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2일 토요일 맑은 후 오후 늦게 차차 흐려짐
끝도 없는 정원 가꾸기
아침 먹고 마당으로 나갔다. 산수유나무가 개화를 시작했다. 주목 사이에 산수유가 자라서인가? 샛노랗게 피어있는 꽃들이 봄을 알리고 있다. 대구에서 가져온 식물들을 심었다. 지난겨울, 채소 가게 아주머니가 준 홍초 4뿌리-지금까지 아파트 베란다에 두었는데, 새싹이 나와 있었다. 화산에서 채집, 화분에 7년 키우던 참나리, 말나리도 홍초 옆에 심었다. 허브-세이지, 레몬밤, 레몬민트 세 종류도 담장을 따라 심었다. 허브는 키운 지 15년이 되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자라는 녀석들 중 비교적 햇볕을 좋아하는 것 세 가지를 우선 가져 온 것이다. 허브는 생각보다 번식이 참 잘된다. 웃자란다 싶으면 적당하게 가위로 잘라준다. 자른 것은 버리지 않고, 포트에 꽂아 놓고 물만 자주 주면 어느새 뿌리가 내려 잘 사는 것이다. 화분에 심어 17년 된, 꽃이 환상적인 꽃무릇은 마당 오른편 소나무 동산 정원석 아래에 심었다.
마당 곳곳에 잔디보다 먼저 돋아 난 쑥, 꽃다지, 달맞이꽃, 냉이, 씀바귀, 민들레, 토끼풀 등등 초록빛 잎사귀들이 제법 크게 자라고 있었다. 잔디밭에 자리 잡은 녀석들이 안쓰럽지만 꽃삽으로 뿌리째 뽑았다. 뽑고 또 뽑아도 표도 없다. 겨우내 씨앗이 떨어져서 새로 난 것이 아니라 다년생 식물이어서 뿌리가 월동을 하고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자란 것이다. 그러게 사람이나 식물이나 앉을 자리를 보고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니까. 씀바귀, 민들레, 냉이는 따로 모았다. 몇 끼 반찬은 됨 직한 충분히 훌륭한 웰빙 소채류이다.
갑자기 낙엽 타는 냄새가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집집마다 연기가 나는 것이다. 이웃들이 잔디밭에 불을 놓아 잔디를 태우고 있었다. 나도 東에게 라이터를 달라고 해서 잔디밭에 불을 켰는데, 생각보다 잔디가 너무 빨리 타서 나무에 불이 붙을 것 같아 불붙은 잔디를 발로 막 밟아서 껐다. 그러나 내 발보다 불은 사방으로 더 빨리 타들어갔다.
내가 당황하며 불을 끄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東이
“아이고, 그래서 산불이 무섭다는 거야. 미리 불 끌 준비를 하고 나서 불을 붙여야지.”
당황한 나는 수도에 호스를 꽂아 불이 붙은 잔디밭에 마구 뿌리니까
“그냥 타게 놔두지 물은 뭐 하러 뿌리냐?”
하며 놀리더니, 대야로 물을 떠서 잔디밭 가장자리를 둘러가며 뿌리는 거다. 신기하게도 불은 물을 뿌린 곳까지 타오더니 그곳에서 스르르 꺼졌다. 마당은 순식간에 새카맣게 변했다. 무식이 용감하다더니 제풀에 놀라고 제대로 불조심 수업을 했다.
점심 먹고 오후 1시부터 東은 못다 자른 나무들을 톱으로 자르고 나는 앞마당에 있는 소나무를 전지했다. 소나무 전지는 잔손질이 많이 간다. 소나무 가지 사이사이에 있는 죽은 나뭇가지를 찾아내어 자르고, 소나무 갈비를 털어내야 한다. 두 그루를 손 보고 나니 어느덧 6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머리에서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오늘 너무 무리를 했나? 손가락은 물론이고 손바닥과 양어깨가 아파왔다. 떨어진 갈비와 낙엽을 갈고리로 긁어모아 포대에 담아 공터에 버렸다.
집안에 들어오니 7시, 저녁 먹고 샤워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개운하다. 긴 밤이라는 평안한 휴식이 나를 기다린다. 바깥에 봄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차 다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세상이 다 고요하다. 내일은 무엇을 해 놓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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