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
2010년 11월 23일 화 맑음
퇴근하고 아파트에 차를 주차시키려는데 휴대폰이 울립니다.
"엄마다. 오늘 온다더니 아직 퇴근 안했나?"
"아이 참, 엄마. 또 종일 기다렸지? 아파트에 들렀다가 갈게요."
집에 가서 친정어머니에게 드릴 것 몇 가지를 챙겨서 남편과 부리나케 친정으로 갔습니다.
도착하니 대문을 활짝 열어두었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저녁밥부터 먹으라고 합니다.
조그마한 밥상에 차려진 저녁상.
"엄마, 제발 밥상 좀 차려 놓지 마, 엄마랑 맛있는 것 사 먹으러 가면 될 텐데..."
"힘들게 돈 벌어서 뭐할라고 비싼 밥 사 먹노? 김서방, 배고프제? 얼른 씻고 밥 먹어라."
그러시면서 데워놓은 국을 다시 데우신다며 가스레인지에 불을 켭니다.
대문 옆에는 이웃집 마당에서 자라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친정집 마당에도 은행알이 떨어집니다. 매년 두 되 정도는 줍는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오면 그 은행을 까서 밥 위에 얹고, 마당 한 귀퉁이에 심어서 딴 콩을 얹어 밥을 해 주십니다.
미나리를 넣은 명태포 초무침, 어렸을 때부터 제가 제일 좋아했던 반찬입니다.
학창 시절 도시락 위에 가끔씩 계란 프라이를 덮어주면 좋아했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이젠 콜레스테롤 걱정으로 계란을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을 친정 엄마는 모릅니다.
시금치무침
화단에 심어서 키운 배추로 담은 김치가 너무 익었습니다. 아직 언니들이 김장을 하지 않았나 봐요. ^^;;
화단에 있던 국화랑 대추나무, 앵두나무는 캐어서 우리 집에 가져가라고 하시고선 그 자리에 배추, 무, 상추, 고추, 파 등을 조금씩 키우십니다. 자라면서 보고 배운 친정 엄마의 근면성을 저도 쏙 빼닮았습니다,
화단에 심어 놓은 가을 상추, 아직도 생생하니 잘 자라고 있었어요.
무청으로 시래깃국을 끓여 놓았습니다. 오리고기도 구워서 프라이팬 째로 판 위에 놓아주었습니다.
반백이 넘은 막내 사위가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김서방, 밥 더 먹어라. 밥 많이 해 놓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 말씀에 김서방은 대답합니다.
"예, 장모님,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우리 내외가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는 밥도 드시지 않으십니다.
"양지 오르락내리락하느라 피곤해서 자주 못 오는 줄 다 알지만 그래도 자꾸 기다려진다. 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엄마가 이해해 줘서 고마워. 김서방도 나도 요즘 많이 피곤했어."
어머니가 끓여서 드시는 물
"니가 가져다준 칡뿌리랑 느릅나무, 결명자, 인동덩굴, 차조기 씨앗, 더덕 줄기잎, 옥수수를 넣고 끓여 먹는다. 니 덕분에 난 생수 안 먹고 이렇게 물을 늘 끓여서 먹는다. 물맛 좋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설거지를 하려고 하니 오늘도 펄쩍 뜁니다.
"나는 종일 집에서 노는데 설거지 하는 것이 뭐 일이가? 밖에서 일하는 니가 고생이제. 내가 할 일이 뭐가 있노? 니 가고 나서 설겆이 천천히 하면 된다."
몇 시간 앉아 있지도 못하고 일어났습니다.
"내일 또 출근해야제? 얼른 가거라."
대문 밖 차 세워진 곳까지 따라 나오셔서 눈물을 글썽입니다.
"조심해서 잘 가거래이."
손사래 치는 엄마를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떠나왔습니다.
친정 엄마는 몇십 년째 음식점 하는 큰며느리에게 짐이 될까 봐, 음식점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불편을 줄까 봐 작은 오빠가 마당이 있는 주택을 구입해 놓은 그곳에 계신지 오 년째입니다. 친정 언니들이 번갈아가며 드나듭니다.
우리 형제들이 가져다준 선물 중 가장 좋은 것은 큰며느리에게 아낌없이 다 가져다주는 친정 엄마가 좋습니다. 화단을 텃밭으로 만들어서 거기에서 수확되는 것이 비록 손바닥만 하더라도 제일 좋은 것을 뽑아서 다듬어 가방에 넣고 버스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서 큰며느리에게 가져다주시는 엄마 마음이 너무 좋습니다. 언제 물어도 딸들보다 며느리가 더 좋다는 친정 엄마에게 삐친 척 하지만 솔직한 엄마가 너무 좋습니다.
"엄마다. 직장 생활 잘하고 있나? 김서방은 잘 있나? 아이들도 잘 있제?"
하시며 가끔씩 휴대폰으로 전화해 주시는 친정 엄마가 너무 좋습니다.
나에게는 아직도 이렇게 정정하신 친정어머니가 계셔주셔서 매일 감사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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