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늘 東과 함께 외출하는데 익숙해져 있어 나 혼자서는 서울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다.
'서울 가면 가고 싶은 곳 싸돌아 다니며 아이쇼핑도 하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렇게 생각하니 한 시가 급하다. 이제부터 용기를 내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서울을 다녀보기로 혼자 결심했다. 결심했으면 실천에 옮겨야겠지.
양지에서 남부터미널 가는 버스 시각표를 검색하여 찾았다.
토요일이니 대략 30분마다 버스가 있었다. 열 시 버스를 타기로 하고 9시 50분에 정류장에 갔더니 버스 출발이 10시 10분이었다. 서울 가려는 승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9시 40분에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양지에서는 빈자리가 없어 그냥 떠났다며 한 시간째 기다리는 승객도 있었다.
드디어 10시 10분 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만차였다. 빈좌석 한 개만 남아 있어 한 사람만 승차하고 버스는 바로 떠나 버렸다.
'이런? 그럼 나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상과 달리 10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내 차례 앞에서 버스가 끊어질까 속으로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줄 선 사람들 대부분 다 승차했고, 나도 무사히 승차했다. 뒷좌석이지만 이 얼마나 고마운지...
버스를 타자마다 나도 모르게 꿈나라로 직행했다. 꿈결에 '남부 터미널 도착 예정이니 하차 준비하라.'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승객에 떠밀려 출구로 빠져나왔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혼자 어리둥절해 있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참하게 생긴 미스 한 분이 내 목적지를 물어보더니 지하철 타는 곳까지 함께 가자고 했다.
터미널에서 빠져나와 2분 정도 걸으니 사거리가 나타났다. 지하도를 걸어서 내려가지 말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고 했다.
지하철 타러가는 엘리베이터가 바로 도착했다. 2분 정도 기다려 지하철을 탔고 두 정거장째 내렸다.
지인 서울 토박이 혜성씨가 1, 2, 7, 8 출구가 적힌 곳으로 빠져나오면 목적지인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이라고 톡을 보내왔다. 화살표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혜성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입성을 축하한다며 점심부터 먹으러 가자고 했다.
혜성씨가 안내한 곳은 신세계백화 강남점 평양면옥 음식점이다. 아직 12시가 되려면 좀 남았는데 벌써부터 좌석에 손님이 가득이다.
혜성씨는 전통평양냉면, 나는 전통평양비빔냉면을 주문했다.
냉면을 기다릴 동안 혜성씨가 슬로바키아 밀라 Mila라는 과자 두 개를 건네주었다. 이름이 참 어여쁘다. Mila는 Milica의 애칭으로, '정감 있는', '사랑스러운'을 뜻한다고 하는데 내용물도 과자 이름도 우리나라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을 연상시킨다.
음식점 차창에 앉아서 바깥을 내려다보니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물이 보인다. 건물 아래층에는 의류 도매상가 아동 신사 숙녀복 등등의 간판이 붙여져 있다.
평양비빔냉면과 평양냉면이 나왔다.
소고기 수육 한 점과 돼지고기 수육 한 점, 삶은 달걀 반 개를 고명으로 얹어 놓았다.
새콤달콤한 깍두기와 배추물김치, 삼삼하니 맛이 깔끔했다.
따끈한 육수로 목을 적신 후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었다. 냉면 식감이 아주 부드러워 입 속에서 툭툭 잘도 끊어졌다. 좀 이른 시간에 들어간 덕분, 시간을 구애받지 않고 느긋이 먹어서 참 좋았다.
'아참, 혜성씨, 서울 나들이 축하 기념으로 사준 냉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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