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2 일 맑음
아침에 닭백숙을 먹었다.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東이 닭백숙을 해 놓은 것이다. 토종닭을 사서 마늘을 듬뿍 넣고 세 시간이나 끓였다고 했다. 간밤에 얹혀 놓은 감주도 제대로 잘 달여 놓았다.
친구가 말했다.
"너희 신랑에게 말 좀더 나긋나긋하게 해라. 너무 잘해 주시는구마는..."
"그런가? 앞으로 좀 더 나긋나긋한 사람이 되지. 뭐."
아침을 먹고, 간밤에 갈아 놓은 도토리로 묵을 만들었다. 감주도, 묵도 다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친구가 너무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47세까지는 친정 엄마가 집안 일을 다 해 주어서 집안일이라고는 할 줄 몰랐으니, 그런 모습만 본 친구가 놀랄 만도 하다.
점심 준비를 해 놓은 후, 친구와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우리 집에 오면 뒷마당에 심어 놓은 삼을 캐서 삼계탕을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東이 잊고 넣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산책 후 호미를 들고 뒷마당으로 갔다. 나만이 알고 표시해 놓은 마당 한 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산에서 캐서 심어놓은 "산삼"을 캔다고 하니, 친구가 깜짝 놀란다.
호미로 땅을 파헤치니 심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니? 너 주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네? 이번 겨울에 얼어 죽었나 봐?"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호미로 땅을 한번 더 헤집으니, 무엇이 쑥 들려 나왔다. 심은 것 중 제일 큰 것이다.
"어머나? 새싹이 달려 있네? 이게 바로 심이다. 심. 너에게 갈 복이었나 봐. 너희 아들과 나누어 먹어도 될 크기이네. 다행이다."
뽑히는 순간 향이 참으로 진했다. 잔뿌리들이 싱싱한 것을 보니 겨울을 잘 견디어 내었다. 먼 길을 달려 온 친구에게 선물할 것이 있음에 감사함을 가지며...
그리고 점심 준비를 했다. 오이, 깻잎, 풋고추, 청량고추, 미나리를 썰어서 도토리 묵 무침을 만들 동안, 東은 뒷동산에서 두릅과 산나물을 조금 꺾어와서 삶아 놓고, 돼지고기 삼겹살을 구웠다.
맛있게 잘 먹어주는 우리 아이들과 친구 아들이 어여쁘다.
둘이 앉아서 오순도순 이야기 할 시간도 없이 떠날 시각이다.
계단 위, 진분홍 색으로 피어나는 꽃잔디를 바라보며, 아이들도 떠나고 친구도 가고...
잘가, 친구!
운전기사가 된 東은 바래다 주러 떠나고, 나만 홀로 집에 남아 뒷정리를 하려다가 너무 피곤해 그냥 잠들고 말았다.
저녁 6시 미리 서울에서 예매를 하고 와서 다시 서울로 떠난 친구는 무사히 부산행 KTX를 탔고, 아들들은 기숙사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그때야 깨어나서 저녁을 먹고 출근할 준비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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