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초, 학교 쓰레기 소각장 - 그 당시는 쓰레기 분리수거 하기 전 세상이어서 소각장도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 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머리카락을 똘똘 뭉쳐 놓은 것 같은, 축구공 크기의 이상한 식물 뿌리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식물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참 징그러운 물건 정도로 보였을 거여요.
'도대체 저것이 무슨 식물 뿌리일까?'
궁금함에 식물 뿌리를 들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뿌리 위로 싹둑 잘린 줄기 중 하나를 살짝 구부려 보았습니다. 죽은 줄기는 쉽게 부러지지만, 살아있다면 구부려집니다. 다행히 줄기가 구부려졌습니다.
집에 가져와 화분에 심고 언제 새싹이 돋을까? 무슨 식물일까? 매일 들여다보았습니다. 얼마 후, 새싹이 올라왔습니다. 어쩜! 아스파라거스였습니다. 해마다 돋아나는 줄기는 대나무처럼 얼마나 쑥쑥 잘 자라는지…….
7, 8월이면 잎 가장자리에 수를 놓은 듯, 좁쌀만한 크기의 하얀 꽃들이 눈처럼 피어납니다. 아스파라거스는 몇 년 만에 우리 집 베란다를 열대 나라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새줄기가 올라올 때 실수로 잘못 건드리면 너무나 연약해서 그만 뚝 부러집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쑥쑥 자란 줄기는 일부러 꺾으려 해도 잘 꺾이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줄기가 되어 있습니다.
연약한 듯 보이지만 강인한 성품을 가진 아스파라거스, 키우면 키울수록 매력 있는 식물입니다. 꽃다발에서 아스파라거스는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언제나 배경이 되는 식물입니다. 빨간 카네이션을 받쳐주고 화려한 장미꽃다발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필명을 지으려고 할 때 제가 사랑하는 수많은 식물들 중 아스파라거스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푸르른 아스파라거스를 바라봅니다. 쓰레기 소각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나에게 온 아스파라거스, 나는 이 아스파라거스를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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