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츠빌링(Zwilling 쌍둥이)헨켈 칼1의 장점은 오랫동안 쓰더라도 쉽게 칼날이 무뎌지지 않는다고 해서 주부들 사이에 인기가 있잖아요? 십 몇 년 전 큰 맘 먹고 별 다섯개짜리 헨켈 칼 세트를 구입했습니다.
거금 들인 칼을 사용하면 요리가 절로 될 것 같았습니다. 십 여년동안 기분좋게 사용했어요. 아무리 좋은 칼이라도 오래 쓰니 칼날이 서서히 무디어져서 언젠가부터는 반찬을 만드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손목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문득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 키워주며 집안 살림 해 주셨을 때 사용하셨던 식칼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쓰는 가벼운 칼은 두고 왜 저리 투박하고 무거운 칼을 쓸까? 그 당시 저는 그런 엄마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더랬어요.
뒷베란다에 가서 신문지에 둘둘 말린 식칼을 찾아서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무로 된 손잡이는 닳아서 모양도 일그러진 투박한 칼을 보니 문득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이 칼은 내가 젊었을 때 산 것이다. 이 칼로 너거 형제들 클 때 반찬해서 다 먹여 키운 칼이다. 단단한 것 자를 때 잘 잘라진다. 이 칼 버리지 말고 나중 사용해 봐라."
숫돌을 찾아서 칼날을 갈아 고추를 썰어보았습니다.
손목에 힘 하나 들어가지 않고 아주 쉽게 잘 썰렸습니다.
무채도 일정한 크기로 척척척...
'어머나? 이 칼, 너무 너무 신기해.'
그때부터 헨켈 대신 무쇠칼 애용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몇 달 즐겁게 잘 사용하던 중 그만 지난 여름 어느날, 손잡이가 빠져버렸습니다.
東에게 손잡이를 고쳐달라고 칼을 내밀었습니다.
"그거 못고친다. 버리고 좋은 칼 다시 사지?"
"그럼 대장간에 가서 고쳐 달라고 하면 안될까요?"
"요새 대장간이 어디에 있노? 고치려 애쓰지 말고 버려."
너무도 쉽게 버리라는 東의 말이 야속했습니다.
나에게 몇 달 사랑받던 엄마의 식칼은 다시 신문지에 쌓여서 싱크대에 갇혔습니다.
보름전 용인 장날, 칼을 들고 장에 갔습니다. 상인들에게 대장간을 물어보았습니다.
"요새 대장간이 어디 있어요? 그냥 칼 한 자루 사세요."
"용인에는 없고 이천 가면 있을라나?"
칼 자루 고치러 갔다가 반찬만 사왔습니다.
설날, 친정에 갈 때 칼을 들고 가서 엄마에게 보여 드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 칼 사용해보니 너무 좋던데... 이렇게 칼 자루가 그만 빠져 버렸어요. 대장간이 어디에 있으면 고치려고..."
"요새 대장간이 어디에 있노? 칼 버려라마."
"엄마도 버리라 하네? 버리기는? 대장간 찾아보면 어디엔가 있겠지뭐."
친정 엄마는 대장간이 어디에 있는지 혹 알고 고쳐 주시려나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만 했습니다.
다시 신문지에 칼을 말아서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오늘 문득 용인장날 어느 상인이 한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인터넷으로 이천장날을 검색하니 2, 7날이었습니다. 식칼을 가방에 넣고 이천장을 찾아나섰습니다.
오전에 눈이 온 탓인지 이천장이 썰렁했습니다.
반찬을 구입하며 상인들마다 물어보았지만
"요새 대장간이 어디에 있겠어요?"
"이천장에는 있다는 말 못들었습니다."
"시골장에 가면 있으려나?"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대답하더라구요.
시장을 벗어나서 편의점에 들어가서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이 근처에 대장간 없습니까?"
"대장간요? 아, 있어요. 이 큰 길을 지나서 죽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구부러지면 병원이 보일 거여요. 병원 옆에 있습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죄송합니다만, 이천은 초행길이어서... 약도 좀 그려 주실 수 있겠어요?"
편의점 사장님은 바쁜 와중에도 친절히 약도까지 그려 주셨습니다.
이천 시장에서 얼마 멀지 않는 곳에 대장간이 거짓말처럼 나타났습니다.
반가운 대장간 간판이 보입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대장간을 상상한 것과는 판이할 밖에요.
대장간도 어엿한 현대식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대장간 문을 열고 들어가니 뜨거운 불아궁이 앞에 주인이 앉아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 칼 자루 수리하러 왔어요. 친정 엄마 연세가 올해 아흔 넷인데요, 친정 엄마가 젊은 시절부터 쓰신 것이어서 버릴 수가 없어서... 고치면 사용할 수 있을까요?"
오래 오래 사용해서 손잡이가 빠져버린 엄마의 식칼
닳고닳은 식칼 손잡이
대장간 사장님은 웃으시며 칼을 받아서 불 아궁이로 가서 칼 손잡이 만들 쇠를 달구시더군요.
손잡이가 짧아서 무쇠 손잡이를 더 잇대어 붙입니다.
다시 불에 달구어서 망치로 쇠를 두들겨 붙이는 작업을 하시는 모습
.
사장님이 열심히 작업 할 동안 저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유년 시절 기억인 벌겋게 단 아궁이와 황토벽에 호미랑 삽, 곡괭이가 걸려있던 풍경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대장간도 현대식으로 바뀌었군요.
가게는 발 디딜 틈 없이 각종 농기구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춥다고 전기난로도 켜주고 낡은 의자위에 신문지도 깔아주며 앉아서 기다리라며 친절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장님이 만든 무쇠 식칼
아직도 이런 칼을 만들고, 이런 칼을 사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만들어 놓은 칼들
삼 십 여분만에 제 맘에 쏙 들게 만들어 주신 일흔 한 살이신 사장님.
손잡이 끼운 삯이 겨우 삼천원이었습니다. 이천원짜리 잡초 뽑는 호미도 하나 구입한 후 작별했습니다.
명함을 한 장 얻었습니다.
요즘도 이렇게 대장간을 하고 계시는 사장님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혹 대장간에 갈 일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여기 소개 드립니다.
(저처럼 대장간 찾아헤매는 시간을 줄이시라고요. 전국에서 일거리가 밀려든대요.)
경기도 이천시 중리동, 과거와 이어진 현대의 대장간 철물.
제가 사용하던 쌍둥이Zwilling 파이브 스타
칼은 무거울수록 칼의 무게를 이용하여 힘들이지 않고 재료를 가지런하게 썰기 쉽다는 그 단순한 이치를 뒤늦게 깨닫고, 친정 엄마가 한 평생을 쓰셨던 그 칼을 다시 만나게 해 준 대장간 사장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끼며 이 기록을 남깁니다
친정 엄마가 한 평생 사용하던 식칼을 다시 찾은 제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듯 합니다. 칼날이 무디어지면 마당에 나가 숫돌에 썩썩 갈아서 저랑 함께 오래오래 사용할 것입니다.
한 가지 걱정이 있긴 하군요. 사용하다가 언젠가 또 손잡이가 부러지거나 빠지면 다시 대장간을 찾아가면 되겠지요? 대장간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까? 그것만이 남은 과제인 것 같습니다.
- 물건을 자르는 성능은 좋지만 위생적이지 않은 무쇠칼과, 위생적이지만 절삭력이 약한 스테인리스칼을 배합하는 기술을 최초로 상용화했다. 위생을 고려해 세균이 번식할 틈이 없도록 칼자루와 손잡이의 접합면을 처음으로 제거한 것도 헨켈이다. 또 장기간 칼을 쓰더라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피로를 느끼지 않도록 주방용 칼에 인체공학 디자인을 적극 접목했다. 1995년에는 따로 갈지 않아도 되는 칼인 ‘트윈스타’ 시리즈를 발매했다. 이 칼은 발매 후 독일 등 유럽의 고급 주방용 칼 시장의 40%, 캐나다 시장의 50%를 차지하며 헨켈의 대표 모델이 됐다. [본문으로]
'마음 탐사 mind exploration > 가족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 드립니다. (2) | 2012.07.27 |
---|---|
또 놀라지 마세요? 자식 농사는 끝이 없습니다. (2) | 2012.07.25 |
언니 친정 엄마? (2) | 2012.03.30 |
92세 친정엄마가 차려놓으신 저녁 밥상 (2) | 2010.11.30 |
친정엄마와 와우정사 다녀오다 (2) | 2008.08.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