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0일 흐린 후 오후 비
새벽에 코로 스며드는 진한 꽃향기에 잠이 깼다. 머리맡에 둔 백합과 선인장꽃은 밤사이 더 어여뻐진 것 같다.
여행지에서 꽃향기를 맡으며 일어나기도 처음이다.
먼저 일어나 세수까지 마치고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던 東이 오늘 일정을 말한다.
"아침 먹고, 오전에는 해수욕장에서 해수욕 좀 하다가 점심 먹고 슬슬 집으로 가려고 해."
"해수욕이요? 참, 아무런 준비도 안해왔는데? 어제처럼 그렇게 입고 할까요? 혼자만 수영하면 뭐해? 재미 하나도 없더만..."
"나도 물에 들어가면 되지. 고무보트 가져 왔다."
"네? 어쩌면... 그럼 혼자서 해수욕한다고 스케줄 다 잡아놓고 이야기 한 마디도 안하고?"
해수욕장 가까운 곳에서 된장찌개로 아침을 먹고 해변으로 나갔다.
東이 차 속에서 보트를 꺼내어 아들과 함께 바람을 넣었다. 이런? 차 속엔 구명조끼랑 텐트까지 실어 놓았다.
父子는 해수욕하기에 알맞은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에겐 자기 바지와 등산복을 입으라고 내밀었다.
참, 세상에서 가장 웃긴 수영복장. 東은 벌써 바다에 잠수? 자기도 바닷물이 그리웠나?
혼자서 보트 타고, 아들은 구명조끼 입고 헤엄치기.
아들 나와, 자리 지켜, 엄마 들어간다.
저 보트를 뒤집어 봐?
재주껏 뒤집어보셈.
재주가 메주여서 보트 못 뒤집었다 =_=
보트가 빠르나, 내 수영 실력이 빠르나 내기 중
아무리 수영 실력이 좋아도 보트는 못 따라올 걸?
그래도 난 보트 뒤집으러 갈 거야.
잡았다. 으히히 (품위는 바닷물에 빠뜨리고...)
재주껏 뒤집어 보셩.
뒤집느니 차라리 함께 타자.
뒤집기 작전은 실패하고 육중한 몸 보트 입성에 성공.
으히히히히 내가 무거워서 보트가 안나가지롱.
내가 보트를 힘껏 누르고 있어요.
ㅋㅋ 물 속에서 그 법칙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남? 이렇게 한 손으로도 움직이네.
보트가 움직이지 않게 손으로 물을 뒤로 보내기 작전
야호! 뭐 암튼 보트를 해변으로 밀어보내기 성공이다.
좌초된 보트와 東아.
보트 빼앗아 아들에게 전달하기
엄마, 거긴 위험해 너무 멀리 가지마세요.
괜찮아, 엄마 구명조끼 입었잖아? 구명조끼 입고 하루 종일 바다에 떠 있어도 되.
엄마 수영 실력 잘 알지? 보트보다 수영이 더 재미있어.
물에 빠뜨리기 작전 안하기 협상 끝내고 함께 타기
협동하여 노젓기
이 남자, 여기 위험 표시선 근처 바닷물 속에 빠뜨려?
너 재주껏 빠뜨려 봐.
안 뒤집혀지네.
하늘이 수상해진다.
빗방울이 간간히 내린다.
뭘 보고 저리 웃고 있나?
며칠 전만 해도 인산인해였을텐데...
나무 탁자와 의자, 파라솔 대여비가 만원이라는데 빌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잠자고 있다.
간간히 빗방울도 떨어지고 해도 나지 않으니 그냥 모래밭에 돗자리 깔고 자유롭게 앉는 것이 더 좋아서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보트 타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늘 밤부터 남해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데, 파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노 젓는 아들과 아버지
아침 9시부터 바닷물에서 놀다보니 어느덧 12시가 다 되었다.
보트 바람 빼고, 민박집에서 샤워하고 옷갈아입고 나니 오후 1시, 점심 시간이다.
어제 먹었던 음식점에 다시 갔다. 이유는 섭조개로 만든 섭죽과 섭국을 먹기 위해서이다. 수영하느라 체력 소모가 많이 되었나 보다. 처음 먹어본 섭조개로 끓인 섭국 맛이 독특했다.
다 먹고나서 벽을 보니 유명 인사들이 많이 다녀갔다.
손학규 전경기도지사님도 다녀가셨네?
점심 먹고 오후 세 시에 출발했다.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차를 타자 이내 빗방울이 떨어진다. 남으로 내려올 동안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제 올 때는 국도로 왔지만 집으로 갈 때는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오후 3시 43분, 강릉 휴게소에 들렀다. 강릉 특산품인 황태와 오징어를 구입했다.
휴게소 입구에서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새우 튀김을 한 접시 샀다.
비 오는 차 속에서 똘지와 나는 골아떨어졌고,東은 혼자 지루하게 운전한 지 4시간 만에 집 주차장에 차를 무사히 집어 넣었다.
깜짝 이벤트로 휴가지를 정하고 바닷물에서 즐겁게 수영을 하게 해준 東, 고맙습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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