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과 함께 하는 세월
잘 생긴 호박이든 못 생긴 호박이든 호박만 보면 행복하고 가슴이 뜁니다.
결혼 후, 어렵게 살았던 2, 30대 그 시절을 생각해 봅니다. 열 달 20만 원짜리 사글셋방. 부엌 하나, 방 하나인 단칸방에서 생활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꿈을 가지며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꾀부릴 줄도, 얼렁뚱땅 할 줄도 모르고 그냥 우직하게 생활했습니다. 그렇게 어렵던 그 시절엔 왜 그리도 호박 꿈을 많이 꾸었는지...
눈만 감으면 호박이 넝쿨째 품 안에 툭 떨어지는 꿈을 꾸는 겁니다. 밭에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 자라고 있는 모습, 담장 위에 누런 호박이 주렁주렁 얹혀져 있는 모습, 주렁주렁 달린 호박이 넝쿨째 제 품에 툭 떨어지는 꿈, 누런 호박을 품 안에 안고 좋아하다가 눈을 뜨면 꿈인 것입니다. 호박꿈을 꾸고난 아침은 공연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꾼 꿈 이야기를 친정 식구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너는 참 희한한 꿈을 잘도 꾼다. 이다음에 또 그런 꿈을 꾸면 나에게 하나만 팔아라."
그래서 백 원 받고 친정언니에게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꿈 하나, 친정어머니에겐 호박밭에 호박들이 뒹굴뒹굴하는 꿈 하나를 팔기도 했습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지만 사람은 세월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힘든 결혼 생활을 참고 참다 보면 좋을 날이 반드시 오리라.'
힘들 때마다 주문처럼 외우며 살았습니다.
어느덧 눈앞엔 노후가 떡하니 와 있고, 생활 전선에서 동동거렸던 그 시절은 이제 추억으로 되돌아봅니다.
열심히 살아온 덕분, 이젠 주어진 시간을 맘대로 요리하며 여유롭게 보낼 수 있습니다.
탁구공만 한 미니 화초 박입니다. 멀리서 어렵게 구했습니다. 봄 되면 심으려고 씨앗을 갈무리해 두었습니다.
호박씨앗 하나도 그냥 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심고 싶은 씨앗을 얻으려 노력해야만 손에 들어옵니다.
젊은 시절엔 꿈에서 호박을, 나이를 먹어가며 현실에서는 진짜 호박 구덩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참고
위 글은 유한양행 건강의 벗 2022년 11월호에 기재되어 원고료를 받은 작품입니다.
아래 사진은 전원생활을 실천하고부터 넝쿨째 집으로 굴러들어 온 호박들입니다.
http://blog.daum.net/jmh22/17205769
http://blog.daum.net/jmh22/17203137
http://blog.daum.net/jmh22/17202489
http://blog.daum.net/jmh22/17207801
http://blog.daum.net/jmh22/17203858
낮에 '호박이 넝쿨째'라는 말을 검색하다가 호박 정물화를 만났습니다.
'헉?'하고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너무도 사실 같은, 작품 속 호박을 만나고 가슴이 쿵쿵 뜁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왜 이제야 눈에 뜨였는지...
또 작가님 성함을 처음 알게 되었는지...
제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 호박 소재 유화 작품을 소개합니다.
정물화가 진짜 호박인 듯 착각, 또 착각하며 작품에 빠져 들었습니다.
작가 김대섭 작품 blog.daum.net/art6530/
올해 호박 농사지으면 김대섭 작가님의 작품처럼 수확한 호박을 예술적으로 집안에 전시해 보려는 계획을 세워봅니다.
농사지은 호박으로 실물 전시해 볼 계획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날이 풀리는 대로 호박 구덩이 미리 파놓아야겠습니다. 걷기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엔 필히 개똥을 주워서 파놓은 구덩이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구입한 유기농 퇴비도 넉넉히 부어 놓아야겠지요.
올해 심을 종류는 맷돌 호박, 땅콩 호박, 국수 호박, 제주 토종 긴 단호박, 토종 단호박, 단호박, 청송 단호박, 길쭉 호박 등 8가지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 이외에 동아박, 박 두 종류와 미니 화초 호박들도 있습니다.
이 많은 종류의 호박을 심을 땅이요?
농사 지을 땅이라곤 한 평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걱정 없어요. 부지런만 하면 해결됩니다. 집 주변 여기저기 공터를 찾아 호박 심을 장소를 물색해 놓고, 호박 모종을 키웁니다. 5월 되면 호박 구덩이에 잘 심고 가꾸어 주면 가을엔 언제나 호박이 넝쿨째 집안으로 들어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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