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꽃처럼 향기롭게, 나무처럼 튼튼히!
마음 탐사 mind exploration/거꾸로 쓰는 육아 일기

엄마의 꿈-과학고 입학, 자퇴시키기까지

by Asparagus 2007. 8. 16.
반응형

아들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다. 동학년 이선생님 아들이 과학고에 입학했다고 한다. 과학고 보내 놓고 나서부터는 퇴근 후 바로 스포츠센터에 가서 수영을 하고 집에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조선생님, 선생님 쌍둥이도 잘 키워 과학고에 보내세요. 과학고에 보내면 가정교육 필요도 없답니다. 그리고 대학도 일반계 고등학교보다 일 년 일찍 갈 수 있어요. 과학고는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 카이스트에 입학한대요. 선생님도 퇴근 후 좀 편안하실 거예요."

라며 매일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 주지 않으니 퇴근 후 자기 할 일을 하고 직장 생활이 좀 편안하다고 했다. 

 

퇴근 후면 늘 정신없이 사는 나는 이 선생님 말씀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았다. 매일매일 정신없는 직장 생활과 가사노동에 허덕이며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던 나는 내가 우선 좀 편안해지려고 그날부터 아들 의견을 묻지도 않고 "아들들을 과학고에 보내기 목표"를 잡았다. 특목고에 보내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고 나는 나대로 시간 여유를 좀 가지겠지? 하는 이런 이유로 아들을 과학고에 보내려 하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내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 없는 엄마의 목표.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니까 영, 유, 초등학교 시절의 가정교육은 천천히 쓰기로 하고...

아들이 중3이 되었을 때 제1회 대한민국 장한 어린이상 과학부문에 쌍둥이가 공동으로 대상을 받았다. (이 상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다음에 쓰자. 이 이야기는 학부모들에게 꼭 들려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받았던 이 상은 과학고 입학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99년 11월 16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제1회 대한민국 장한 어린이 과학부문 대상'을 공동
수상. 이수성 전 국무총리님에게서 상장과 장학금 백만 원을 받던 날 (장학금은 불우 학생을 위해 전액을 기부했다)

 

대신 돼지는 전국 수학 과학 경시대회에 출전하여 금상을 받았던 것이 유효하여 특별전형에 합격을 하였고, 민식이는 전국 발명품 경진대회에 동상 외 각종 과학 경진 대회에 여러 차례 상을 받았지만 특별 전형이 아니고 일반 전형으로 과학고에 1차 합격을 하였다. 2차 시험의 구술시험에서 답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여 그만 불합격의 고배를 맛보았다.

 

이런, 이런 일이? 아들보다도 내가 앞이 더 캄캄했다. 혼자 합격한 돼지는 겨울 방학이 시작된 1월부터 예비 과학고생이라서 과학고에서 겨울 특강을 3월 입학 때까지 들어야 했다.  항상 형제가 같이 공부하더니 혼자 남게 된 똘지를 보는 것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없었다. 드디어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 되었다. 똘지는 집 앞 K고에 전교 3등으로 입학을 하여서 장학증서를 받았고 입학금, 등록금을 환불해 주었다. (나는 불우 학생 등록금으로 납부해 주라며 받은 전액을 행정실에 기부했다) 병식이도 기숙사에 보따리 싸서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자 상봉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일주일 만에 만나는 아들이 한없이 그립고, 형제가 나란히 누워 자던 다정한 모습 대신 외롭게 보이는 똘지의 잠자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때마다 나는 이게 아닌데, 아닌데...... 

 

돼지가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밤마다 코피가 난다고 했다. 퇴근 후 홍삼을 급히 달여서 보온물통에 넣어 기숙사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은 네가 과학고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는 이렇게 생각했어. '형제 중 한 명만 잘 되면 뭐 해? 네가 입학하면 바로 자퇴서를 내게 하고 일반 학교로 전학을 시켜야겠다.'라고..." 

 

내 말에 찬성, 대찬성이었다. 그러면서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엄마, 엄마가 열심히 하지 말고 12시 전에 잠자라고 아무리 그러셔도 그럴 수 없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다 해놓아서, 선생님이 책 한 권을 펴시면 '이 부분 알겠지? 이거 학원에서 배웠지?' '그럼 지나간다' 이러시면서 몇 주 일만에 책 한 권(수학, 영어)을 다 떼는데 저는 미리 공부를 하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밤마다 기숙사 독서실에서 공부하느라 죽을 뻔했어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엄마는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고 내 생각만 하였구나. 예비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3개월 동안 과학고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몸이 약해서 코피를 펑펑 쏟던 그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데...

 

돼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일반 학교 전학을 말씀드렸다. 겨우 3개월밖에 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담임 선생님은 돼지를 매우 칭찬하셨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모범적인 학생일 뿐만 아니라 성적도 매우 우수하다고 했다. 몸이 약해서 앞으로의 학교  생활을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서 일반 학교로의 전학을 희망한다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말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특목고에 입학시키기로 했던 나의 꿈은 과학고 입학 후 한 달 만에 내가 먼저 손을 들었고, 집 앞 k고로 전학을 시켰다.

 

3월 31일 날 저녁때 기숙사에 아들을 데리러 갔더니, 과학고 학생 전원이 운동장에 빙 둘러서서 한 명 한 명이 우리 아들에게 악수를 해주며 앞날의 행운을 빌어 주었다. 그 아이들에게 그런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니, 그런 따뜻한 마음이 있다니, 빙 둘러선 한 명 한 명의 선배 학생과 동기생의 손을 잡고 인사하는 아들의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중하고 극진히 이별식을 해 주는 멋진 영재들에게 나도 고개를 깊이 숙여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 아들의 손을 잡고 교문을 걸어 나왔다. k고에서는 환영, 대환영이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