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2일 화요일 비 온 후 흐림
새벽 0시 3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오전 내내 추절추절 비가 내렸다. 텃밭 작물이 며칠 쨍하니 해가 났다고 시들시들하였는데, 비 덕분에 생기가 되살아났다. 식전에 방울토마토를 따면서 모기에게 많이도 물렸다. 귀찮아서 모기방지옷을 입지 않은 탓이다. 자꾸 물리다보니 가렵게 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모기에게 물렸을 때는 샤워를 하고 곧바로 물린 자국을 찾아 물파스나 "버물리"라는 파스를 몇 번 바르면 가려운 곳이 가라앉는다.
아침 먹고 어머니와 한 시간 정도 동네를 산책하며 구경을 시켜 드렸다.
"정말 좋은 동네구나. 니가 열심히 살았으니 이런 집을 샀다. 나도 이런 곳에 살고 싶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우리가 산 집과 동네를 흡족해 하셨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호미를 들어 잔디밭의 잡초를 뽑았다. 東은 어제 조약돌을 다 파낸 통로에 뒷마당의 흙을 가져다 부어 돋우었다. 여섯 바스켓을 부었을 때 비가 좀 많이 내렸다.
"일하는 것 하늘이 말리잖아. 그만하고 집안으로 들어가지."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하는 동안, 東은 자기 방에서 세팍타크로를 응용해서 미니죽부인을 만들어 "선물"하면서 나에게 내밀었다. 세팍타크로는 말레이시아어로 "차다"는 뜻의 "세팍"과 "공"을 뜻하는 "타크로"의 합성어이다. 대나무가 아니니 노끈부인이 아닌감?
점심 먹고 농협에 가서 파종할 씨앗(당근, 파슬리, 적상추, 무, 배추 다섯 가지 15,000원)을 산 후, 와우정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사전 정보를 대충 읽어보고,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아갔다. 와우정사는 약 천삼백년전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신라인들이 불력으로 황룡사를 창건했듯이, 오늘날 우리 칠천만 온겨례의 숙원인 남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한국 최초로 대불사를 시작한, 호국불교의 도량이라고 한다.
평일이어서 그런가? 절간같이 조용하다더니 연화산 속의 산에 둘러싸인 와우정사는 정말 조용했다. 아니 와우정사 경내를 다 둘러 볼 동안 스님의 독경 소리 "나무관세음보살"이 구성지게 이어졌다. 비탈진 경내를 오르는 동안 "나무관세음보살"이 끊임없이 들리니까 나도 모르게 "나무관세음보살"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은 왜 그 소리만 계속 독경하실까?
입구에 돌탑 위 부처님 머리만 덜렁 올려 논 모습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경북 영주 소백산 가는 중부 내륙 고속도로 변에도 그런 부처 탑이 있던데, 왜 그런 모습으로 세운 걸까? 불교에 문외한인 나는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알고 보니 21세기에 완성될 높이 약250척의 대 석가모니 입상을 조성중인데 우선 머리부터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다 완성하면 108m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놀랍기만 하다.
조성 중인 대불
대불 앞 세계 각국에서 온 일만 불 부처상을 바라보시며 어머니는 무엇을 소원하고 계실까?
연못에 비친 대불
와우정사 입구에 있는 지붕이 독특한 찻집
찻집 앞 정원에 핀 능소화와 단풍나무
찻집 앞 백색 수국? 라일락?
대불상 앞 한가하게 헤엄치는 잉어 떼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불상
눈빛과 단아한 입매, 곧은 콧날이 꼭 살아있는 분의 모습 같은...
옆모습이 단아한 대불상
대불상을 지나 언덕을 오르니 종무소가 보였다. 종무소 입구 가운데 누렁이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보통 개들은 사람을 보면 짖거나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지 않으면, 무조건 꼬리를 흔드는데, 이 녀석은 이 세상 모든 일을 달관(?)했나? 자는 것도 아니고 귀를 쫑긋 세운 채 눈을 감고 몸만 한번씩 뒤척이며 어머니와 내가 개 옆을 지나가도 고개도 안들었다.
불교도들이 가져다 놓은 각양각색의 조그마한 부처상과 동자승
돌 하나 하나를 정교하게 붙여 쌓은 돌탑
돌탑 오름길
언덕 위로 오르면 계곡물 흘러가는 왼편에 쌓아놓은 돌탑들이 도열하고 있다.
전국 사찰의 큰스님들과 신도들이 가져온 돌로, 한층 한층 불심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통일의 탑” 이러고 한다. 제가끔으로 생긴 돌 하나하나를 모아 조각모음 하듯 알맞게 배열하여 붙여서 만든 통일 탑들을 보니 전국에서 가져온 돌로 탑을 쌓은 신도들의 정성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저렇게 탑들을 쌓자면 얼마나 많은 신도들이 가져왔을까?
황동팔만근(黃銅八萬斤)을 들여 10년 세월을 통해 조성했다는 “장육존상 오존불” 석가모니 부처님, 비로자나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님은 아직도 비바람을 맞으며 노지에 세워져 있다. 언젠가는 대웅전이 여기에 조성된다고 한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종.
신라인의 호국가람 황룡사의 종과 같은 뜻으로 조성된 국내최대의 황금범종(黃金梵鐘) "통일의 종"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온 불상
오백나한전. 돌 속에 오백 나한을 조각하여 병풍처럼 층계로 둘러싼 가운데, 부처상이 오른손을 얼굴에 괸 모습으로 누워있다.
오른팔을 머리에 괴고 누운 모습이 한가롭게 보여 구경하는 나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장모와 막내 사위는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아흔 되신 어머니가 오르막으로 된 경내를 한 바퀴 도는 것은 무리이다. 그래도 등산용 지팡이를 짚으시고 오백나한이 있는 경내 끝까지 올라오셨다. 오백나한전 위로도 길이 있어 올라가니, 경내에서 벗어나는 길인가? 아직 덜 조성한 길인가? 시멘트 도로가 끝나고 흙길로 된 길을 조금만 걷다가 되돌아 나왔다. 어느새 독경 소리가 뚝 그쳤다. 저녁 공양 시간이어서 그친 것 아닌가? 東이 천연스럽게 말했다. 오백나한전 뒤로 난 길을 돌아 내려갔다.
사람들은 무슨 소원을 빌며 저렇게 돌탑을 쌓았을까?
열반 전으로 가는 길
번뇌만상이 완전하게 소멸된 모습으로 누워계시는 부처님
인도에서 가져온 통 향나무로 조각했다는 열반하신 부처님의 모습
어머니를 위해 와불 전 앞 소원 촛불에 불을 켜 드리고
초가 넘어지려 해서
촛농을 떨어뜨리고
어머니는 합장을 하시고 무엇을 소원하고 계실까? 어머니 젊은 시절, 대구 봉산동 살 적에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이면 밤 열 두시에 출발하여 걸어서 새벽 4시에 팔공산 갓바위에 도착하여 촛불을 밝히고 소원을 빌으셨던 어머니. 어머니에게 살짝 여쭈어 보았다.
"엄마, 뭐 소원했어요?"
"내 죽을 때 잠자듯이 가게 해 달라고 빌었지 뭐."
그 옛날 젊었을 때의 어머니 소원은 그게 아니셨다. 어머니의 이 한 마디를 듣는 순간 갑자기 숙연해졌다.
내려갈 때는 그냥 천천히 걸어내려 가신다는 어머니를 절 아래 주차장까지 東이 업고 내려왔다. (고맙습니다)
용인시 속의 연화산과 와우정사 위치
지산리조트 도로변에 차를 잠시 멈추고 우리 마을을 찾아보았다. 이층에서 보면 리조트 길로 승용차가 다니는 것이 보이니. 언덕에 서면 우리 집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늘 궁금했는데, 산 속 저멀리 동네와 우리 집, 집 너머에 자리 잡은 루아르벨리 단지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잣나무 사이로 바라본 우리 집 찾기
우리 집 모습이 뚜렷한 숲 속에 있는 우리 마을 - 보이는 공장도 전원마을 예정
뒤쪽 루아르벨리 마을, 앞쪽 왼쪽부터 발트하우스 마을, 해오름 마을, 오크빌 마을, 회인힐 마을, 문 닫은 철강공장
줌인하여 좀 더 가까이서 본 왼쪽 한창 조성 중인 벨리타하우스, 가운데 우리 집이 있는 마을,
저녁 먹고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살아온 지난날들이 어제 일같이 떠오른다.
“니가 그렇게 열심히 살더니, 이런 집에 살 수 있지. 그 곱던 손이 이렇게 거칠어졌구나. 그 곱던 발도 이렇게 거칠어졌구나.”
하시며 내 손과 발을 만지셨다.
손과 발을 슬며시 거두어들이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도 참, 곱던 손도 세월이 흐르면 엄마처럼 되는 거지, 몇 년 전부터는 내가 손가락 아프다고 대신 김 서방이 집안일 많이 도와주잖아요. 편히 주무세요.”
하루하루가 모이고 모여 세월을 만든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건강하고 보람 있게 사는 삶이야말로 가장 값진 세월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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