주혼식, 결혼30주년), 珊瑚婚式(산호혼식, 결혼35주년), 紅玉婚式(홍옥혼식, 결혼40주년),金婚式(금혼식, 결혼50주년), 金剛婚式(금강혼식, 결혼60주년), 回婚式(회혼식, 결혼6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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