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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탐사 rural exploration/녹색 장원

기사회생[起死回生]한 회화나무, 고마움 알까?

by Asparagus 201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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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6일 토요일 맑음

죽을 뻔했던 회화나무, 죽지 않고 자리 이동하여 살아가게 된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도 고맙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경위는 이렇습니다.


저희 단지 앞 논둑에 회화나무 한 그루가 살고 있습니다. 

'회화나무가 어떻게 논둑에서 다 자랄까?'

늘 궁금하고 또 궁금했지만 지난 6년간 논 주인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재작년, 그 회화나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클릭해 보세요.)

논두렁에 회화나무 심은 뜻은?|정원 수목2011.10.26 20:56

화회나무가 아니고 회화나무 지난 해 여름, 직장 선배님 한 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조선생, 우리 고향 동네에 노거수가 한 그루 있는데, 도무지 이름을 알아낼 수 없다네. 여름에 꽃이 피는데 꽃도, 잎도 꼭 아카시아나무 닮았거든...


이렇게 우리 마을 앞을 수호신처럼 지키오던 회화나무가 지난 7월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너무도 놀라서 논둑에 가보니 아름드리 나무를 싹둑해 놓은 것입니다. 논 주인을 만나서 회화나무 심은 뜻을 물어보려 했던 제 생각이 너무도 허무했습니다. 집 앞을 지나칠 적마다 싹둑 잘린 그 회화나무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쁜 일이? 전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싹둑했던 회화나무 밑둥치가 살아 있어 뿌리 근처에서 새로운 가지가 수도 없이 돋아나 자라나는 것입니다. 싹둑해버린 거목 굵기만큼 자라려면 몇 십년이 걸릴까? 짐작도 못하겠지만 어쨌건 다시 만난 회화나무 새가지들이 반가웠습니다.


가을이 되고 추수하던 날 드디어 길 가에 서 있던 논 주인을 만났습니다. 논주인임을 확인하는 순간 대뜸 말했습니다. 마치 제가 화회나무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논주인 되십니까? 저기 저 논둑에 서 있던 나무, 그 회화나무를 왜 베어버리셨어요?"

"네? 아, 그 나무요? 논에 그늘져서 베어버린 것인데요?"


'이 무슨? 그럼, 논 주인은 그 나무가 회화나무인지도 몰랐단 말이지? 그동안 나 혼자서만 회화나무 심은 깊은 뜻을 각색하여 논주인의 높은 안목과 교양을 상상했단 말이네?'


상상은 이렇게 가끔씩 허무하기도 합니다. 나무 따위엔 관심 없다는 논 주인 대신 제가 되살아난 회화나무를 돌보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자라서 논둑에 그늘이 생기지 않게끔 전지 가위로 회화나무를 전정해 주며 분재처럼 가꾸어 주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상전벽해[桑田碧海] 상전(뽕나무밭)이 벽해(푸른 바다)가 된다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단지 앞, 대대로 내려오던 옥답이 메꾸어지는 순간입니다. 누가 저 넓디 넓은 절대 농지가 밭으로 변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메꾸어지는 옥답은 무려 2000평이라고 합니다.

단지 앞 소나무 끝자락 아래 보이는 것이 다시 새순이 자란 회화나무입니다. 조만간 트럭이 흙을 쏟아부으면 땅 속으로 파묻힐 위기에 처했습니다.

'논과 논 사이 실개천이 흐르는 저 평화로운 그림같은 정경은 이제 끝이란 말인지?'

속으로 너무도 섭섭했습니다.  복토하면 밭으로 용도변경한답니다. 용도변경된 밭은 아마도 몇 년 가지 않아서 대지로 전용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골은 시골다워야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단지부터도 시골을 훼손했으니 뭐라고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일은 이미 시작된 것이고, 논둑에서 사라질 회화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작업을 하고 있는 포크레인 기사 아저씨와 논을 메우는 작업을 하는 총책임자에게 다가가 회화나무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한민국 논둑에 회화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은 아마 여기 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논 주인이 그 아름드리 큰나무를 싹둑해 버린 바람에 제가 얼마나 애통해한지 모르실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히 다시 새 가지가 돋아나서 다시 자라게 되어 너무 기뻤어요. 논 주인이 관심도 가지지 않던 회화나무를 제가 돌볼 결심을 했더랬어요. 그런데 이 좋은 나무가 결국은 흙 속으로 들어가서 죽게 된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총책임자는 자기도 조경수에 대해선 조금 아는데 절대로 회화나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꽃 피는 시기, 열매 모습, 줄기에 가시가 없는 것 등등, 제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회화나무임을 증명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근방에서 이 나무 본 적이 있으시냐고 되물으며 회화나무에 대해 이야기 해 드렸습니다.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를 행복수라고도 하고 학자수, 출세수라고도 부른답니다. 회화 나무는 훌륭한 약재도 되구요.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고 일부러 심었다고 합니다. 또한 회화 나무는 옛날에는 고결한 선비의 집이나 절간, 대궐 등에만 심었던 길상목이라고 합니다. 임금이 특별히 공이 많은 학자나 관리에게 상으로 내린 나무라고 합니다. 이런 귀한 나무를 땅에 파묻다니요." 

먼지가 자욱한 공사판에 뜸금없이 나타나서 나무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시던 총책임자란 분이 포크레인 기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이, 김기사. 포크레인으로 저 나무 푹 떠서 길 입구로 옮겨라. 나무 잘 옮기면 너 아들 낳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기적은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땅 속으로 영원히 파묻힐 뻔했던 회화나무가 길 가장자리로 이사를 했습니다.


지난 여름 그 굵은 둥치 싹둑 잘렸을 때 몸부림치며 새가지를 마구 만들어 놓았던 회화나무입니다.

아카시아 잎과 흡사하지만 줄기에 가시가 없습니다.

이제 보름 후면 왼쪽 (이사한) 회화 나무 서 있는 곳부터 오른쪽 총책임자와 포크레인 기사가 서 있는 곳까지, 저 넓디넓은 논이 복토되어서 정경이 변해버릴 것입니다. 길 가로 자리 이동한 회회나무가 다시 수호목이 되어 아름드리로 잘 자라길 빕니다. 


산발한 머리처럼 변해버린 수형을 바르게 잡아주어 멋진 회화나무로 되돌려 놓는 것이 관건입니다. 제가 시간나는 대로 수시로 살짝 살짝 전지해 주고 돌보아주면 언젠가는 되지 않겠어요?

(총책임자님이 논 주인에게 나무 옮긴 이야기 해 주실 것이니 그 부분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나무 옮겨 심도록 지시하신 공사 총책임자님, 고맙습니다. 나무 잘 옮겨심으신 기사 아저씨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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