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7일 수요일 맑음
鉉의 일기
아침 6시 10분에 잠이 깼다. 창문을 여니 구름에 해가 가려 보이지 않았다. 동시가 문득 생각났다. 누가 쓴 시이지? 시전문이 다 생각나지 않네.
오늘은
해가 안 떠
늦잠이 들었어요.
아기가 깰까 봐
바람은 조심조심 불고
새들은 소리 없이 날지요.
조금 있으니 해가 벌써 중천으로 떠 있었다. 간밤 꿈이 좋아서 어쩌면 오늘은 심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 산책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東을 졸라서 뒷동산으로 갔다가 도로를 가로 질러 산 너머 산으로 갔다. 이곳도 십여 년 전까진 깊디깊은 심심유곡이었으리라.
왜냐하면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 중 백년도 넘은 아름드리 거목 참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산허리 한쪽은 그런 아름드리나무들을 베어서 넘어뜨려 놓았다. 여기는 또 무슨 목적으로 산을 깎고 포클레인으로 밀어 놓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곡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이구심이 보였다. 두 번이나 오갈피에 속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오갈피인가? 자세히 보니
‘아니, 진짜 심이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이런 곳에 심이 나오는 환경 아닌가?'
기쁜 마음으로 산등성이에 있는 東 에게 “발견!” 외치며 빨리 내려오라고 한 후 쪼그리고 앉아 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여기 저기 심이 대량으로 보이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마당삼!’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는데, 더 자세히 보니 이건 아무래도 누가 장뇌삼을 심어 놓은 것 같았다.
장뇌삼밭을 만나면 얼른 일어나 그 장소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 심 캐는 사람들의 도리 아닌가? 당연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간밤 꿈이 어쩜 그리 딱 맞는지 신기할 뿐이다. 꿈 내용은 내가 산에 갔는데 물이 아주 맑은 계곡 냇가에서 수십 명의 장성들이 물속에 서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장정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면서 나랑 함께 간 친구의 팔을 끌고 뒤돌아 오다가 잠이 깬 것이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참취 5포기, 보라색 꽃이 어여쁜 조개나물꽃 3포기, 층층 잔대 1포기, 잔대 4포기를 캤다. 참취와 잔대는 뒷동산에 심고 조개 나물꽃은 집 오른쪽 담장, 나도부추꽃 앞에 심었다. 아침 먹고 잔디밭을 가꾸었고, 점심 먹고 포트에 콩을 심었다. 땅콩은 직파했다가 까치가 다 파먹어서 모종으로 키운 후 심으려 한다. 뒷동산과 마당에 물을 뿌리다보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아침에 우리 집을 방문하여 인테리어 조언을 해 준 가구사에 갔다. 신혼 초부터 가구를 살 때는 내 맘대로 사라고 하였던 東이 웬일로 이번에는 가구를 직접 고른다고 했다.
오크원목으로 만든 수제 침대와 수제 식탁을 샀다. 예산보다 훨씬 초과였다. 그렇지만 東이 결혼 후 처음 고른 가구라서 그냥 결재하기로 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다. 일기를 쓴 후 어제 읽다 만 ‘바리데기’를 한 시간 정도 읽다가 자야겠다. 참, 지난 해 담은 오미자 술을 한 잔 마셨는데, 얼굴색이 붉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도수가 많이 약한 가보다. 술맛도 좋지만 술 색깔이 석류 색처럼 참 곱게 우려 났다.
東의 일기
오늘 산책은 뒷동산으로 정했다. 지난번 한 번 가 본 곳이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고구마를 심는 농부를 만나고, 수십 년은 묵었음직한 참나무가 세 그루 서 있는 자그마한 마을 뒤로 올랐다. 두릅이 두 그루 있었고 음침한 골짝이 있었으나 바로 인가 뒤쪽이어서 더 접근하지 않았다. 길 건너 언덕에 오르니 수십 년 묵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인간의 무자비를 만나 무참히 베어져 있었다.
나무 위에 올라 호사를 타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견~’ 하는 나지막한 마눌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더덕 쯤 되겠지 하고 다가가 보니 심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누군가 심어 놓은 장뇌가 분명했다. 마눌과 함께 재빨리 그 곳을 벗어났다. 산등성이에서 도라지 1뿌리를 캐는 중 하이마트 직원의 배달 소식이 왔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텃밭의 풀을 뽑았다. 오후에는 가구점을 들렀다. 어제 본 침대와 식탁을 주문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소머리 국밥집에 들러 늦은 저녁을 먹었다. 국물이 참 진하고 구수했다. 특히 깍두기가 맛있었다, 포만감을 가지며 귀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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