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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처럼 향기롭게, 나무처럼 튼튼히!
식물 탐사 Plant Exploration/정원 수목

자기나무? 자귀나무

by Asparagus 2008.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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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 자귀나무 한 그루 - 어느 초여름날, 삼덕성당에 가는 도중, 화려한 꽃술들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 나무를 처음 만났던 삼덕동 2가. 어느 주택 정원의 공작나무(이름을 그렇게 붙이고 늘 기억)를 본 순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 내 나이 열일곱. 그때부터 '먼 훗날 저택에 살게 된다면 가장 먼저 심어야겠다'라고 생각한 공작 꼬리 같은 꽃을 피우는 나무-가 전원주택 동편 마당에 자리 잡고 있다.

 

자귀나무를 볼 적마다 먼 옛날, 하얀 칼라를 단 청색 교복을 입은 여고 1학년 모습인 나 자신이 되돌아보인다.

꿈 많았던 그때. 지금 와 생각하니, 꿈은 꿈꾸는 자에게는 언젠가는 찾아오는 것이 맞는 가보다.

17살 때 만났던 자귀나무보다 칠 년이나 더 먼저 만난, 소꿉친구 東이 지금까지도 나랑 소꿉장난(?)을 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그가 청년 때 들려주었던 장자 이야기 중

"본시 내가 나비인데,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人生史一場春夢.  

 

 

 

 

 

 공작 꼬리, 아니 새깃털 같은 꽃송이들

 

 

♣ 자귀나무 꽃말 : 부부금슬

 

자귀나무를 다른 말로 합환목이라 한다. 합환피는 자귀나무의 껍질을 말린 것이다. 봄, 가을에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려 강장, 흥분, 이뇨, 구중, 진해, 진통에 사용한다. 잎의 떫고 쓴맛을 우려내고 먹으면 五臟을 안정시키고, 氣를 부드럽게 하며, 기쁨을 준다고 한다.

 

자귀나무를 정원에 심어두면 사람의 노여움을 제거하고, 부부금슬이 좋아진다고 한다. 자귀나무는 낮에 꽃이 피고, 밤이 되면 잎이 닫혀서 잠자는 것과 같은 모양을 하므로 합환(合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A silk-tree: The silk tree is a tree which folds its leaves at night.

* 금슬 琴瑟 :[거문고와 비파] a Korean harp and a Korean lute

 

 

♣ 자귀나무에 관한 단상

 

(글 쓴 날 : 2001년 6월 21일. 밤 아홉 시 사십삼 분)

아침에 출근하며 아파트 담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자귀나무 옆에 차를 세웠다. 전지가위로 담벼락 뒤로 난 가지 하나를 잘랐다. 이유는 학교에 들고 가서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그랬다. 마침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 한 명이 지나가다가 나를 보았다. 도둑놈이 제 발 저리다고 나는 그 아이 보기 민망했다.


변명이랍시고 한 것이

"얘야! 안녕? 나는 이것을 관찰하려고 엄마 나무에게 지장을 안 주고 오히려 엄마 나무가 잘 자라라고 하나 꺾은 거야."


아이는 내 이야기에 흥미가 없다는 듯이, 아니 숫제 내가 저지른 행위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는데?' 하는 표정으로, 오히려 눈이 둥그레져서 나를 보더니 "괜찮아요!" 한 마디 하고 가던 길로 그냥 갔다.


어느 틈에 활짝 피어나 나를 반겨주는, 공작의 꼬리들을 달고 있는 듯한 이 한 무리 꽃들. 부부 금슬이 좋아지려면 물론 당사자들끼리 늘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합환 목을 집안에 한 그루 심어 놓으면 부부 금슬이 좋아진다고 한다. 여느 나뭇잎과 같이 낮에는 활짝 펼쳐 든 잎사귀들이 나란히 피었다가 밤이 되면 정말 신기하게도 마주 펼친 그 잎사귀들, 서로 대칭을 이루던 잎들이 완벽하게 하나의 반쪽짜리 같은 형상으로 합쳐지는 것을 보면 싸우던 부부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말 못 하는 나뭇잎도 저렇게 밤마다 사이좋게 지내는데, 하물며 사람인 우리들이 왜 싸우지?' 그러니 자연 부부의 의도 좋아질 것도 같다.

 

아무튼 저녁이면 서로 붙는 나뭇잎은 동물들처럼, 아니 사람들처럼 신경 세포가 있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아닐까? 어떻게 잎사귀들이 서로 마주 붙어 버린단 말인가?


자귀나무랑 습성이 비슷한, 마주 난 잎이 해가 사라지면 서로 붙는 일 년 초 식물이 있다. 이름은 미모사이다. 그러나 이 미모사라는 식물은 누가 제 몸을 조금만 건드리면 용케 알고 그만 제 줄기도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죽는시늉을 한다. 마주 난 잎사귀들도 서로 딱 붙어 버린다. 그리고 제 몸을 최대한 땅 아래로 쳐지게 하고 늘어 쓰려서 시든 식물로 보이게 하는 신기하고도 신비로운 식물이다.


피는 꽃의 시기는 다르지만 - 8월에서 9월에 핀다― 이 자귀나무의 꽃이랑 모양과 색깔이 거의 비슷하다. 연보라이면서 비단 수실을 한 묶음 묶어 놓은 듯, 아니, 공작이 제 꼬리를 화들짝 펼쳐 제 짝에게 구경시키듯, 그런 형상으로 이 세상을 유혹하고 있다.


자귀나무도 미모사만큼 신경이 둔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자귀나무도 미모사처럼 누가 조금만 건드린다면 제 가지들과 잎들을 모두 땅에 늘어뜨리고 죽은 시늉을 한다 하자.


그러면 사람들에게, 동물들에게, 다른 주변의 식물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줄 것인가? 미모사처럼 작은 덩치가 아닌 백 배, 천 배가 더 큰 수목이 땅을 온통 차지하며 누워 있다고 생각해 보라!


숲 속의 동물들이야

'아니? 이게 웬 떡?'

하며 잎사귀들을 마구 뜯어먹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자귀나무 아래에서 살아가는 조그마한 들꽃, 들풀들은 그 덩치 큰 나무에 치여, 깔려 지레 죽어 버릴 것이다.


또한 우리 사람들은? "아니? 이 나무가 어찌 되었나? 나쁜 습성을 가져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를 주네? 차라리 이 나무 잘라 버리고, 다른 수목으로 대처할까?' 이렇게 되지 않을까 말이다.


자귀나무는 이러한 인간들의 심리까지 파악하여 제 몸을 알아서 도사리는 것이리라. 그러면서, 잎만 그것도 밤에 딱 붙어 자신의 존재가 미약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 모두에게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러니 식물이 말을 못 한다고, 함부로 대할 것인가?


나는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수목을 내 마음대로 가져다 심을 수 없고, 또 심겨진 수목들에게 일일이 내가 직접 물을 줄 필요가 없다. 한 달 전부터 가물다가 그저께 이틀 동안 온 비덕분에 아파트 안에 심겨진 수목들은 밝고, 건강하게 우리 사람들을 보고 있다. 그리고 말없이 자라고 있다. 자귀나무 역시 줄 지어 자라며 이렇게 때가 되니,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 유 월 스무 하룻날이니, 앞으로 자귀나무는 7월까지 꽃이 피어날 것이다.

낮에는 그리워하지만 밤이 되면 서로서로 잎을 붙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귀나무의 사랑법을 이 세상 부부들이 닮고 싶어 이름도 합환목이라 하고, 꽃말도 부부금슬이라고 지은 것일까?


자귀 나뭇잎은 마치 아카시아 나뭇잎과 거의 흡사하다. 자귀나무 꽃을 보며 출근하며, 오늘은 뭔가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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