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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탐사 mind exploration/거꾸로 쓰는 육아 일기

긍정의 힘-이야! 받아쓰기 70점이나 맞았구나.

by Asparagus 2008.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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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달만 있으면 큰아들 제대한다. 그리고 4학년에 복학하겠지.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석사 과정 1년을 마친 작은 아들, 빛나는 젊은 청춘을 좁아터진 기숙사에서 보내는 것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다행히 올해 2학기부터 서울대 기숙사를 대대적으로 증개축한단다. 2010년과 2011년에 완공한다는데, 그럼 우리 아들들은 언제 혜택을 보나?

 

그래도 좁아터졌거나 말거나, 지난 3년은 형제가 같은 방을 써서 다행이었는데, 이제 제대하면 학부가 틀려서 다른 사람과 룸메이트를 해야겠지?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이 녀석들의 어릴 적 일이 떠오른다.

유치원을 다닐 때다. 어느 여름날, 거실에서 형제가 동화책을 떠듬떠듬 읽고 있었다.

"아니? 엄마가 글씨도 안가르쳐 주었는데,  책을 다 읽네?"

깜짝 놀라서 그렇게 말했더니, 이 녀석들은 더 놀라며 말했다.

"어, 엄마, 우리 유치원 친구들은 거의 다 글씨도 쓸 줄 아는데..."

이러는 것이었다.

"응? 그래? 걔들은 벌써 글을 깨우쳤구나.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학교 들어가면 선생님이 글씨를 다 가르쳐 주신단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야호! 학문에 목이 마르면 제 스스로 글씨를 깨우치리라. 그래서 아기 때부터 동화책을 주야장천 읽어주고 이야기해 주고 했는데, 녀석들이 스스로 동화책을 들어서 읽게 되었다니. 기특한 녀석들! 나의 드러나지 않은 교육철학이 먹혀들었구나. '

태평(?)한 엄마의 더 깊은 마음은 이랬다.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너희들의 글자 익히기 조기 교육은 반대한단다. 초등학교 1학년 녀석들의 학교 수업 태도를 보자면 일찍 문자를 깨우치고 들어온 녀석들은(물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많지만) 교사 설명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단다. 글씨를 다 배우고 들어오니 학교 생활이 얼마나 지겹겠어? 그러니 수업 시간에 산만하고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일 줄 모르지. 너희들은 유치원 때는 글씨를 쓸 줄 몰라도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만 열심히 듣고 따라 하면서 서서히 글씨를 배우면 된단다.'

 

녀석들이 드디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다.

입학 후 "우리들은 1학년" 한달 적응 기간 끝나고 드디어 국, 수, 바른, 슬기로운, 즐거운 생활 교과목을 배우게 되었다.  하여튼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받아쓰기를 한 모양이다.

"엄마, 받아쓰기 시험지예요."

시험지를 내밀며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런데 누구였지? 큰 아들이었나? 작은 아들이었나?  그러니 일기가 필요한데...)

담임 선생님이 빨간 색연필로 커다랗게 매긴 동그라미가 일곱 개, 장대비가 내린 듯 죽죽 그은 줄이 세 개.

내 눈에는 줄보다도 동그라미가 더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 70점이나 먹었네? 와, 울 아들 참 잘했다."

하면서 엉덩이를 토닥토닥하며 기뻐했다.

녀석의 눈이 똥그래지며 말했다.

"어, 엄마, 우리 반에는 오늘 받아쓰기 백점 먹은 친구들이 스무 명도 넘어요."

"응? 그래? 갸들은 갸들이고 난 70점 맞은 울 아들이 세상에서 최고야!"

 

-이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은 해는 받아쓰기 시험지에는 결코 장대비 같은 사선을 죽 그어 주는 시험지는 생겨나지 않게 한다. 맞는 답은 커다란 동그라미, 틀린 답은 체크표를 해 오고 있다. 아들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들 시험지에 죽죽 그어진 그 사선이 얼마나 나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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