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어머니와 동백나무
오후에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니가 요즘 집에도 오지 않고, 전화도 안하길래 궁금해서 걸었다. 니는 별일 없나? 집에 언제 올래? 김서방이 와서 마당의 동백나무를 좀 잘라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퇴근하면서 곧장 갈게요. 대문 밖에서 기다리지 마세요. 알았지요?"
"알았다. 내 저녁 해 놓을게 조심해서 오너라."
그리고 전화를 끊으셨다.
2006년과 2007년. 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아니면 금요일은 퇴근하자마자 경산에 있는 친정에 갔다. 우리 내외가 출발하기 전에 전화를 하면 전기밥솥에 얼른 밥을 앉혀 놓고, 반찬을 요리해 놓으신다. 외식을 시켜 드리려고 하면 극구 사양하시는 어머니는 매번 이렇게 말씀하신다.
"힘들게 번 돈으로 뭐할라고 조미료 투성이인 비싼 음식 사먹노? 집에서 먹는 따뜻한 밥이 최고다. 내 밥 얼른 해 놓을테니, 퇴근하면 곧장 오너라."
직장이 있는 구미에서 경산 친정집까지 길이 밀리지 않으면 한 시간하고 20분이면 도착한다. 그사이 어머니는 밥과 반찬을 다 해 놓으시고,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대문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아무리 그렇게 하시지 마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더워도, 추워도 언제나 골목 끝자락에서 서성이며 기다리시는 것이다.
2008년 1월, 경기도 양지에 전원주택으로 이사 간다고 사표를 낸다니까 친정 어머니가 제일 많이 말리셨다.
"아이들 다 컸고, 집에서 놀면 뭐하노? 일이 있는 게 얼마나 좋은데... 남들은 취직 못해서 걱정이라는데, 너희들 둘 다 사표 낸다니? 그게 말이 되나? 돈 벌려고 직장 다닌다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즐겁다고 생각하고 더 다녀라. 일하는 게 건강한 거다."
내가 직장 생활을 그만 둔다고 하면 누구보다도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사표내는 것을 말리시다니... 의외였다. 나중 친정 조카에게 들은 이야기로 친정 어머니는 막내딸이 멀리 외지로 이사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밥맛도 없어져서 그만 병이 나셨다고 한다. 약 삼 개월을 편찮으셨는데, 막내딸이 걱정할까 보아 우리에겐 아픈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고...
아무튼 친정 어머니가 말리시는 것도 그렇고, 이런저런 이유로 동시 사표내고 다른 일을 계획했던 우리 부부는 사표를 철회하고, 이사도 못가고 그렇게 지난 일년동안 양지로 오르락내리락하느라 每週 中 친정에 갔던 것을 지난 일년은 두 주일에 한 번씩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신학기가 시작되고 너무 바쁘기도 하고, 퇴근 후 경산까지 갔다가 오는 것이 너무 피곤해 차일피일 미루며 전화하는 것조차 깜빡했던 것이다.
퇴근 후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곧장 갔다. 우리가 가는 날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던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자기, 천상 담 타넘는 사람이 좀 되어야겠네?"
"싫다. 집안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담 타넘든지..."
이러더니 양복을 벗어 나에게 주고 옆집 담을 두 손으로 짚고 훌쩍 뛰어 올랐다.
"몸이 가벼우니 다람쥐 같네?"
집안은 텅비어 있었다. 어디에 가셨지? 걱정하며 준비해 온 실톱으로 동백 나뭇가지를 베고 있는데 어머니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엄마, 어디갔다 오시는데요? 김서방이 담 타 넘고 들어왔어요."
"너거들 벌써 왔나? 팔이 아파서 역 앞 한의원에서 침 맞고 왔다. 난 아직 시간이 멀었다고 걸어왔더니... 한 시간이나 걸렸네."
꽃봉오리가 봉글봉글 맺힌 동백나뭇가지들을 자르고 나니 집안이 훤해졌다. 양지 집에 옮겨 심으라고 노래 노래 하시던 몇 십년 된 앵두 나무, 6년 된 대추 나무, 포도나무를 캐서 차에 실어 놓을 동안, 어머니는 물에 불려 놓은 오징어로 튀김을 해 주셨다. 병원에 가느라 반찬 장만할 시간이 없었다면서 된장찌개와 김치, 멸치, 미나리 나물 등으로 저녁을 먹는데 가슴이 울컥해졌다.
'도대체 우리 엄마 나이가 얼마이신가?'
'내 나이는 얼마인가?'
'아직도 나는 막내 티를 내면서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을 받는가?'
저녁 먹고 설겆이를 하려고 하니 언제나처럼 손사래를 치시며 주방에서 나가라고 하신다.
"너는 아이들 가르친다고 얼마나 피곤했겠노? 너거 가고 나면 내가 천천히 설겆이 하면 된다."
저녁을 다 먹고나서 어머니는 장롱 문을 여시더니 사진을 꺼내 보여 주셨다.
"이거 내 죽으면 영정 사진으로 쓰라고 3만원 주고 찍은 거다."
액자 속의 사진은 머리가 하얗게 되신 호호할머니이다.
영정 사진,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눈시울이 또 뜨거워졌다. 수의 준비해서 보여 주신 지가 삼십 년도 넘었는데... 그때도 수의를 보여 주실 때 엄마가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아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또 언젠가는 통장을 보여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 돈으로 내 죽으면 초상 치르는 비용으로 쓰렴. 오는 손들에게 음식 푸짐하게 잘 해 드려라."
이렇게 어머니는 늘 죽음을 준비하고 계시며 살아가시는 것이다. 고마운 우리 어머니.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오빠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다.
"축하한다. 너희 아들들 둘다 서울대 수석 졸업한 것, 매일신문에 났다고 여기저기서 전화 많이 받았다. 가문의 영광이다."
"오빠, 고마워."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친정 어머니 덕일 것이다. 쌍둥이 낳기 한 달 전 부터 다섯 살 때까지 키워 주시고 집에 가셨다. 그 후, 내가 직장 생활과 가정 살림에서 고전분투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쌍둥이가 중학교 1학년 입학할 때 다시 오셨다. 부모자식간이라도 수고비가 오가는 현시대에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으시고 쌍둥이가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고 가셨다.
나 역시 친정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직장생활 인들 제대로 하였을까?
친정 어머니는 외손주들이 공부하는데 방해 될까봐, 집안에서 텔레비전도 안켜셨다. 전국민이 <허준>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는 아이들 공부에 방해된다시며 낮이면 경로당에 가시어 재방송을 보셨다. (* 허준 드라마 - 1999.11.29~2000.06.27 종영)
할머니들이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나? 와 경로당에서 허준 보노?"
하며 어머니를 수시 핀잔하신다고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많이 섭섭해 하셨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방을 쓰시며 밤이면 아이들 공부하는 곁에서 외할아버지께서 필사하신 <조선왕조 500년>책을 읽고 또 읽으시거나, 내가 준 동화책들을 읽으셨다.
세월이 지나 우리 아이들을 키워 주셨던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친정 어머니가 정말 자랑스럽다.
마당 한 가운데서 자라는 동백나무가 전지를 하고 나니 인물이 더 훤해졌다며 좋아하시는 친정 어머니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동백나무처럼 정갈하시고 조용하신 친정 어머니의 소원은
"나 죽을 때 자식들에게 애 안먹이고 동백꽃이 똑 떨어지듯 누운 자리에서 잠자듯이 가시는" 것이라고 하신다.
아무리 바빠도 이 주일에 한 번, 친정 어머니를 만나 뵈러 가는 일은 빼먹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친정집을 떠나왔다.
1919년生이신 친정 어머니가 사진을 찍어 장만해 놓으신 영정용 사진
사진 속의 어머니가 차분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나도 언젠가는 어머니처럼 내 영정用 사진을 찍어 준비해 두어야겠다.
(어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게 제 곁에 계셔 주셔요.)
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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