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꽃처럼 향기롭게, 나무처럼 튼튼히!
전원 탐사 rural exploration/녹색 장원

그런 집을 지어요

by Asparagus 2008. 4. 26.
반응형

2008년 4월 26일 토요일 오전 비 온 후 갬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여니 비가 오고 있었다. 아니 간밤에 강풍도 대단했다는데, 방음이 잘된 집이어서 듣지 못했다. 아침을 먹기 전에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뒷동산을 탐색했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동산과 이어진 집 주인들은 뒷동산을 참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진분홍과 하얀색이 어울려 핀 꽃잔디, 금낭화, 개미취, 매실나무, 꽃사과, 패랭이, 카네이션, 구절초, 작약, 등등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을 종류별로 구역을 만들어 보기 좋게 심어 놓았다.

 

사람손이 가지 않은 동산 뒤편 아래로 내려갔다. 숲이 우거진 나무 아래로 둥굴레와 솜대가 발을 땅에 딛기 미안할 정도로 밀집하여 지천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둥굴레는 뿌리가 둥글고 긴 반면 죽대는 수염뿌리이지만, 올라오는 생김새는 비슷하다. 나중 둥굴레 뿌리를 캐서 차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변 환경을 자세히 탐색했다. 왜? 마을 주변이 온통 인삼밭이고 방향도 맞아서 심이 자라기 딱 알맞은 곳이기 때문이다. 은방울꽃이 지천으로 나있고, 말나리도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저 멀리 오엽이 보였다. 가슴이 뛰었다. 가까이 가보니, 이런? 엄나무를 댕강 잘라 가 버리고 그 밑둥치에서 이제 막 잎이 터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엄나무 잎이 필 때도 심이 올라 올 때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한 시간 정도 탐색하다가 집에 갔다.

 

아침을 먹고 나고 조금 있으니 비가 그쳤다. 대구에서 가져온 남천을 뒷동산에 줄지어 심었다. 지난 번 심은 남천과 함께 줄지어 심어 놓았으니 몇 달만 지나면 제대로 어울려 모양을 낼 것이다. 남천은 히말라야에서 일본에 이르는 동아시아 원산이며 늘푸른떨기나무이다. 가을에 붉게 드는 단풍과 겨울 내 달려 있는 붉은 열매가 아름다워 남부 지방에서 정원이나 공원에 관상수로 심어 기른다. 3m까지 자라며 추위에 약하다고 하는데, 중부 지방인 이 곳 양지에서 잘 자랄 지 이번 겨울을 지나봐야 알겠다.

<옹벽으로 쌓은 뒷담장 위의 동산에 줄지어 심은 남천>

 

대야를 들고 아침에 보아둔 뒷동산 아래에 가서 말나리와 은방울꽃을 캐왔다. 우리 집 식당방에서 잘 보이는 동산에 말나리와 은방울꽃을 심었다.

<뒷동산에 심은 말나리 - 산 뒷편 숲이 우거진 그늘에서 자라는 것을 양지 바른 언덕으로 이사 시켰는데, 햇빛을 받으면 더 잘 자랄까?>

 

 뒷뜰에는 두 주일 전에 심어 놓은 땅콩, 완두콩, 감자가 싹이 터 올라오고 있었다. 나날이 조금씩 잎에 펴지는 심이 심어진 담장 아래에도 돌로 구획을 만들어 주었다. 지난 번 대구에서 가져 온 돌들을 참나무와 모과나무 아래에 배열해 놓았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이리 저리 배치해 봐야 제 자리를 잡겠다.

 

옆 공터에 東이 괭이로 흙을 파고, 고랑을 만들어 비닐로 덮어 준 덕분에 수박 아홉 포기, 참외 여덟 포기를 심었다. 여름 방학 때 따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일하는 것이 힘이 들지만 기다리는 여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우리 집을 방문하는 친척, 지인들에게 사서 대접하는 것이 아닌 손수 무공해 농사 지은 것으로 대접할 수 있다는 희망. 희망이 있으면 삶이 더욱 즐거워지는 법이 아닌가?

 

잔디밭을 자꾸 점령해 가는 클로버를 잡다보니 하루해가 다 졌다. 아후~ 신음이 절로 나왔다. 클로버가 그렇게 질기고 모진 녀석인 줄 몰랐다. 노래에 나오는 클로버는 얼마나 아름다운 식물이던가? 더구나 네잎 클로버라도 발견할라치면 행운이 온통 나에게 다 온 듯 했던 시절도 있었건만, 잔디와 공생하는 것이 아닌 잔디를 죽이며 점령해 나가는 그 끈질긴 힘이라니……. 클로버에겐 미안하지만 있을 자리에 있지 못한 죄로 내 손으로 다 뽑아야 하는 이 모순.

 

클로버를 뽑으며 나도 모르게 콧노래로 노래를 불렀는데, 생각해 보니 대학 졸업 후, 지난 삼십 년 동안 바쁘게 직장 생활하며 생활에 부대끼며 낭만도 잊어 버렸고, 노래마저 잊어 버렸다.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가 나오다니, 나 스스로가 놀랍다. 

 

          비둘기집

                                김연숙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 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 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그런 집을 지어요

 

여기 양지가 바로 그런 집이다. 붉은 뺨 멧새, 노랑부리 멧새가 자귀나무에 앉아 아침 인사하면 뒤이어 까치가 와서 마당을 선회하고 가는 우리 집, 뒷동산엔 여름이면 노루도 오고, 고라니도 산책을 한단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행복을 만들 수 있는 전원생활을 예찬하며 오늘 하루도 많은 일을 했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닫는다.

반응형

'전원 탐사 rural exploration > 녹색 장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얀색 철쭉 담장  (0) 2008.05.03
오솔길 따라  (0) 2008.04.27
꿈의 계절  (0) 2008.04.25
수채화 같은 마을  (0) 2008.04.20
완두콩과 감자 심기  (0) 2008.04.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