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배기 아들과 나눈 대화
지우개 때
“엄마, 민식이 몸에서 지우개 나온다."
세 살배기 아들을 목욕시키는 중 제 몸에서 밀려나온 때를 보고 말했다.
“응? 이거? 민식이 몸에서 나오는 때라는 것이란다. ‘때’는 더러운 거야. 그래서 목욕하잖아.”
‘지우개로 글씨를 지우면 밀려 나오는 지우개 찌꺼기랑 목욕할 적 제 몸에서 밀려나온 때랑 정말 닮았구나. 난 여태 목욕하며 한번도 몸에서 밀리는 때를 지우개 때라고는 생각 못해 보았는데? 때가 국수 밀리듯 나온다는 소리는 들어보았지만……. 어린 녀석이 우리말을 아주 잘 사용하네?’
아들이 때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새겨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목욕할 때마다
“엄마, 민식이 때, 민식이 때. 지우개 때!”
하며 자기 몸에서 조금이라도 때가 밀려나오면 좋아했다.
해님도 자는데 엄마는 왜 벌써 출근해요?
“엄마, 오늘은 해가 콜콜 자요.”
아침에 출근하려고 하니 헤어지기 아쉬운 얼굴을 하면서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비록 어린 아들이지만 직장 생활을 하는 엄마와는 아침마다 헤어진다는 것을 일찍 터득하여 치마꼬리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때로는 가슴 저리게 만들었다.
“응? 왜 해가 콜콜 자니?”
“엄마, 해가 이불을 덥고 자니까 그렇지요.”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 구름이 가득 끼어 곧 비가 쏟아질 듯 했다.
‘어쩜, 구름 낀 하늘이라는 말 대신 해가 콜콜 잔다고? 구름이라는 낱말을 아직 모르니, 제 녀석이 이불 덥고 자는 것처럼 해도 이불을 덥고 잔다고? 그러니까 해가 아직도 콜콜 자고 있으니 엄마가 출근을 하지마라는 뜻? 이 녀석 정말 고단수이네?’
형용사를 처음 쓰던 날
"엄마, 엄마 치마 참 곱다. “
전날 산 밝은 하늘색 치마를 입고 청소를 하는 나의 치마꼬리를 잡으며 한 말이었다.
아들이 난생 처음 써보는 형용사가 '곱다'는 낱말이었다. ‘예쁘다’도 아닌 ‘곱다’라는 낱말을…….
숫자에 처음 눈 뜬 날 - 방바닥에 떨어진 숫자 2
“엄마, 여기 2자가 떨어져 있어요.”
“응? 어디에 2자가 있니?”
서툰 젓가락질로 라면을 먹다가 방바닥에 떨어진 라면 가닥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정말 흘린 라면은 2자 모양으로 꼬부라져 있었다.
‘아니? 녀석도……. 오리 같다고 말하지 않고, 숫자 2자를 연상했네?’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우리말을 배운다. 부모가 무심코 한 말도 말을 배우는 아이들에겐 그 뜻이 무엇이든 간에 신기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 앞에선 더더욱 말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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