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꽃처럼 향기롭게, 나무처럼 튼튼히!
작품 탐사 literary exploration/작품 감상

아버지 - 그리운 추억

by Asparagus 2010. 1. 29.
반응형

우리 아버지

초등학교 다닐 때이다. 어쩌다가 아버지를 골목에서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얼른 달려가서 인사를 하고 손을 내민다. 집 밖에서 아버지를 만난 날은 횡재하는 날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어린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계셨다. 

"아버지, 뭐하십니껴?"

"응? 학교에서 인자 오나? 야가 누런 코를 흘려서 닦아 주잖아?"

'아이, 더럽구로…….'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너거 아부지 원래 그런 사람이다. 바지 포켓에 늘 신문지를 넣어 다니시다가 얼라들 코 닦아 주신다."

 

6,70년대는 신문지가 최고급 화장지이던 시절이다. 신문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손으로 비벼 부드럽게 해서 코를 닦아 주셨다. 그땐 누런 코를 흘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았을까? 그러나 골목길이 시끄러울 정도로 아이들이 맘 놓고 놀던 그리운 그때 그 시절이다.

 

대학교 1학년 때이다.  대학 입학 때가 가까워오면 아버지는 집에 낯선 학생을 데리고 오셨다. 

아버지와 함께 온 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무척 부끄러운 표정을 한다.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마루에 올라서서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는 남학생을 보며 아버지에게 여쭈어 본다.

"아버지, 누구인데요?"

"응, 아버지가 아는 분 아들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시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고 내방으로 갔다.

이튿날 식구들과 함께 아침을 먹을 때보면 그 학생은 벌써 아침밥을 먹고 가버리고 없다.

이듬해도, 그 이듬해도 낯선 학생 한 명 또는 두 명을 데리고 오시어 엄마에게 따로 밥상을 차리게 하고, 따로 잠을 재웠다.

 

그 이유를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어느 겨울날 친정에 갔더니 또 낯선 학생이 집에 와 있었다.

"아버지, 누구인데요?"

"니는 몰라도 된다. 아부지 친구 아들이다."

 

그날 밤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 해 주셨다.

"너거 아부지, 대학 예비고사 치는 날이면 꼭 저렇게 학생을 데리고 오신데이. 친척도 없고, 여관 갈 돈도 없는 학생이라고 하시대. 그 사실을 알면 갸들이 신경 쓰여서 시험 못 친다고 몇 년 간은 나에게도 숨기셨데이."

 

아버지는 직업 전선에서 물러나신 후, 소일삼아 하신다며 친구 분과 함께 집 근처에서 복덕방을 하셨다. 현재는 중개사 자격을 가진 분이 하는 부동산 중개사를 하지만, 70년대 당시는 나이 많으신 분이 중개를 하셨다.

 

시골에서 대구로 예비고사 치러 온 학생이 복덕방에 들러서

"혹 하룻밤 재워 줄 수 있는 집이 없는가요?"

이렇게 물으면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시험치거라, 친구 아들이라고 할 테니 돈은 걱정하지 말아라."

 

이렇게 해서 해마다 학생을 집으로 데리고 오셨던 아버지,

내 나이 스물 아홉살 그 어느 여름날, 인정 많으신 아버지 가신 지 어느덧 강산이 두 번도 넘게 변했다.

---------------------2021년 12월 31일 교정

그리운 아버지

초등학교 다닐 때이다. 어쩌다가 아버지를 골목에서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얼른 달려가서 인사를 하고 손을 내민다. 집 밖에서 아버지를 만난 날은 횡재하는 날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어린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계셨다. 
"아버지, 뭐하십니껴?"
"응? 학교에서 인자 오나? 야가 누런 코를 흘려서 닦아 주잖아?"
'아이, 더럽구로…….'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너거 아부지 원래 그런 사람이다. 바지 포켓에 늘 신문지를 넣어 다니시다가 얼라들 코 닦아 주신다."
 6,70년대는 신문지가 최고급 화장지이던 시절이다. 신문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손으로 비벼 부드럽게 해서 코를 닦아 주셨다. 그땐 누런 코를 흘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았을까? 그러나 골목길이 시끄러울 정도로 아이들이 맘 놓고 놀던 그리운 그때 그 시절이다.
 
대학교 1학년 때이다.  대학 입학 때가 가까워오면 아버지는 집에 낯선 학생을 데리고 오셨다. 아버지와 함께 온 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무척 부끄러운 표정을 한다.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마루에 올라서서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는 남학생을 보며 아버지에게 여쭈어 본다.
"아버지, 누구인데요?"
"응, 아버지가 아는 분 아들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시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고 내방으로 갔다. 이튿날 식구들과 함께 아침을 먹을 때보면 그 학생은 벌써 아침밥을 먹고 가버리고 없다. 이듬해도, 그 이듬해도 낯선 학생 한 명 또는 두 명을 데리고 오시어 엄마에게 따로 밥상을 차리게 하고, 따로 잠을 재웠다.
 
그 이유를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어느 겨울날 친정에 갔더니 또 낯선 학생이 집에 와 있었다.
"아버지, 누구인데요?"
"니는 몰라도 된다. 아부지 친구 아들이다."
 
그날 밤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 해 주셨다.
"너거 아부지, 대학 예비고사 치는 날이면 꼭 저렇게 학생을 데리고 오신데이. 친척도 없고, 여관 갈 돈도 없는 학생이라고 하시대. 그 사실을 알면 갸들이 신경 쓰여서 시험 못 친다고 몇 년 간은 나에게도 숨기셨데이."
 
아버지는 직업 전선에서 물러나신 후, 소일삼아 하신다며 친구 분과 함께 집 근처에서 복덕방을 하셨다. 현재는 중개사 자격을 가진 분이 하는 부동산 중개사를 하지만, 70년대 당시는 나이 많으신 분이 중개를 하셨다. 시골에서 대구로 예비고사 치러 온 학생이 복덕방에 들러서
"혹 하룻밤 재워 줄 수 있는 집이 없는가요?"
이렇게 물으면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시험치거라, 친구 아들이라고 할 테니 돈은 걱정하지 말아라."
이렇게 해서 해마다 학생을 집으로 데리고 오셨던 인정 많으신 아버지, 내 나이 스물아홉 살 되던 여름날, 일흔 살 되신 아버지 가신 지 어느덧 강산이 세 번도 넘게 변했다.
 
이제는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으니 복덕방 아닌 중개소에 들어가서 잠 재워 줄 빈방 있느냐고 묻는 고3학생도 없을뿐더러, 잠자리 준비 없이 수능 치르게 하는 부모 역시 없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아닌가? 어느덧 아버지 나이가 되어가는 막내딸은 이제야 철이 들고,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반중 조홍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 옛시조를 맘속으로 생각하면서 효심을 맘속에 묻는다.

반응형

'작품 탐사 literary exploration > 작품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쟁이 덩굴  (0) 2010.12.25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0) 2010.07.19
내가 좋아하는 것  (0) 2009.12.19
얼레빗 참빗  (0) 2009.12.11
더하기   (0) 2009.11.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