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2일 목요일 흐린 후 맑음
아침 열 시쯤 되니 흐린 하늘에 해가 드러났다. 아침 먹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문득 東이 산에 가자고 했다. 점심을 좀 일찍 먹고, 오후 1시에 집을 나섰다. 집 이외는 다 낯선 곳이니, 당연히 네비게이션에 의존하여 길을 찾아갔다. 구글로 검색하여 보면 우리집 뒤로 보이는 산첩첩 중 가장 높은 봉우리가 태화산이다.
우리가 간 곳은 바로 태화산이었다. 영상의 날씨여서 겨울 등산하기에 매우 좋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디에서건 돌만 보면 탑을 쌓는 습성이 있다. 멕시코에 갔을 때 멕시코 원주민들이 돌로 쌓아놓은 거대한 피라미드 군집들을 생각하니 돌탑 쌓는 방법만 다를 뿐 쌓는 목적은 같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누가 돌 하나를 올려 놓으면 다음 사람이 또 하나 올려 놓고, 그 다음 사람이 또 올려 놓고.... 세월이 흐르면 크고 작은 돌탑이 되는 것이다. 무슨 소원을 기원하며 돌을 올려 놓을까? 그 소원들이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오후 1시 58분, 등산로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올라갔다. 평일이어서 참 한적했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등산 안내도를 보고 샘터에서 병풍바위를 지나 태화산꼭대기에서 철쭉 군락지를 지나 삼지송을 돌아 원위치하기로 하고 등산화 끈을 조였다. 2007년 가을에 등산화 새것을 사서 신발장에 모셔 두었다가 처음 신는 것이다. 지난 일년은 전원 생활에 적응하느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소나무들이 도열해서 반겨주고 있었다. 솔숲길이라는 팻말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오랜만에 걸으니 벌써 숨이 가빠왔다. 온동부족이라고 온몸이 신호를 보내준다. 늘 운동해야지 하면서도 행하지 못한 것, 누구를 탓하랴? 문득 물이 생각났다. 앞서 가는 東에게 물을 가져왔느냐고 하니, 대답 대신 손을 흔든다. 산에 간다면서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빈 배낭을 메고 온 내가 참 한심스럽다.
숨이 찰 땐 천천히 발걸음을 떼는 것이 최상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르다보니 東은 혼자 멀리 가 버리고 보이지 않는다. 십 여분 걸어 올라가니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 온 듯해서 발걸음을 좀 더 빨리 떼었더니, 저만치 앞 계곡 바위에 東이 앉아 있다. 쉼터 팻말이 보였고 바가지들이 걸린 것을 보니 샘터인 모양이다. 반가웠다. 얼른 가서 계곡 속에 박아놓은 호스에서 흐르는 물을 한바가지 받아 마셨다.
내 뒤를 따라 올라오던 아주머니 한 분이 배낭을 내려 놓더니 5L짜리 생수병 두 개를 꺼내어서 물을 담았다.
"어쩜, 물맛이 이렇게 좋을 수가... " 감탄을 하니, 아주머니는 매일 운동삼아 이렇게 물을 떠간다고 한다. 집에서 샘터까지 왕복 두 시간 걸리니 운동도 되고 생수도 받고 일석이조라고 연신 자랑이었다. 내가 신은 등산화를 보더니, 자기는 매일 이렇게 운동 한다고 아들, 며느리가 등산화 선물을 많이 해서 등산화가 많다고 또 자랑이었다.
"녜, 아주머니는 참 행복하신 분이시네요. 늘 등산하시어 몸도 날씬하시구요."
맘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돈벌어 구입해요. 해마다 복지 포인트로 아이들 것도 사주고 내 등산용품도 사요.'
물을 한 바가지 더 먹고 병풍바위 쪽으로 올라갔다.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며 진달래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병풍바위가 참 멋스럽다.
뒤도 돌아 보는 법 없이 혼자 올라 가는 東, 산길이 너무 가파르면 손이라도 좀 내밀어 주지... 다행히 요즘은 어느 산에 가나 가파른 곳에는 로프 설치를 잘 해 놓아서 미끌어질 염려는 없다. 국민이 낸 세금이 산속 곳곳에까지 잘 미치고 있으니 그 예전과 비교하면 선진복지국가이다.
계곡길 위를 오르며 올려다 본 병풍 바위, 삼각봉우리들이 이채롭다. 경사 약 75도 이상 되는 등산로에서 로프를 잡고 오르는 것보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그냥 오르는 것이 덜 힘이 들었다. 로프를 쥐게 되면 자연적 로프로 힘이 쏠려서 본능적으로 잡아 당기기 때문에 다리 아픈 것보다 팔이 더 아프기 때문이다. 대신 미끄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오솔길을 오르며 이색적인 나무가 있어서 한 컷 찍었다. 길 가운데 사람들이 얼마나 잡고 지나갔으면 진달래 나무가 저렇듯 맨들맨들 한가?
이 진달래 나무는 운이 참 좋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밟혔으면 성장도 못해보고 죽었을텐데, 용캐도 사람들 발치에서 살아남았다. 대신 자기 몸을 한껏 옆으로 뉘여서 사람들이 제 몸만 만지고 가게 한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붙들고 간 나무를 나도 살짝 쓸어보고 쓰다듬으며 지났다. 진달래 피는 봄에 그녀를 보러 다시 한 번 올라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오르니 병풍 바위 위에 모진 풍상 다 겪으며 자라는 소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다. 뒤로는 절벽, 소나무를 배경으로 서로 한 컷씩 찰칵.
내복 입고 티셔츠입고 그래서 그런가? 방학 중 뱃살만 찌웠다.
인물들은 치우고, 소나무 왼쪽편으로 벋은 가지
오른쪽으로 벋은 가지,
오른쪽 끝 소나무 가지. 어쩜, 바위 절벽 위에서 이렇게 자란 소나무의 수령은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병풍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척면이 보인다. 저 멀리 희끄무레한 산 너머에는 우리집이 있는 곳.
태화산은 산진달래가 유명하겠다. 키가 죽죽 벋은 진달래나무들이 산전체가 군락이다. 건너편 산등성이모습.
맞은 편 산등성이 모습
한 시간 십분 동안 여기까지 겨우 올라왔다. 가파른 계곡길이 끝나니 이제부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병풍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는데 정신 팔다보면 진짜로 추락할 위험 요소들이 다분히 있다.
산 위에서는 절대 표지판 내용처럼 조심 또 조심...
병풍 바위를 구경하고 지나가려니 나무가 인사를 하란다.
"옙, 구경 잘하고 갑니다."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야만 지나갈 수 있는 처진 소나무 아래로 낙엽을 밟으며 발걸음 옮기다.
삭풍은 나뭇가지 끝으로 불고... 한 방향으로 자라는 소나무 가지들
트위스트 춤을 추며 자라는 진달래 나무들, 태화산의 진달래 나무들은 전부 수령이 오래된 것들이다.
아련히 보이는 먼 산들과 허허로운 산 속 나무들을 보며 인생무상을 느낀다.
진달래 군락지에 둘러쌓인 소나무들, 키도 큰 진달래나무들이 꽃이 피면 천국 같을 거야.
Y자 수형이 어여쁜 굴참나무
헬기장을 지나
산 비탈에 태화산 표지석이 서 있다.
산 속에 군인들 경비초소를 지나니, 뜬금없이 태양광으로 지은 괴상한 건물, 용도는 무엇일까? 온통 굵은 전신줄로 감싸인 주변 풍경이 너무 을씨년스럽다. 그 분위기에 알맞게 건물 뒤, 골짜기는 까마귀들의 집단 서식처인 모양이다. 산길을 오르는 내내 "까악, 까악." 거려서 나도 화답으로 한번씩 "까악, 까악," 대답해 주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녀석들이 여기 저기로 후드득 날아 올랐다.
조용한 산 속에 어디선가 "딱, 딱, 딱, 딱." 규칙적으로 나무 쫒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딱따구리 한 마리가 죽은 고목에 붙어 나무를 쪼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이 녀석도 후드득 날아 올랐다. 녀석의 몸집은 참새보다 조금 더 컸고, 검은 색 날개를 가졌다.
새봄을 기다리는 철쭉 군락지, 두터운 껍질에 쌓여있는 꽃눈들이 아직은 조그마하다.
산 오솔길 한 쪽으로 철조망이 죽 이어지고 있었다. 무엇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 옛날 철조망과는 모양새가 다르다. 네모로 튀어나온 곳에 손을 대어보니 날카로웠다. 설마 짐승들이 저 철조망을 넘으려 애쓰지는 않겠지?
드디어 태화산 꼭대기. 해발 644m라고 써 놓은 표지석 크기가 시원스럽다. 태화산 곳곳에 큰 바위들이 많으니 표지석도 주변 바위를 이용하여 저렇게 세워 놓은 모양이다. 조그마한 표지석보다 눈에 뜨이도록 큼직하게 만든 것이 이채롭다.
오늘은 무전기 켤 일이 없었다. 내가 곧장 뒤따라 잘 갔기 때문에...
우리는 곡괭이가 스틱을 대신한다.
배낭을 둘러매고 저 붉은 색 등산로를 따라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무념무상으로 걸어보았으면...
표지석을 지나 오른편 등산로를 따라 내려갔다. 직행하면 위의 붉은 색 길을 따라 가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니? 철쭉 군락지? 그럼 지금껏 진달래나무라고 본 것이 철쭉이란 말? 봄이 되면 꼭 확인해 보아야겠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철쭉은 잎과 함께 피니...
한 나무에서 다섯 가지로 벋으며 자라는 굴참나무.
내려 오는 곳곳에 한 그루에서 4지, 5지로 벋어나며 자라는 굴참나무들이 많이 눈에 띈다. 태화산을 오를 때는 소나무 군락이었지만, 내려 오는 길은 온통 굴참나무들 뿐이었다. 길에는 아직도 뒹굴고 있는 도토리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지천으로 있으니 다람쥐들이 겨울 양식으로 저장하고도 남았겠다.
등산로 표지석에 씌어져 있던 삼지송이다.
세 가닥으로 벋어 하늘로 힘차게 자라는 소나무를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계곡물이 흐르면 신발을 벗고 건너는 맛이 좋은가? 저렇게 나무 난간 다리를 만들어서 쉽게 건너는 것이 좋은가? 아무튼 우리가 낸 세금들이 산 속에까지 침투하였다. 계곡을 잘 지나 다니라고 다리도 만들어 놓고, 운동 기구들도 배치해 놓고, 로프도 곳곳에 매어 놓고, 통나무 원두막도 만들어 놓고, 서식 동식물 이름표, 식물의 효능까지 친절하게 만들어 붙여 놓고... 우리 나라 좋은 나라.
올라갈 때 쉬면서 마셨던 샘터가 보인다. 그럼 원점 회기가 되었네?
표주박은 나무 아래 걸려 있고 호스는 그 아래 있다.
원점 회기 삼거리길. 왼편으로 올라가서 빙돌아 내려 오든지, 오른편으로 올라가서 거꾸로 돌아오든지 취향대로... 왼편 등산로는 올라갈 때 가팔라서 힘이 들지만 내려올 땐 쉽고, 오른편 등산로는 완만하여 쉽게 올라갈 수 있고, 힘이 들면 되돌아 내려 오기가 쉽다.
수령이 아주 오래된 고로쇠 나무 아래 호스가 박혀 있다. 보통 고로쉬 나무는 구멍을 내어 수액을 받느라 곳곳에 구멍이 나 있지만, 여기 있는 고로쇠나무는 구멍 하나 없는 깨끗한 몸매이다. 고로쇠 뿌리를 통과하며 흐르는 계곡물이어서 그런가? 그래서 물 맛이 좋은 건가? 이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생수통을 준비하여야겠다.
물 마시고 세수 하고, 손 씻고, 안경을 씻고 나니 날아갈 듯 상쾌했다. 샘터를 지나 내려가니 앞서 간 東이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 보고 있다.
"뭐해요? 겨우살이 발견했어요?"
"아니, 수액 받아 먹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이 남자, 진짜 웃긴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려 홍시 떨어지기 기다린다더니, 잘라 놓은 다래 나무 끝에서 다래수액을 받아 먹으려 하다니...
아, 내 입에 떨어져라. 열 두 방울 받아 먹었다.
"또 떨어질라 하네, 이번에도 내 입으로..."
계곡가에 자라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대형 다래들을 톱으로 잘라 놓았다. 다래가 우리에게 베푸는 것은 다래순, 다래열매, 그리고 다래 수액도 있다. 그러나 다래가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 가므로 다래 나무가 몸을 감은 나무는 아무리 수형이 튼튼하고 오래된 나무라도 대부분이 고사한다. 그러니 산림청에서 저렇게 잘라버린 것이리다. 다래나무를 보존 시키느냐, 수형이 오래된 굴참나무, 소나무, 생강나무를 보존시키느냐는 산림청에 달린 것이다.
잘린 지 며칠 안된 다래 나무. 날이 풀리니 잘려서 공중에 매달린 다래 나무에서 5초 간격으로 수액이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산림청 직원이라면 다래 나무를 보존시켰을텐데... 저렇게 오래되어 고목이 된 다래나무는 만나기 힘드는데... 아까웠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서 저 멀리 주차장에 차가 보였다.
쉬엄쉬엄 오르내렸는데 3시간 40분 소요되었다. 한 나절 등산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어느 산이건 꽃 피는 봄, 녹음이 우거진, 여름, 단풍 드는 가을, 황량하여 주변이 다 드러나는 겨울. 네 번은 가 보아야 그 산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느끼겠다.
근처에서 외식을 하고 집에 오니 7시가 조금 지났다. 산 속에 살면서 산을 찾아 떠나는 맛. 산마다 개성과 특징과 매력이 있기 때문에 산을 벗어나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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