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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탐사 treasure exploration/국내 여행

경복궁 관람 2

by Asparagus 2018.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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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8일 일요일 맑음

경복궁 - 교태전 후원입니다.

아미산 정원과 굴뚝 모습이 독특합니다.















합홍문-경회루로 들어가는 옆문 중 하나



경회루

국보 제224호.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67년(고종 4) 다시 지은 것입니다.

경회루에서 바라본 산등성이가 멋있지요?







하이! 남의 편아^^


고저넉한 궁궐을 거닐며 잠시 여왕이 된 듯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궁궐 너머 보이는 현대식 건물이 어색할 정도로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듯 했습니다.


집옥재

경복궁 건청궁 안에 있는 전각,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쳐를 옮기면서 경복궁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면 청와대가 있습니다.

청와대가 보이지요? 거수 경례를 받았습니다.^^

도로 너머 청와대 - 일요일이어서인지 청와대 앞은 고요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1993년 5월 19일 발명의 날에 청와대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바로 저 문으로 버스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손명순 여사님과 악수를 했어요. 손명순 여사님 손바닥이 비단결처럼 느껴졌던 촉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때는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왜 금했는지...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으면 대통령과 함께 사진도 한 컷 찍었을텐데요.

식탁 앞에 놓여진 청와대 인장이 찍혀진 냅킨 한 장도 귀하게 여겨졌더랬어요. 살짝 핸드백에 넣어서 가지고 온 것이 청와대에 갔더라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발길을 돌려 다시 궁궐 속으로...


건청궁

경복궁 중건이 끝난 지 한 해 뒤인 1873년(고종 10)에 궁궐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자리에 창건되었습니다. 고종은 정부 대신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비밀리에 내탕금으로 건청궁을 짓다 공사 도중 문제가 되어 중지할 것을 요청받기도 하였다고 해요. 그러나 공사가 강행되어 여러 건물이 지어졌으며, 그 뒤 국왕과 왕비의 거처로 이용되거나 외교관 접대의 장소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돌계단 가장자리 태극무늬

아니? 삼부자가 무슨 공부를 저렇게 열씨미?^^ 아들 옆에 놓여진 보냉가방 속에는 음료수와 삶은 감자 6개와 수박 조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너무 너무 더운 휴일날 고궁 구경간다기에 부랴부랴 간식을 챙겨갔건만, 고궁에서는 음식물 반입 불가라고 했습니다.(이 정보는 진짜 몰랐어요.)


휴일날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으니 어디 숲속에 살짝 숨어서라도 수박 한쪽씩은 먹자고 했더니?

두 아들이 펄쩍 뛰며

"엄마, 엄마가 그러시면 되겠어요? 절대로 안됩니다요."

"아이구, 나도 잘 안다만... 저기 저 사람들도 방울 토마토 살짝 먹고 있잖아? 수박 두어 조각만이라도 먹자. 응?"

가방을 빼앗아서 마루에 두더군요.

'무거운 것 들고 다니느라 아들, 수고했어. 엄마가 다시는 무모한 짓 하지 않을게.ㅠㅠ'

관광객이 쪽마루에 걸터 앉아도 되도록 개방해 준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명성황후 시해 장소입니다. (나쁜 일본인....)



자선당 [資善堂] - 현재 건물은 없고 기단과 주춧돌만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하던 경복궁 안의 건물. 조선 문종이 세자 때에 거처한 곳이라고 합니다.

구름이 몰려들어 한줄기 소낙비라도 내려줄줄 알았더니만 끝내 소낙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경복궁 뜨락에서 만난 좀작살나무입니다.


가을이 오면 '우리들의 아름다운 모임'에서 경복궁에 올 예정이기에 식물 관련 사진은 생략했습니다.

우리집 정원에서 자라는 작살나무보다 잎이 작아서 한 컷 찍어보았습니다.


삼부자와 함께 한 경복궁 관람.


불과 두 주일전, 프랑스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고 그 웅장함과 화려함에 놀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양과 서양의 문명 차이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서양의 눈부시고 화려한 궁전과 비유할 수 없는 동양, 우리 나라의 궁전을 돌아본 소감은 가슴 벅찹니다.

서양의 동적인 건축물과 달리 정적인 우리 나라 건축물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안정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서양 것이라고 무조건 동경하고 부러워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이제 세월의 뒤안길로 접어들며 우리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욱더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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