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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탐사 mind exploration/거꾸로 쓰는 육아 일기

고등학교 수학 여행 이야기

by Asparagus 201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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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그리운 우리 똘지, 돼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 여행 떠났던 바로 그날 아침에 쓴 편지입니다.


(먼 이국 땅에서도 우리 한국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교육에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시는 별떵이님, 읽어보세요.^^)


 똘지야, 돼지야!

너희들, 오늘부터 3박 4일로 설악산으로 수학여행 간다면서 집을 나갔구나?


너희들은 집에 있고, 엄마만 볼일을 보러 밖에 갈 적이면

"어, 너희들끼리 잘 있어. 엄마, 집 나간다! 저녁에 들어올 게.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이렇게 농담하면서 안심하고 집을 비웠지. 너희들 네 명은 엄마인 내가 없어도 점심, 저녁 잘 찾아서 챙겨 먹었던 그 옛날이 갑자기 생각나네. 아직도 부모의 손이 필요한 시기에 이 엄마는 직장 다닌다고 제대로 돌보아 주지도 못하면서 늘 큰소리만 쳤구나.


"너희들 잘 명심해. 너희들이 직접 밥도 해 먹을 줄 알고, 반찬도 만들 줄 알고, 사과도 깎아 먹을 줄 알아야, 엄마 아빠가 없더라도 굶지 않지. 엄마, 아빠 없으면 누가 너희들에게 밥을 해 주고, 반찬을 해 주겠니?"


엄마의 이 말에 너희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정말 잘도 실천해 오고 있는 거야.

엄마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단다. 남들은 너희들을 보고

"어쩜, 아이들이 저렇게 갈비 같을까? 제 아빠 닮았나? 엄마가 제대로 거두어 먹이지 않았나?"

이렇게 쉽게 말을 하지. 그럴 때마다 엄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단다. 실제로 내가 너희들에게 다른 어머니들 보다 너희들을 덜 거두어 먹였기 때문이지.


오늘부터 나흘 간 집 떠나는 너희들을 보며, 엄마는 갑자기 쓸쓸한 생각이 드네? 지금쯤 너희들은 버스를 탔겠네? 이 엄마가 너희들 학교에 가서 떠나는 버스를 보며 손이라고 흔들어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놀린다고 그냥 너희 형제들끼리만 가 버렸구나.


좀 전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너희들이 타고 갈 버스가 있는지 내려다보았단다. 버스는 안 보이고, 불 꺼진 너희들이 공부하던 건물의 교실들만 보이는 구나. 이제 저 건물도 나흘 동안은 푹 쉬겠구나.


똘지는 중학교 때, 2박 3일로 수학여행을 떠나 보았지만, 돼지는 중학교 때, 학교에서 IMF 만나서 수학여행을 취소해 버렸다고 늘 "형님은 좋겠다. 형님은 수학여행도 다 가보고…." 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소원이 이제서야 이루어졌네?


똘지, 돼지야!

잘 놀고 오기 바란다. 너희들 성격이 너무 얌전해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을 게. 엄마의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얌전한 사람이 놀 적엔 더 신나게 놀더라.


마지막으로 너희들을 생각하며 썼던 시가 생각이 나는구나. 이 시는 너희들이 초등학교 다닐 적, 어린이 날이면 다른 부모님처럼 좋은 장난감-오락기, 게임기 등-을 제대로 사준 적이 있나? 어디, 좋은 곳에 놀러 데리고 간 적 있나? 오로지 어린이날은 엄마가 "찬스, 이 때가 가장 씨앗을 뿌리기 좋은 때이란다. 이런 공휴일 날은 일을 해야지?" 하며 너희들을 강제로 끌고 주말 농장에 데리고 가서 일을 부려먹었던 것을 반성도 하며, 그러나, 이 엄마의 그러한 생각들이 반드시 너희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썼던 시이지.


다시 잘 읽어 보렴!


너희들은 해마다 여름날이면 옥수수를 정말 질리도록 먹고, 또 남은 옥수수들은 두고두고. 일년 내내 옥수수를 볶아 차로 먹지 않니? 어린이 날이면 옥수수를 심고, 호박을 심은 덕분.….


옥수수를 먹으며

아스파라거스


어린이날이어요.

어머니랑 텃밭에서 씨를 뿌렸어요.


"남들 다 놀러 가는데 우리만 일을 하고……."


여름이 되었어요

보석처럼 총총 박힌 옥수수를 먹으며

어머니의 깊은 뜻 알았어요.,

(을해년 여름날에)


설악산에 가서 즐겁게 잘 지내고 돌아와.


이제 나흘 후에나 보게 될 나의 사랑하는 똘지, 돼지에게

엄마가 (2001. 10. 16. 07:10)

별떵이님, 한 밤중에 이 글 올리며 좀전에 이렇게 급히 그 시절 쓴 '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초겨울에 피어나서 석 달이 지나도록 집안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는 시클라멘입니다.


별떵이님, 오로지 공교육만 시켰던 간 컸던 그때 그 시절 이야기입니다. 빙산의 일각입니다만 제 마음 조금이나마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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