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5일 토 맑음
옆집에서 점심 초대를 했습니다.
큰 아궁이를 징검다리 중간에 옮겨놓고 닭백숙을 준비해 놓았어요.
연못이 보이는 정자에 앉아 닭백숙 파티를 열었습니다.
앞집, 옆집, 뒷집. 다섯 집 부부가 모여 담소를 하면서 닭백숙을 기다립니다.
상에 보이는 반찬, 전부 자급자족 무공해 식품들입니다. 텃밭에서 갓 캔 감자 맛이라니...
자색 양파도, 파 김치도, 김장배추, 갓 딴 풋고추, 어느 것 하나 주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 없습니다.
전원생활의 묘미는 힘든 노동 끝에 얻는 무공해 먹거리 수확이 아니겠어요?
초대하신 아저씨가 오전 내내 끓였던 닭백숙.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닭백숙 이어야 했지만 저에겐 바로 이것이 최대의 선물이었습니다.
꿈에도 꼭 한번 해보고 싶던 보리 서리.
소설 속에서만 읽었던 보리 서리.
그 보리 서리를 드디어 하게 되는 현장을 소개드립니다.
제가 봄이면 노래 삼아 보리 서리, 보리 서리했더니 제 말을 잊지 않고 드디어 이렇게 직접 시연해 주셨습니다.
닭백숙 다 끓여내고 난 아궁이에 마른 잔디를 올려놓고 불을 피웁니다. 바람을 호호 불어넣어가며...
드디어 불이 붙었어요.
청보리 한 줌을 꺾어서 불 위로 갖다 댑니다.
앞으로 한 번 구슬리고,
뒤로 한번 구슬리고,
또 한번 뒤적,
뒤로 뒤적.
신기한 것이 우수수 떨어질 줄 알았던 보리 이삭이 겉의 수염만 새카맣게 탔습니다.
손으로 비비고 또 비빕니다.
후후 불고 난 손바닥 위에는 이렇게 설익은 보리 알갱이가 남았습니다.
(사진으로 보이는 손톱이 안쓰럽게 보이십니까? 전원생활을 꿈꿀 때는 누구라도 우아하고 멋진 생활을 할 거라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은 즐기기 위한 밑거름인 정원 단장 및 손질, 텃밭 가꾸기 등 90% 이상 손수 하여야만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저희 부부도 그렇고, 옆집 부부도 처음 전원에 발 들여놓았을 땐 싹 빼입은 양복, 투피스 정장, 굽 높은 구두, 하얀 피부, 일상 도시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언제 손톱에 풀 물이 들고, 언제 손톱에 흙이 들어가는지 살필 겨를이 없더군요. 피부도 당연히 자연 선탠 되구요. 단정한 정장, 우아한 드레스 대신 일 하기 편한 복장과 편리한 장화 등등이 전원생활 패션입니다. 손톱 밑이 새카만 사람들을 이젠 존경의 눈빛으로 보게 되다니, 저 자신이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이 보리 알갱이를 입에 툭 털어 넣고 먹습니다.
저도 따라 해 보았습니다.
잘 거슬린 보리 이삭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비볐습니다. 보리 수염이 엄청 따가웠습니다.
이렇게 겉껍질이 붙어있지만 전혀 질기지 않고 맛이 구수했습니다.
'꿈에도 해보고 싶었던 보리 서리, 소설 속에서만 읽었던 보리서리, 불에 그을려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을까?"
궁금하였던 그 소원이 수십 년 만에 이루어진 날이었습니다.
전원생활의 묘미, 이런 추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옆집 아저씨는 어렸을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직접 보리를 길러 보여주셨고, 저는 난생처음 보리 서리 현장에서 잠시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시절로 되돌아갔습니다.
참, 집 텃밭에서 주인이 직접 풋보리 잘라 구워 먹는 것은 보리 서리가 아닌 것 다 아시지요?^^ 보리 서리는 어린 악동들이 학교 갔다 집에 올 적에 남의 집 보리밭 청보리를 한 줌 슬쩍 뜯어서 냇가에서 불 붙여 구워 먹었다는 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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