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용식물에 처음 눈을 떴던 십여년전, 한번씩 전화하면 약효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시고 가르쳐 주셨던 외아재의 부재를 생각하면 가슴이 휑해지곤 합니다.
여든이 넘으셨어도 언제나 정정하시고 단정하시던 외아재, 몇해전 무릎 관절이 좋지않아 수술 받으셨는데, 그 후유증으로 아픈 다리가 더 편찮으셨다고 합니다. 지난 겨울 급성 폐렴이 와서 입원한지 며칠만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저께 시간내어 외아재 집을 방문했습니다. 외아지매가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외아재 유품 몇 개를 찾아내시어 저에게 주셨어요.
화단에 피어있는 목단을 소재로 그리신 한국화 한 점,
외아재가 가장 좋아하셨던 청매화, 홍매화 분재를 소재로 그리신 한국화 한 점,
선비라면 당연히 소나무와 학이 연상되겠지요? 학과 소나무 소재 한국화 한 점,
이렇게 세 가지나 챙겨주신 외아지매, 고맙습니다. 표구 잘하여 잘 감상하겠습니다.
이 대나무 액자는 외아재께서 1989년도에 저에게 선물로 주신 대나무 한국화입니다. 그때 바로 표구하여 거실 벽에 걸어둔 것입니다. 세월이 23년이나 흘렀군요,
'외아재, 이 그림 저에게 주실 때 청년 같으셨던 모습, 엊그제인듯 눈에 생생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학산 鶴山, 외아재의 호입니다. 학처럼 고고하고 산처럼 듬직하게 사셨던 외아재, 외아재가 정성으로 치유해주셨던 수많은 환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중화당 한약방을 찾아 외아재가 남겨놓고 가신 약처방전 대로 약을 지어가신다고 합니다.
외아재 분재 유품 중 백일홍 분재나무입니다.
식물을 너무도 사랑하셨던 외아재는 넓디넓은 정원에 수백 종류의 분재나무를 키우셨습니다. 저도 식물을 좋아한다고 하니 외아지매께서 저에게 외아재가 아끼셨던 분재 세 종류를 덥썩 차에 실어주셨습니다.
"외아재가 키우시던 것 지금껏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다, 너이니까 마음 놓고 준다."
하시며 주신...
저희집 마당에 내려놓고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외아재가 만들어 놓으신 수형을 머리속에 그려봅니다.
외아재가 가장 아끼셨던 청매화, 홍매화 분재 중 하나입니다.
고목같은 분재 밑둥치를 들여다보며 외아재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몇 십년전 어느 겨울 끝자락, 봄이 오는 길목인 2월, 외아재 서재 한쪽에 놓여진 분홍꽃이 피는 홍매화랑, 하얀꽃이 피는 청매화가 가지마다 활짝 피어나 내뿜는 그 향기에 취해 집에 갈 생각조차도 잊을 뻔했던...
그때 외아재께서
"맞다. 매화 향기에 취하면 일어나지도 못하지. 허허, 너에게 매화 분재 하나 주마."
하시며 뒤뜨락에 분재용으로 만들어 놓은 매화 한 그루를 뽑아주셨습니다.
그 매화를 아파트에서 잘 키우며 봄이면 매화 향기에 취했는데 칠, 팔년 키우다가 여름 어느 날, 며칠 집 비운 사이 유독 매화만 가버려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재 서재에 놓여있었던 고목 매화 등걸 분재를 저에게 선뜻 내어주신 외아지매, 고맙습니다. 이 매화 분재는 제가 키우는 한, 두번 다시 보내는 일이 없도록 잘 관리하겠습니다.
소나무 분재 만드시려고 화분에 심어둔 것도 한 그루 주셨습니다.
소나무 씨앗을 발아시켜 이만큼 자라기까진 족히 5, 6년은 걸렸을 것입니다. 소나무 화분을 바라보며 외아재의 숨결을 느낍니다.
외아지매께서 피로할 때 먹으라고 보약도 봉지에 담아주셨어요.
한의학을 공부하시고, 환자들을 돌보시면서도 언제나 책과 붓을 놓지 않으시던 외아재, 취미는 붓글씨와 한국화, 그리고 그 넓디넓은 집 마당에 오만 종류의 분재와 식물들, 선인장들로 빼곡히 채워진 화단을 가꾸셨던 분이셨습니다.
조선시대 때부터 품질 좋은 약재로 유명하였던 중화당 한약방, 한의과를 나온 아들이 물려받아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외아재, 사람은 한번 그 길을 가시면 다시는 이 세상에 되돌아올 수 없으니, 현재의 삶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 길을 가겠지요? 그때까지 더욱 열심히 세상과 마주하며 성실히, 묵묵히 잘 살겠습니다.
그리고 외아지매, 외아재가 곁에 없으니 늘 쓸쓸하다고 하셨지요? 외아지매를 극진히 잘 모시는 어여쁘고 자상한 맏며느리가 곁에 있고 든든한 손주 두 명이 할머니를 잘 따르니 너무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주신 유품들을 잘 간직하고 잘 돌보겠습니다. 외아지매도 늘 건강에 유의하시고 지금처럼 앞으로도 여생을 편안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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