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0일 금요일 오전 11시 50분
셋째 시간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밖에 나가서 놀아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운동장으로 내닫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니 교실은 순간 쥐 죽은 듯, 고요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나도 해방이다. '휘휴~ 귀가 다 먹먹했는데, 이제 고요의 바다에 좀 빠져 볼까나?"
정확히 십 분 후, 시작종과 함께 교실로 들어오느라 계단이 시끌벅적, 난리도 아니다.
물에 흠뻑 젖은 듯한 남자아이들을 보니 한편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그 중 가장 땀을 많이 흘린 몇 녀석을 여자 화장실로 데려가서 머리를 감겼다.
우리 교실 칠판에 부착한 온도계 - 여름 평균 온도는 33~34도. 아, 여름엔 따뜻한 교실이여!
너무 너무 시원해요~
시원해서 공부 잘 될 것 같아요.
여름이면 제자들 머리를 감기게 된 배경 :
우리 쌍둥이가 여섯살 때이다. 직장 부근의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겨 놓고 출근을 했다. 그 당시 어린이집은 오후 2시면 아이들을 직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당시 행정실 직원 아이 한 명도 어린이집에 다녔는데,우리 아들과 친구가 되었다.
여름이 되고부터 그 친구집에 매일 놀러갔다. 한창 무덥던 여름 어느 날, 그날도 퇴근하고 쌍둥이를 찾으러 걔네들 집으로 갔다.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 나오며 말했다.
"엄마, 오늘 지민이 아빠가 우리 머리 감겨 주었어. 너무 너무 시원했어요."
'지민이 엄마가 직장 생활을 할 동안 먼저 퇴근한 지민이 아빠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는 우리 쌍동이 머리를 감겨 주었단 말이지? 자기 아이만 씻겨 준 것이 아니고?'
퇴근길, 뒷자석에서 쌔근쌔근 잠자는 쌍동이를 백밀러로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우리 반 제자들을 가르치며 머리카락을 유심히 보았다. 천정에 매달린 소형 선풍기 네 대로 교실 평균 기온 33~4도를 힘겹게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그날부터 방학 할 때까지 하루에 몇 명씩, 순서를 정해 머리를 감겨 주게 되었다.
매년 여름이면 우리 반 남자 아이들 머리를 감겨준 지 어언 이십년.
여름날의 이런 연중 행사도 이번 여름으로 막을 내릴 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드디어 우리 초등학교 교실에도 에어컨이 들어온다. 정부 교육 시책의 일환으로 에어컨을 전국적으로설치를 한단다. 우리 학교는 이번 여름방학때 공사를 한다. 머리를 감고나서 시원한 표정을 짓는 제자들을 보며, 어렸을 적의 울 쌍동이 모습을 회상한다. 보고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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