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5일 수요일 오후 2시끼지 비, 그 후 오락가락 밤 그침
연 3일째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남부지방은 아직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데, 여기는 이렇게 2차 장마인냥 비가 오니 밤낮으로 선선하기까지 하다. 우리 국토가 좁다지만 날씨만큼은 천차만별인가?
아침부터 가는 비가 내려서 창밖을 간간히 내다보며 책을 읽었다. 신정일 지음 『다시 쓰는 택리지』시리즈 중 '복거총론 - 우리에게 산하는 무엇인가' 5편을 읽는 중이다.
'산기슭에 나고 자란 사람들은 산을 오른다(등산)이라 하지 않고 산으로 들어간다(입산)고 한다. 그것은 산을 정복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산을 허전할 때 기대고 싶은 어떤 대상이거나 고향집 또는 놀이 공간 혹은 내 몸처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관산-멀리서 바라보고, 유산-들어가 노닐어도 보고, 요산-즐기는 곳-이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비가 약하게 오기에 긴옷을 입고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뒷동산에 올랐다. 내가 심어놓은 각종 산야초들을 감상했다. 보라색꽃 핀 쑥부쟁이들이 웃자라서인지 꽃대가 전부 비스듬히 구부러져 땅에 기대려 하고 있다. 쑥부쟁이를 보다가 문득 평택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비가 조금씩 세게 내렸다. 이왕 젖은 옷, 우산쓰면 걸리적거리기만 하지? 그냥 텃밭에 들러서 이것저것 바구니에 담았다. 하찮은 푸성귀 몇 종류 담았다해도 흉 볼 사람이 아니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굵은 오이는 따먹지 않고 남겨 놓을 걸... 호박밭은 아무리 휘젓고 다녀도 먹기 알맞게 굵어진 놈이 보이지 않는다. 가지는 새끼 손가락만하다. 에공, 빨리 자라주지 않고선... (어제 홀라당 다 따 먹은 것은 생각도 않고 애꿎은 가지를 꾸중하다?ㅋ)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는 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였다. 고속도로에 올리니 퇴근 시간도 아닌데 길이 밀리고 있다. 무려 한 시간 10분이 걸려서 도착. 샤르님 근무지 앞에 차를 주차해 놓았다. 東은 차 속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만 약국손님인양 가장하려고 했다.
"저 약사님 안녕하세요? 000과 000이 필요해요."
이렇게 말하고 약품 구입 후, 카드 결재 하고 난 뒤에 신분을 밝히려 했는데...
(샤르님의 근무처, 기회를 보며 손님이 안찍히게 재빨리 찍었어요.)
너무 반가워서 그만 생각과 달리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선그라스도 끼지 않고 들어서서 약사님을 찾으니, 샤르님이 조제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알아버렸다.
약국 주변으로 내과, 치과 의원 등이 있어서 손님이 끊이지 않는 바쁜 시간에 불쑥 방문했으니, 샤르님이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금방 되돌아 나오려해도 너무 바쁘게 움직이시는 샤르님에게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000과 000을 구입했지만 샤르님은 한사코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귀한 보약 박스까지 챙겨 주셨다. 함께 근무하시는 인자하게 생기신 샤르님 남편 약사님께서 차까지 마중해 주셨다.
東이 내가 약국에서 나올 때까지 차 속에 앉아서 기다려 주며 주변을 살펴보았나 보다.
"주변에 약국이 많은데, 아나파 약국에만 손님이 몰리는 것 같아. 길 건너편 약국에는 손님이 거의 안들어가서 약국이 한산하더라."
"그렇다니깐요. 나라도 친절한 약국에 가지, 아나파 약국엔 손님이 가지 않고는 못배기게 하는 친절함 때문일 거여요."
샤르님이 운영하시는 약국이 북적이니 내가 다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샤르님은 99세 되실 때까지 은퇴는 꿈도 못꾸시겠다.^^
집으로 올 때는 고속도로가 휑하니 뚫려서 거짓말 같이 20여분만에 양지 IC를 통과했다. 집까지 삼십분도 안걸렸다.
(샤르님, 농담으로 언젠가 불쑥 찾아갈 거라고 했지만 저 때문에 많이 당황하셨지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저녁 먹고 몇 십년 만에 처음으로 구충제를 먹었어요. 제 몸에 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한번도 안 먹었다하는 제 말에 샤르님이 깜짝 놀라셔서 저도 속으로 더 깜짝 놀랐어요. 구충제 먹었으니 어쩐지 내일부터는 몸이 더 가뿐해 질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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