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념일, 녹차 케이크 앞에 두고...
10주년, 20주년, 25주년까지는 결혼 기념일날을 잊고 지나가면 속이 상했다. 25주년이 넘어서고부터는 '기념일' 이딴 것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기념일이라고 평일날과 무엇이 다른가?
언젠가부터 평일날이라도 기분내키면 그날을 결혼 기념일, 또는 생일을 미리 당겨서 축하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특별한 외식을 하게 되면
"건배, 우리의 결혼 기념일을 미리 당겨서..."
라거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을 당겼습니다."
이렇게 즉석에서 이름 짓고 맛있게 먹어주면 되는 것이니...
우리 어머니 시대엔 정말이지 일년에 몇 번 외식을 하셨겠는가? 또한 내 기억 속엔 부모님이 결혼 기념일이라고 챙기신 날이 한번도 없으셨다. 그러니 부모님 생일날은 집안에서 하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었다.
살다보니, 이젠 결혼한 지 몇 주년인지 헤아리기 싫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초를 몇 개 꽂아야하는가?' 하는 머리 아픔도 없어졌다.
퇴근 후, 東이 왕만두가 먹고 싶다해서 동아백화점 8층 레스토랑에 갔다가 집으로 왔다.
녹차 케이크를 식탁에 얹었다. 식탁 위에 덩그렇게 놓인 케이크 하나.
초도, 기념일 표시글도 새기지 않았다.
케이크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려졌다. 참으려 했는데 기어코 한 방울이 '툭' 무릎 위로 떨어졌다.
크리스마스보다 일주일 먼저인 결혼 기념일, 퇴근길 내 손에 들린 케이크를 반갑게 받아주던 아이들. 케이크에 꽂은 촛불이 꺼지고 나면 포크로 굴을 뚫는다고 난리법석이었는데... 오늘따라 멀리 있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혼자서 처음으로 포크로 굴을 뚫어 보았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東은 내가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린 줄도 모르리. 기척이 들리자마자 옷 소매로 쓱 닦아 버렸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케이크 드세요. 녹차로 만든 것이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케이크를 먹게 되어서 그런지, 참 맛이 좋아요."
케이크에 양 옆으로 구멍이 뻥 뚫린 이유도 모른 채 그이는 케이크를 맛있게 먹어 주었다.
그래도 알 건 알자
錫婚式(석혼식, 결혼10주년), 銅婚式(동혼식, 결혼15주년), 陶婚式(도혼식, 결혼20주년), 銀婚式(은혼식, 결혼25주년), 眞珠婚式(진주혼식, 결혼30주년), 珊瑚婚式(산호혼식, 결혼35주년), 紅玉婚式(홍옥혼식, 결혼40주년),金婚式(금혼식, 결혼50주년), 金剛婚式(금강혼식, 결혼60주년), 回婚式(회혼식, 결혼6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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