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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탐사 mind exploration/거꾸로 쓰는 육아 일기

새해 달력 선물과 빨간 프라이드

by Asparagus 2009.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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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6일 목요일 비오고 갬

오후,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세상에나?

나에게 주기 위해 7개월씩이나 승용차 뒷트렁크에 2009년도 달력과 수첩을 가지고 다녔다는 기아자동차 상인지점 소장님. 

 

 7개월 동안 트렁크에 갇혀 이리쏠리고 저리 쏠리며 탈출 할 날만 기다렸던 달력 봉투, 몰골이 말이 아니다.

 주인공들은 스탠드 달력 2개, 수첩 2개, 물티슈 2개, 황사 마스크 2개, 마우스 깔개 달력 1개, 벽달력 1개.

교실에 있던 2007년도, 2008년도 수첩과 오늘 받은 2009년도 수첩, 매년 챙겨준 수첩이 어느덧 21개이다.

난 이 수첩을 일기장으로 쓰고 있다.

 

나는 기아자동차 상인점 성원모 소장에게 고객 관리 리스트 영 순위에 올라 있는 모양이다. 나 역시 지금껏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기아자동차가 존재하는 한, 또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새자동차를 구입할 때는 어디에서 살든 성원모 소장에게 구입할 것이다.

 

1989년 2월달이었다.

다섯 살 된 쌍둥이를 키워 줄 사람이 없어서 노심초사하며 불안한 직장 생활을 할 때였다.

'어쩌나? 어쩌나?'

그 때 친정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뭐 그리 걱정하노? 니, 내 준다고 한 달에 십만원씩 넣어 놓은 적금 있잖아? 늙어가는 내가 무슨 돈이 필요하겠노? 그거로 니도 차 한 대 사라. 그리고 쌍둥이는 우리 집에 데려다 놓으면 내가 돌 봐 줄게. 차 운전하여서 토요일날 데려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나에게 데려다 주면 되잖아?"

 

"엄마, 쌍둥이 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 집에 오시어 4년간이나 키워 주셨는데... 엄마 드리려고 모아 놓은 그 돈 500만원을 내가 쓰라고?"

 

결국 그 돈으로 차를 사기로 했다. 친정 근처에 있는 기아자동차 대명동 지점에 들렀다. 기아자동차 대명 지점의 쇼원도에 놓여 있는 빨간 프라이드가 참 마음에 들었다. 문을 열고 차를 구입하러 들어갔다.

양복을 쫙 빼입은 아주 멋지게 생긴 판매 직원이 나의 몸차림을 아래 위로 쓰윽 훑어 보았다. 그러더니 퉁명하게 말했다. 나는 그 당시 누가 봐도 돈이 없어 보이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기, 저 쇼윈도에 전시해 놓은 빨간 프라이드를 보러 왔는데요?"

"아, 지금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보세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 퇴근 시간입니다."

그리고 내 곁을 휙 지나가 버렸다. 벽시계를 보니 밤 아홉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늦긴 늦었네? 그래도 오늘 차 계약해야 할텐데...'

 

그때였다. 이층에서 내려 오던 신입 사원 같은 총각이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 저 빨간 차를 구입하려고요. 그런데, 너무 늦었지요?"

"아니오, 좀 늦게 퇴근하면 되지요. 차 한 번 보세요."

 

신입 사원은 나에게 프라이드 카타로그를 가져다 주고, 차를 구경시켜 주었다. 그 자리에서 당장 차를 계약했다.

 

1989년 2월부터 빨간 프라이드를 몰고 다니며 운전을 익혔다. 그해 8월 말, 이학기 개학 하루 전 쌍둥이를 친정집에 맡겼다. 일요일이면 대명동 친정에 맡겨 놓고, 토요일이면 퇴근하자마자 찾으러 갔다. 일주일만의 모자 상봉. 서로 끌어 앉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던 나날들.

 

삼 개월쯤 되었을까?  주변 동료들이 나에게 말했다.

"조선생님도 참, 그렇게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아이들 데리고 출퇴근 하면 되지. 아이들은 학교 근처 새마을 유아원에 보내고, 마치면 교실에 데리고 있다가 함께 퇴근하면 되잖아요?"

 

'이런, 그렇게 키우는 방법도 있었네?  학교에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 윗분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먼저 의논드리니, 너무나 쉽게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당장 학교 근처 유아원에 갔다. 원장님이 반가워하며 내일부터 바로 입학 시키라고 했다. 그날 퇴근 즉시 친정으로 쌍둥이를 데리러 갔다.

...

...

이런 저런 추억 속의 빨간 프라이드, 만 2년 몰고 다녔을 때 東이 새차를 샀다. 그러나 우리 母子의 안전을 위한다며 나에게 선물하고, 대신 빨간 프라이드를 자기가 몰았다.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몸은 일에 지치고, 맘은 걱정 근심에 지쳐 곧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허름한 옷차림의 나를 따뜻이 맞이해 주었던, 그날 당장 차 계약 하리라곤 꿈도 못꾸었다던 신입 사원 성원모 총각.

 

나도 직장인이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될 뿐더러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밑거름인 것이다.

 

그날의 신입사원 성원모는 허름하고 지친 고객 한 명에게 진심으로 대해 줌으로 해서 한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이른 나이에 기아자동차 소장으로 승진하여 지금껏 상인 대리점을 잘 운영해 오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한 가지를 알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고 하니... 앞날의 무한한 영광과 행복을 빈다.

 

(지난 세월 동안 성원모 소장에게 구입한 차는 넉 대이다. 프라이드 10년 타다가 카니발로 바꾸었다. 캐피탈은 8년 타다가 옵티머로 바꾸어 지금껏 타고 다닌다. 東은 십년이 넘은 애마 카니발을 바꿀 때는 모하비로 찜해 놓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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