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8일 목요일 맑음
鉉의 일기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 내리고 있었는데 이내 그쳤다. 큰 나무 아래엔 빗물이 스며들지 않은 것을 보니 일기예보대로 5mm도 채 오지 않았나보다. 하루해가 왜 이렇게 짧지? 세탁기에 빨래 넣어 돌리면 東이 어느 틈에 널어주어서 고마웠다. 지금도 세탁기는 저 혼자 일을 잘 하고 있다. 한 사람 몫을 톡톡히 잘 해주는 세탁기가 고맙다. 내일은 커튼을 다 세탁해야겠다.
화단 여기저기에 뿌려 놓았던 심들이 고개를 쏘옥 쏘옥 내밀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앙증맞다. 심 새싹은 고추 씨앗이 처음 땅 위로 올라올 때와 흡사하다. 담장 아래 심어놓은 허브들은 이제야 제대로 뿌리를 내렸나보다. 새잎들이 조금씩 싹터 올라오고 있었다. 남쪽 담장 따라 심어놓은 흰색 철쭉 사이로 붉은 색 꽃이 눈에 확 띄어서 자세히 보니, 영산홍이 아닌 해당화였다. 언제부터 저렇게 피어 있었을까? 가까이 다가가니 달콤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해당화 향기가 이렇게 좋았나? 내가 근무했던 학교마다 화단에 해당화가 있었는데, 늘 바쁜 학교생활이어서 꽃 감상은커녕 향기를 맡을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오후 1시에 냉장고 기사가 와서 냉장고를 설치해 주고 갔고, 세 시간 후 東이 가구사에서 골랐던 식탁과 침대가 왔다. 온종일 청소하다가 하루를 다 보냈다. 짬짬이 바깥바람을 쐬러 마당에 나갔다가 마당의 잡초들이 눈에 뜨이는 대로 조금씩 뽑고, 또 바깥에 나갈 일 있어 나가면 전지가위를 들고 웃자라는 영산홍들의 머리를 조금씩 잘라주고 그러다 아차하며 집안에 들어와 청소하고…….
또 집안일을 하다가 수세미 씨앗이 눈에 띄어서 담장 가에 심어놓고, 베고니아를 큰 화분으로 옮겨 심은 후, 다시 들어와 부엌을 정리했다. 그래도 대구에서 가져온 그릇들을 다 정리하지 못했다.
새로 산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東이 문득 손을 꼽으며 말했다.
“3일 날 여기 왔지? 4, 5, 6, 7, 8일. 6일이나 되었네. 올해 단기방학이 처음 생겼는데, 내년에는 없어지지 않을까?”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올해 처음 맞는 이 황금 휴일을 이렇게 집안일을 하며 보내는 것이 행운이네요.”
완전 이사 올 날은 아직 멀었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몇 달을 견뎠지만, 이제는 도저히 힘에 부쳐 어쩔 수 없이 세탁기, 냉장고, 식탁을 다시 산 것이다, 제대로 된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편리하고 고마운 것인가? 또 걸레를 세탁기로 빨 수 있으니 시간도 버는 것이다. 식기 세척기에 설거지하니 이렇게 편리한 것을…….
일 한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살아가는 목적이 아닐까? 일을 하는 만큼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고, 일을 하는 자체가 바로 그 날 그 날의 행복이려니……. 일을 하여야만 내가 좋아하는 식물들도 마음껏 볼 수 있고, 내가 사는 환경이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니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남의 시중을 받는 여왕이 되길 원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여왕이 되는 것이 나 자신에게나 남편에게 떳떳하다는 생각은 이십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물론 그럴 것이다. 내 힘이 닿는 한…….
오늘은 더 이상 일하지 말고 잠자야겠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이니까.
東의 일기
오늘 아침에는 뭘 했더라? 냉장고 들여놓고, 수박, 참외 밭 옆에 밭 일구어 옥수수 씨앗 심고, 짧은 호수 길게 연결하여 물주고, 고추, 오이 밭에도 물주고, 오후에는 침대와 식탁이 온다기에 자리 비우고 청소하고, 들여 놓고 청소하고, 청소하다 일기 쓰고, 한 일 없이 피곤하더라. 아! 빨래했네. 내가 했나? 세탁기가 했나? 2층 내 방도 대충 정리 했다. 옷장에 옷 대강 분류해 넣고, 서랍장 갖다 놓고, 작업대 위에 연장 널어 놓고, 아이구 피곤타 텔레비전 잠깐 보다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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