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입학하고 녀석들은 고등학교 때와는 너무나 다른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혼줄이 났을 게다. 그래도 형제를 배려해서 이인용 기숙사에서 함께 기거를 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많이 위안이 되었을 거다.
기숙사에 짐을 풀면서 청소를 하는데,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라면서 기숙사는 그렇게 후지다니...
먼지가 풀풀 나는 10년도 넘은 찌들은 매트리스를 들어내고, 켜켜이 쌓인 먼지를 닦고 또 닦아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창틀을 닦고, 빛 바랜 누런색 커튼을 빨아 다시 걸고, 내친 김에 복도랑 화장실까지 깨끗이 청소했다.
공부만 하는 녀석들이어서 그런가? 어찌 그리 환경이 더러웠는지...
(우리 아들들은 행운아임에 틀림없는 모양이다. 반년 후 여름 방학 지나고 기숙사로 되돌아 갔을 적에는 그 퀴퀴하고 오래된 기숙사 물품을 싹 다 갈아 놓고 리모델링을 해 놓았다. 나와 친한 선배 이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선배님 아들이 기숙사에 있을 적에도 나처럼 청소를 하고 또하면서 후진 기숙사 생활을 했다고 했다. 선배 아들은 올해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여의도 모증권회사에 취업을 하였다)
서울대학교 학부모가 되어 입학식에 참석했을 적에는 가슴이 뭉클했다.
아래 메일은 2004년 정운찬 총장님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들이 레포트 잘썼다고 총장님이 직접 전화주셨다)
정운찬 총장님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귀교에 재학중인 식품공학과 2학년 김**, **이 學母 조**입니다.
(제가 총장님께 감사 메일을 드리려 총장님 메일 주소를 알아놓고 미처 메일도 못드렸는데, 항상 바쁘실 총장님께서 친히 전화를 주시어 정말 송구스러웠습니다. 총장님과의 2분 30초간 대화는 참으로 행복한 여운을 남기게 해 주었습니다.)
어제, 6월 19일 토요일날 저희 부부는 각자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집에서 만나 오후 1시 20분에 서울로 향했습니다. 수원에서부터 시속 5km, 그 덕분에 914동 기숙사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좀 지났습니다. 퇴사 준비를 다 해 놓은 아들들과 함께 차에 짐을 싣고 서울대 입구 봉천동 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밤 8시 40분, 비는 낮부터 많이 왔는데, 일요일에도 계속 오고 디앤무 태풍까지 북상한다기에 서울에서 하룻밤 기거를 생략하고 곧장 대구 저희집으로 왔습니다. 대구에 도착하는 내내 비가 정말 엄청 쏟아졌습니다. 장시간 아니 왕복 12시간 정도 빗길을 운행하는 바깥 사람의 용기가 아닌 무모함(?)에 저는 집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맘 속으로 "공포의 빗길 고속도로 드라이브"라고 생각했어요.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30분, 이렇게 해서 저희 아들들은 3학기 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귀향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총장님!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점심을 먹고나서 **이가 총장님께 표창장을 받았을 적에 찍은 사진 석 장과 표창장과 우수과제보고서 자료집과 부상으로 받은 도서상품권을 저에게 보여주더군요. 우수과제보고서 자료집의 첫머리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았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금년에 처음 시행된 교육시책 일환 중 하나인 <<우수과제보고서 자료집>>은 서울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전국 각 대학에서 이주 유용하게 활용하고 또 활용할 자료집인 것 같습니다. 이런 기획을 추진하고 또 책자까지 만들어 주신 총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석, 박사 논문들은 쉽게 접해 볼 수 있지만, 주입식 중고등 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이 대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소논문 같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대학 1학년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또 힘들어하는 현실입니다. 이 한 권의 책이 始發되어 대학생들의 학사에 많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일전에 제 아들녀석이
"어머니, 제가 쓴 과제물이 우수과제보고서에 뽑혀서 상을 준다는데요. 제가 쓴 것보다 다른 친구들이 훨씬 더 잘 썼고, 형님도 잘 썼는데, 제 것이 뽑혔다고 해서 좀 이상해요."
이렇게 겸손하게 -죄송합니다. 제 아들녀석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다보니...- 저에게 전화를 하였을 때,
저는 "우수과제물보고서 시상"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 들어보았기에
"응? 그래? 대학교에서 숙제를 잘 했다고 상을 주는 그런 제도도 있다는 말이지? 역시 앞서 가는 서울대학교이구나. 정말 대단해. 너가 그런 상도 다 받고... 형님도 잘 썼지만, 너도 잘썼으니까 네가 선정된 걸 거야. 아무튼 축하해. 그런데 형님이 또 속이 많이 상하겠구나. 어떻하지? 엄마가 어떻게 위로해 주지?"
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들의 전화를 받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 하고 노력하여 받는 상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한한 힘과 용기를 주게 된다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상은 가끔씩 "과제물, 보고서 쓰고 발표하는 것, 대학 공부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투정하는 아들들에게 큰 힘이 되고,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누구보다도 기뻤습니다.
올해 처음 시행된 학교 행사에 저희 집 아들 녀석이 선정되고 책자로 발간해 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총장님의 높고 깊은 뜻이 서울대학교 발전에 더욱 기여되고 영원히 이어 가시길 기원 드립니다.
2004. 6. 20.
조**드림
서울대학교에서 최초로 수여한 우수보고서 표창장
--아들과의 메일 주고 받기
[RE]오잉~ 울 아들이 웬 상을? 04-05-27 00:02
아니? 돼지군!
총장님이랑 밥을 먹는다카더만 무슨 상장? 어떤 상장?
엄마한테는 그런 이야기 안했잖아?
방학때꺼정 기다리려니 너무 궁금해.
바쁘겠지만 메일로 상장을 고대로 워드해서 내용을 보여다고....
엄마는 너무 궁금하구만~
참, 오늘 영양 일월산꺼정 갔는데, 아침 8시 30분에 집 나서서 도착하니, 11시 10분,
그때부터 아빠랑 산에 올라갔는데, 더덕이 더덕더덕 온천지가 더덕더덕해서 캐고, 또 캐고,
두릅도 좀 따고 산나물도 좀 꺾고, 내려오니 6시.
칠곡에 오니 9시, 호동이 숯불갈비집에서 돼지갈비 3인분에 밥 시켜먹었어.
집에 와서 밤 11시꺼정 나물 분류하고,
아빠는 좀전에 잠드시고 엄마는 오늘 캔 잔대뿌리를 달여서 아빠 내일 아침에 드시라고 해 놓았어.
11시 40분에 목욕하려다가 아참, 하면서 컴퓨터를 켰어.
글쎄 울 아들이 일기를 고렇게 짧게 썼다니...
실망하다가,
과제물땜시로 바빠 그렇게 썼겠지..
하면서 이해하련다.
엄마는 낼 개교 기념일이어서 출근안한다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구나.
낼은 온종일 나물 삶고, 말리고, 청소하고 빨래하다가 시간다 보낼 것 같구나..
뒹굴거릴 시간도 없을 것 같아...
아무튼 어여쁘고 자랑스런 울 똘이, 돼지가 너무 보고 싶어.
세끼 밥 꼭꼭 챙겨먹고, 과일은 매일 매일 사먹고,
똘이는 목감기가 좀 나았는지 모르겠구나. 아프지 않는 것이 엄마에게 효도하는 것이라는 것
꼭 명심하길...(잘 챙겨먹는 것도 당연히 포함)
안녕!
울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세상에서 젤 멋진 엄마가
[RE][RE]오잉~ 울 아들이 웬 상을? 04-05-27 23:15
내가 전에 상장 받는다고 얘기 했었는데..
제 4750 호
표창장
농업생명과학대학 식품공학과
김꿀이
198 년 월 일 생
위 학생이 "문학과 대중문화" 강좌에 제출한 과제물 "발전된 문학으로서의 영화"가 2003년도 핵심교양 교과목 우수 보고서로 선정되어 타의 모범이 되므로 학생 포상에 관한 규정에 의거 표창장을 수여합니다.
2004년 5월 24일
서울대학교 총장 정운찬 꽝
오늘도 3시에 수업마치고 숙제하느라고 이제까지 독서실에 있었어요.. 내일부터는 또 기말 고사 공부 해야 되고.. 히잉..ㅠㅠ 빨리 방학해서 집에 갔으면 좋겠당.. 그때까지 ㅃㅃㅇ~
참 카고 형님 오늘 약국에서 약 사먹었어요.. 내일까지 먹어보고 안나으면 병원에 가겠지 뭐... 어제에 비하면 많이 나았긴 하던데... 카면 진짜로 빠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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