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0일 일요일
지난 여름 이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첫 느낌은 "산발한 머리같은 정원"이었다. 살지 않고 버려두다시피한 집이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집을 팔려고 하면 외부라도 좀 손질을 해 두지. 무릎 높이로 자란 잔디와 마당까지 벋어서 제멋대로 자란 칡덩굴, 단지내 관리인도 마당에 들어와보고 놀랐는지 잔디 깎는 기계를 들고 와서 마당의 잔디를 깎아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는 이 집을 꼭 사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는데...
아침 먹고 마당에 나와서 정원을 손질했다. 전지 가위를 들고 화단 전면과 담장 왼쪽, 오른쪽 연산홍, 자산홍들을 전지했다. 대문 양옆의 소나무 아래 바위 주변의 잡풀과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을 잘랐다. 소나무와 산수유 가지가 서로 뒤엉켜 자라는 곳을 전지하여 각각의 특색을 구분지었다. 담장 사이로 삐죽삐죽 얼키고 설키며 자란 연산홍 가지들을 전지하고 나니 옥색칠을 한 철담장이 보기좋게 잘 드러났다.
현관앞 해당화. 회양목, 조릿대, 자두나무, 대추나무를 전지했다. 단풍나무, 모과나무, 자귀나무는 봄이 되어 잘 자라는가 관찰한 다음, 수형에 맞게 전지해 주기로 하고 대충대충했다. 내 평생 전지를 처음 해보는데 전지하는 방법은 내가 나무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나무라면 이렇게 가지를 벋을 거야. 내가 벋으려고 하니 저 나뭇가지 때문에 불편하네? '
그러면 답이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며 잘라나갔다.
자르다보니 점심 시간도 잊어버려 오후 세 시에 먹었다.
東은 아침먹고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위 물받침대에 쌓인 낙엽을 긁어내는 작업을 하였다. 누가 더 힘들고 피곤한가 생색낼 것도 없다. 각자가 힘든 작업이고, 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니...
지붕은 훤해졌을 것이고, 마당은 담장이 훤해졌고, 산발한 것 같았던 나무들이 깡충해진 만큼 기분이 상큼해졌으니...
오후 5시, 뒷마당 담장을 호위하듯 줄지어 이층 높이 보다 더 높게 제멋대로 자란 중국단풍나무들을 잘랐다. 나는 나뭇가지를 잡아 주고 東은 톱으로 잘랐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같이 작업을 하니 수월했다. 내친 김에 뒷담에 맞닿은 동산에 올라가 잡목을 잘랐다. 봄이 되면 뒷동산에 더덕, 도라지, 산나물, 그리고 각종 산야초를 심으면 되겠다.
저녁을 먹으며 창밖으로 뒷동산을 바라보았다. 우리집 정원과 마찬가지로 훨씬 깔끔하고 멋있어졌다. 오늘 종일 전지를 하며 생각했다. 이렇게 한겨울에 잠든 나무들을 건드려도 되나? 우리 아파트에서는 보통 2월에 전지를 하던데...
집 앞과 뒷마당에 서 있는 가로등 덕분에 한밤에도 전깃불을 켜지 않고도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 내일은 또 무엇부터 손을 댈까? 사방 천지가 할 일 뿐이지만, 자청해서 하는 일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겠지? 전원주택에 살려고 한 것부터가 일을 선택한 것이니 일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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