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넝쿨째 수확하다.
2010년 10월 25일 일 아침 잠깐 흐리고 맑음
남쪽에서는 가을 폭우가 왔다는데, 청명하고 맑은 가을 하늘을 보여주어서 고마운 하루였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가을걷이에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봄부터 가꾸던 작물을 단 이틀 만에 다 하려고 하니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수세미 한 포기가 만들어 놓은 수세미, 10개나 땄습니다. 올해도 천연수세미로 설겆이 할 때, 목욕할 때 천연 거품기로 쓰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한 줌 심었던 수숫대 자르고, 몇 포기 심은 끝물 가지 따고, 고춧대 뽑아서 고춧잎 따고 나니 텃밭에는 배추와 무, 부추, 파, 쪽파가 주인공 되었습니다.
정원석 위 여기저기 흩어놓았던 다육이 화분들을 실내에 들어놓다보니, 하루해가 금방 서쪽하늘로 가버렸습니다.
올해는 잦은 비로 인해 여름에 결실을 맺어야 할 호박이 9월이 들어서고서야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주말마다 애호박을 보이는 족족 따먹고,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는데도 숨어있던 호박들이 왜 그리 많은지... 누런 호박은 겨우 한 개밖에 따지 못했습니다. 시퍼러딩딩한 호박을 마당으로 옮기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사과처럼 예쁘게 생긴 애호박은 몇 개만 남기고 이웃에게 나누어 준 갯수가 30개나 되었습니다. 저녁 먹고 나서 東과 함께 마당에 거두어 놓았던 호박을 집안으로 들여놓았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호박이 그야말로 넝쿨째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시퍼러딩딩한 호박, 어디에 쓸까요? 일단 노란 색으로 변할 때까지 집안에서 한 자리에 가만 두면 되지 않을까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못생긴 호박을 전시했습니다.
두 개씩...
세 개씩... 참 제멋대로 생긴 호박입니다.
몇 개인지 헤아려 보고 있어요?
지금까지 2010년도 대박난 텃밭 농사이야기였습니다.^^
사족 : 계단에 올려 놓은 호박을 바라보니 결혼 후, 어렵게 살았던 2, 30대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열 달 20만원짜리 삭월세방. 부엌 하나, 방 하나인 단칸방에서 생활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꿈을 가지며 하루 하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꾀 부릴 줄도, 얼렁뚱땅 할 줄도 모르고 그냥 우직하게 생활했어요. 그렇게 어렵던 그 시절엔 왜 그리 호박꿈을 많이 꾸었는지...
눈만 감으면 호박이 넝쿨째 품안에 툭 떨어지는 꿈을 꾸는 겁니다. 누런 호박을 품안에 안고 좋아하다가 눈을 뜨면 꿈이어서 웃기도 많이 했어요. 시골 풍경을 늘 동경하면서 도시에서 자라서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저만큼 호박꿈을 많이 꾼 사람 없을 겁니다.
친정에 가서 제가 꾼 꿈 이야기를 하면
"너는 참 희안한 꿈을 잘도 꾼다. 이 다음에 또 그런 꿈을 꾸면 나에게 하나만 팔아라."
이래서 백원 받고 언니에게 하나. 친정 어머니에게 하나를 팔기도 했습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지만 사람은 세월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힘든 결혼 생활을 참고 참다보면 좋을 날이 반드시 오지 않겠어요?
그나저나 젊은 시절엔 꿈에서 호박을, 나이를 먹어가며 현실에서 진짜 호박 구덩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 참 웃기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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