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내외가 지난 7월, 혼사를 무사히 치루고난 답례로 서울, 경기, 경상도, 대구지역에 살고 있는 일가 친척들을 직접 찾아뵙고 고마움을 전하는데 무려 한달씩이나 걸렸습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아직까지는 외국에 거주하는 친척은 한 명도 없어서, 외국 방문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습니다. ^^
서울 방배동에 살고 계시는 셋째시숙부님과 시숙모님, 너무 반가웠습니다. 십년전 쌍둥이를 서울대에 유학 시켜놓고부터 일년에 두번씩 방문할 적마다 아이들에게 용돈도 두둑히 주시며 반겨주셨던 시숙부님. 몇 년전부터 다리가 편찮으시다고 하셨는데 이번에 많이 수척해지신 모습 보며 제 마음이 많이 어두웠습니다.
서울 중랑구에 살고 계시는 둘째시고모님과 고모부님, 아들과 며느리 뒷바라지해주신다며 함께 산다고 하셨지요? 손자 키워주시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르시지요?
고모부님이 이야기 도중 안방에 들어가시더니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가지고 나오셨어요.
언제적 사진입니까? 이 사진은 바로 우리 똘지랑 돼지가 만 일년 되던 첫돐날 아닙니까? 하는 짓마다 똘똘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눈망울이 똘망똘망하여서 붙여진 별명, 똘지(하늘색 옷 입은 얼라)와 순둥이같은 동생, 나물종류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주는대로 잘 받아먹는다고 붙여진 별명 돼지(흰옷입은 얼라)와 노할머니, 그리고 고모님 세 분과 둘째 고모부님.
몇 십년이나 된 사진을 꺼내 보여주신 덕분, 지난 날을 회상하며 즐거웠습니다.
청양고추 넣고 구워주신 부추전, 집에 가져와서 맛있게 잘 먹었어요.
서울 여의도에 살고 계시는 큰 시이모님, 연세가 86세이신데 아직도 소녀 같았어요. 고운 외모, 고운 손, 성당에서 봉사하시느라 늘 늘 바쁘다하시면서도 깔끔하게 잘 정돈된 집안을 보며 마음이 놓였습니다.
문경 시외가에 갔습니다.
"사는게 뭐라고..., 너희들 신혼 때 한번 다녀가고 무려 삼십 몇년 만에 이렇게 왔느냐?"
둘째 외숙모님에겐 호되게 꾸중 들었어요. 저희 사정이야 어쨌건 꾸중 들을만도 했습니다. 앞으로 일년에 한번씩은 방문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대구 시숙부님 댁에 갔습니다. 에어컨 바람에 더운 줄 모르는데 선풍기를 자꾸만 저 앞으로 돌려 놓아주시며 염려해주신 시숙모님의 잔잔한 정에 늘 감동 먹잖아요? 손수 담은 열무김치랑 가지 무침, 두부구이찌개 등등으로 저녁을 먹으며 자꾸만 권하고 또 권하시던 숙모님, 무한한 사랑 베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천 친정 큰집에 갔습니다. 사촌오빠가 고추를 말리다말고 깜짝 놀라며 반가워해주셨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고 일어나니 큰 박스에 복숭아를 한가득 따서 차에 실어주셨습니다. 늘 살갑게 대해주는 사촌언니, 매번 정을 듬뿍듬뿍 주시어 너무 송구합니다.
청천 사촌 오빠집에 갔습니다. 깻잎 따느라 바쁜 시간에 불쑥 들어갔는데 반갑게 맞아 주셔서 기뻤어요. 청첩장 손수 전달하러 와주어서 감격했다고 해 주셔서 그때 저도 기분이 참 좋았어요. 힘들게 까놓은 강낭콩 한 바가지를 그냥 다 부어주시어 몸둘 바를 모르게 하시던 사촌언니, 늘 오빠랑 다정하게 농사 지으시며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 제 마음 속 부부 모델이신 것 모르시지요?^^
상주 큰시이모님댁에 갔습니다.
고향을 지키면서 수십년 교직에 계셨던 시이모부 내외님은 몇 년전 다 돌아가셨습니다. 제 머리속에 남아 있는 모습은 잘 생기시고 다정다감하신 시이모부님, 신세대 여성처럼 늘 씩씩하시던 시이모님이십니다. 맏아들(저에겐 시이종사촌 아주버님)이 고향집을 잘 지키고 계셔서 마음 든든했습니다. 사촌 형님이 집에서 농사 지어 수확한 참깨로 짠 참기름을 큰와인병에 담아주셨습니다. 거기다가 미숫가루, 햇깨 한 되, 호박 등등 가방에 바리바리 싸주셨어요.
인사 드리러 갔다가 인정을 한보따리 안고 왔습니다.
아참, 가장 중요한 것은 저기, 닭장이 보이지요?
저 닭장 속에 든 토종닭 중병아리를 네 마리나 라면 상자에 담아 주셨어요. 잘 키워보라구요.
병아리가 든 상자를 차 뒷트렁크에 싣고 가은에 살고 계시는 시고모님 집에 갔습니다. 읍내에 살고 있는 막내고모님을 전화로 불러내어서 함께 갔어요.
큰고모님은 너무도 반가워하시며 자고 가라고 극구 붙잡으셨습니다.
친척집 다니며 일부러 식사 시간은 피해서 방문하고(식사 때되면 근처 음식점에서 간단히 사 먹고 방문하기) 아무리 반갑고 좋아도 머무는 시간은 한 시간 이내로 하자고 정한 규칙이 둘째 시숙모님과 큰고모님집에서 깨어졌습니다.
빨리 일어나서 가자는 남편을 제가 설득했어요.
"큰고모님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요. 전 이렇게 살고 계시는 큰고모님이 너무 맘에 듭니다. 이렇게 자연과 함께 하는 고모님 집을 그동안 왜 한번도 오자고 하지 않으셨어요? 일년에 몇 차례씩이나 이 길을 지나 약초 캐러 다니면서 고모님집 동네를 지나쳤네요? 큰고모님 집을 몰라서 그랬다는 것은 핑계 아니었어요?"
막내고모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보니 큰고모님이 저녁을 차리셨습니다.
담장 호박넝쿨에서 딴 애호박 - 얼마나 맛있었는지 고모님 집 다녀와서 부터는 저도 이렇게 호박반찬 만들어 먹고 있어요.^^
우엉조림
고모님이 산에서 키우신 두릅나물.
호박잎 쌈과 양념간장
들깨김치
양파 볶음
고모님이 직접 만드신 청국장
소박하게 차린 저녁상입니다. 이렇게 온기 있는 시골 음식을 몇 년만에 먹어보는지... 너무도 밥맛이 좋아서 고모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니깐요?
"고모님, 어쩌면 밥이 이렇게 맛이 있습니까? 얼른 자고 일어나서 내일 아침밥 먹고 싶습니다,"
이불과 요자리 펴고 두 고모님 사이에 누워 밤 늦도록 도란도란 옛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이튿날, 고모님은 청정 냇가에서 잡은 다슬기로 국을 끓여주셨습니다. 얼마나 맛이 좋았는지 평소 제가 먹는 양보다 두 배는 먹었답니다.
아참, 고모님 집 떠나올 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병아리 네 마리는 그만 두고 왔습니다.
병아리들은 졸지에 이런 신세가 되었잖겠어요?
상주 시이모님 집에서 얻은 병아리 네 마리. 문경 가은 시고모님집 닭장에 위탁해 놓다.^^
시고모님께서도 직접 농사지은 참깨로 짠 참기름 한 병, 호박, 잡은 다슬기를 까서 냉동시켜 놓은 다슬기 세 봉지씩이나, 청국장 두 덩이, 나물 등등을 스티로폼 상자에 가득 담아주셨습니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 한달, 수많은 친척들을 방문 하면서 저희 부부 인생사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부부란 무엇입니까?
서로서로 거울(인생, 마음)을 들여다보며 정성들여 세심히 닦아주어야 하는...
자칫 잘못하면 거울은 깨어지지 않겠어요?
어느 누구를 탓하다가 거울이 깨어지면 5초 본드로 붙일 수 있겠습니까?
서로 서로 보기 싫다고 거울(마음)을 외면하면?
부부란 함께 인생을 꾸려가는 거울임을 알았습니다.
늦었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늦은 것도 아닐 것 같아서 아주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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