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맞나?
기억력이 뒤떨어지려는 증거인가?
내가 내 모습 못알아볼 뻔했다.
2006년 1월 21일, 날짜를 보니 기억이 났다.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다.
그때를 회상해본다.
2005년 10월 26일. 아들 녀석들이 공부가 너무 힘들고 재미없다며 대학 3학년 2학기를 절반 정도하다가 때려치우고 집에 왔을 때이다.
재수하는 셈치고 휴학을 하여라. 휴학을 하며 세상사를 많이 생각해 보아라.
이런 맘으로 흔쾌히 휴학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장성한 두 녀석이 매일 방에서 뒹굴며 인터넷으로 오락만 하다가, 아침에 제 엄마가 출근할 때까지도 늦잠자던 녀석들을 보는 내 맘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럼 내가 공부하자. 엄마인 나는 돈 벌면서 공부할테니 너희들은 놀아라.
그해는 겨울 방학을 12월 30일날 했다. 31일은 업무 관련 공문 작성 하느라 학교에 가서 오후 늦게 퇴근을 했다. 그리고 2006년 1월 1일 새해를 맞았다. 하루 네 시간 잠자고 공부했다. 나에게 말 걸지 말아라. 엄마는 공부해야 하니까.
아들 녀석들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맘이 불편했다. 맘이 불편한 것을 어느 누구에게 이야기 한단 말인가? 누구가 내 고민에 귀를 기울여 주며, 해결해 준단 말인가? '차라리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아들 녀석들이 보면 깨달을 것이 있으리라' 하는 심정으로 공부를 했다.
1,000여 페이지나 되는 교육학 상, 하 네 권을 세 번 읽고 외웠다. 교육학 문제집 2권을 두 번 풀고 외웠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교육과정 약 70권을 두 번 읽었다.
1월 1일부터 1월 18일까지 네 시간 잠자며 공부할 동안 녀석들은 컴퓨터에 앉아서 오락을 하거나, 처녀시절 내가 연습했던 바이엘, 체르니 악보를 보고 건반을 두드려 댔다. 얼마쯤 지나니 '엘리제를 위하여' 곡이 제법 매끄럽게 느껴졌다.
"피아노도 독학 하니 되네?"
그렇게 칭찬하며, 말없이 교육학 책만 파고 들었다.
1월 19일, 전직 시험 치러 갔다. 교육학 문제를 보니 쉬웠다. 논술에서 내가 가진 교육철학을 매끄럽게 쓰지 못해서 좀 걸렸다.
1월 20일, 면접 보는 날이다. 교사 91명 중 1번으로 면접 번호가 당첨되었다. 순간 1번은 어느 시험에서나 떨어지던데? 하는 징크스를 느끼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면접관 5분 앞에 서니 너무 떨려서 그만 3가지 질문에 한 가지 밖에 답을 하지 못하고 제한 시간 10분에 걸려 나왔다.
집에 가면 푹 잠이나 자야지 했는데, 시험치자마자 경산에 있는 친정집에 갔다. 친정 어머니가 편찮으신 모습을 보고 더 무거운 마음이 되어 집으로 왔다.
1월 21일, 낮 12시, 걸었다.동창회에 가기 위해 대구 변두리와 금호강변둑을 5시간이나 걸었다. 무념 무상으로... 그간의 내 삶에 대한 속죄하는 마음으로...(나중 왼쪽 엄지발톱이 다빠졌다. 발톱이 새로 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몇 년만에 만난 대학 동창들의 얼굴이 모두 밝았다. 세월이 세월인만큼 교감으로 승진하거나, 장학사, 연구사들이 된 동기들의 얼굴은 더욱 밝았다.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지만 마음 속은 속이 아니었다.
2006년 2월 어느 날, 시험 친 결과 통보서가 왔다. 기껏 18일 공부했는데 91명 중 10위 안에 든다는 것은 말도 안될 것이고, 91명 중 꼴등은 아니겠지? 생각하며 봉투를 열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성적이 좋게 나왔다. 면접에서 3문항 중 1문항만 답을 했으니 당연히 성적이 후순위 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보다 성적이 아주 좋다는 것은 아직도 내 머리도 녹슬지는 않았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5%안에 들지 못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5% 안으로 들어야만 전직을 꿈꾸어 볼 수 있는 것이다.
2월 말이 되어서 둘째 아들은 기숙사로 되돌아 갔고, 첫째 아들은 3월 16일 입대했다.
아들들이 공부를 더하느냐마느냐 하는 고민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해 겨울, 단 18일간 죽도록 공부한 내 모습을 보고 공부 할 결심을 다시 굳혔는지 아닌지는 지금껏 아들들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녀석들이 마음을 되돌렸을 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가진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전직하지 않고 초등교사로 남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만약 내가 전직을 했더라면 아들이 공부하는 곳과 가까운 지역, 양지에 전원주택을 구입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격주에 한 번씩 아들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늘 그리워만 하며 지냈을 지도 모르겠다.
교사로 남아 은퇴할 때까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버리지 않게 하신 하느님에게 늘 감사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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