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9일 월 맑음
통일전망대에 올라 북한땅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다시 차를 타고 민통선을 지나왔다. 이제 다시 남으로 내려가야 한다. 38선이라고 씌어진 팻말을 지나니 기분이 묘하다. 고등학교땐 우리가 어른이 되면 통일이 될 거라고 믿었다. 독일처럼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툭 찾아와서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우뚝 솟은 경제대국이 될 줄 알았다. 언젠가는 통일이 되리라. 그 언젠가라는 말이 조만간 불쑥 눈 앞에 닥쳤으면 좋으련만...
강릉쪽으로 내려오다가 동호 해수욕장에 차를 세웠다.
"어머? 여기서 해수욕을 한다고요? 정말? 그럼 해수욕한다는 말은 왜 하지 않았어요? 수영복도, 아무 것도 준비해 오지 않았잖아요?"
나의 호들갑에 東은 아주 쉽게 말한다.
"그냥 그 옷 입은 대로 물에 들어가면 되잖아? 수영하다 나와서 샤워하고 걸어가면 옷이 절로 마를텐데..."
"정말? 그럴까요? 말리지 마세요?"
"말리긴 누가 말려?"
해변은 휴가 끝물이어서 아주 한산했다. 해변엔 가족 단위의 사람들 몇 그룹 밖에 없다.
똘지와 東은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고 나는 진짜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난 환호를 했다.
그럼, 이제부터 동호 바다는 내가 접수한다.
"야호!"
발목이 바닷물에 적셔지고, 그 다음 종아리, 허리 순으로...
'아후, 진짜 시원해.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지? 흉 볼 사람 없지? 나를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지?'
세상에! 바닷물이 이렇게 알맞게 시원하다니...
짧은 원피스와 레깅스를 입은 덕분에 수영복 못잖게 몸이 자유로웠다.
난 머리만 물 속에 내어 놓고 그냥 한 마리 인어가 되었다.
바닷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아닌가?
한 시간이나 원없이 바닷물 속에서 맘껏 수영을 했다. 해변으로 나와서 모래사장에 드러 누었다.
東이 내 몸에 모래를 끼얹기 시작했다. 금새 나는 얼굴만 모래밖에 나오고 온몸이 모래에 파묻혀버렸다.
모래에 남아있는 낮의 열기가 내 몸으로 고스란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땀이 났다. 뜻밖의 모래찜질이라니...
父子가 배고프다고 할까봐 십 오분 후에 일어났다. 샤워장에서 옷을 입은 채로 샤워를 하고 나니 東이 해변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민박집을 잡아 놓았다고 한다. 민박집에 가서 다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해변에서 가장 큰 음식점에 갔다.
오후 7시 33분. 음식점 앞에 학교 운동장보다 더 큰 화원 동산이 있었다.
동호면에서 조성해 놓은 꽃 공원이라고 했다. 수 많은 꽃들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꽃 한 가지만 찍었다.
이번에는 꽃에 빠져 허우적거릴 동안 父子는 광어회를 시켜놓고 나를 불렀다.
오후 7시 55분. 늦은 저녁을 먹다. 대형 광어 한 마리. 입이 뻐꿈거리는 광어 머리가 무서워 눈을 감았더니 서빙 아가씨가 얼른 상추로 머리를 덮어 주었다. 싱싱한 회와 시원한 매운탕으로 저녁을 먹은 후 민박집에 왔다.
민박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화려한 꽃이 있었으니...
바로 선인장꽃이다. 저녁 먹으러 나가기 전엔 분명히 꽃봉오리였는데, 밤에 꽃이 피어난 것이다.
화분을 통째로 안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父子가 차례로 샤워할 동안 나는 꽃 감상에 정신이 없었다.
밤 9시 26분에 만난 꽃
선인장 꽃 속이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뒷태
옆모습
마당에 가득 핀 백합을 두 송이 꺾어서 생수통에 꽂아 놓고 함께 앉아서 주말 연속극 <동이>를 다 보고 잠을 청했다.
휴가란 일거리에서 완전해방되는 것이라 했다.
집안일, 텃밭 가꾸기가 만만찮은 일거리 아니던가? 다른 이가 심어놓은 꽃의 향기를 맡으며 잠들 수 있다니, 오늘은 진정한 휴가가 맞다.
잠결에도 코로 스며드는 헝언할 수 없는 선인장 향기와 백합 향기는 나의 마음을 행복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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