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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탐사 treasure exploration/국내 여행

친정 고향 솔밭 종가 - 만취당

by Asparagus 201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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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당  晩翠堂 

고향에 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자리잡고 반겨 주는 대종가 만취당이 있다. 

영천시 문화재로 등록된, 조상의 얼이 깃든 오래 된 기와집 한옥이다. 

 

<만취당 소개> 

만취당은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에 위치한다.

만취당이 위치한 오계동은 창녕 조씨의 씨족마을로 비교적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만취당은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曺學臣; 1932~1780)에 의해 1781년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만취당은 큰사랑채(만취당), 중사랑채, 새사랑채(光明軒), 안채, 사당, 별묘(체천위 별묘),

재실(報本齋) 및 마구간채, 행랑채 등 여러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진다.

만취당은 한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모여서 하나의 주거공간으로

통합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조선 후기 한옥이다.

 

체천위 별묘(遞遷位 別廟): 체천이란 제사를 모실 장손의 대가 끊긴 신주를

4대 이내의 자손들 중 가장 항렬이 높은 사람의 집으로 옮기는 일을 말한다.

체천위 별묘는 그렇게 옮겨온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다.   

 

 

 

 마을길에서 본 전경

만취당이라는 당호가 붙은 큰사랑채

 

 

 

 

 

큰사랑채. 방과 마루를 사분합문으로

구획하고 있다.

 새사랑채, 광명헌
 

 

 
 ㄷ자형의 안채와 안마당  안대청
 

 

 
 안채의 퇴공간  

큰사랑채 뒤로 보이는 사당

 

 

 
 안채, 세 겹의 창호 구성  보본재(報本齋)라고 불리는 재실의 대들보에서 나무의 물성을 느낄 수 있다.

 

만취당은 조선 선조 때 성리학자인 지산(芝山)조호익(曺好益) 선생의 7세손이며 정조5년(1781년)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曺學臣, 1732~1800) 선생이 살던 집으로 만취당은 사랑채에 붙인 이름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은 주택에도 영향을 미쳐 한 집안 내에서도 남녀의 처소를 안채와 사랑채로 분리하였으며 조상에 대한 제례를 중시하여 사당을 갖추도록 하였다.


이 집은 안채와 중사랑채 및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사당 뒤쪽에는 신주를 모셔다 제사드리는 별묘(別廟) 및 보본재(報本齋) 등이 배치되어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집 뒤의 마을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은 선생이 손수 심어 이루어낸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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